언제까지 우리 목숨을 '요행'에 맡겨둘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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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칼럼
언제까지 우리 목숨을 '요행'에 맡겨둘텐가
  • 입력 : 2019. 06.10(월) 15:31
  • 이용환 기자

지난달 발생했던 영광 한빛원전 1호기의 수동 정지 파문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줄곧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가 이를 면피라 몰아세우고, 환경단체 또한 이번 사고가 '체르노빌과 비슷한 양태'라며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원전을 안전하게 운영하기 위한 운영기술지침서에 하자가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안전하다는 한수원과 불안하다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중구난방이다.

하지만 더 답답한 것은 사태를 이렇게 키운 한수원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대응이다. 한수원은 사고 발생 이후 지금까지 정확한 정보를 차단한 채 '지침은 어겼으나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같은 실수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사고 발생 초기에는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체르노빌 운운하며 위험을 부풀린 단체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면허도 없는 운전자가 제어봉을 잘못 조작했고 명백하게 운전 절차까지 위반했는데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온갖 사고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 한빛 2호기는 지난 1월, 7개월간 정기점검을 끝내고 가동을 준비하던 중 조작 미숙으로 갑자기 멈춰섰다. 한빛 3, 4호기 또한 2014년 이후 증기발생기 세관 균열, 철판 방호벽 부식 등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고가 잇따랐다. 증기발생기에서 느닷없는 망치가 발견되고, 격납 건물에서 작은 동굴 크기의 구멍까지 확인됐다. 빨리빨리 하겠다는 조급함, 설마 하는 안전불감증, 어이없는 실수까지, 자칫 잘못하면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기관으로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행태가 기가 막힌다.

원전 사고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장 옛 소련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는 올해로 33주년이 됐지만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이 지역은 반경 30㎞까지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폐허로 방치돼 있다. 지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도 8년이 지난 오늘까지 10만 명에 가까운 주민이 고향을 떠나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방사능 유출, 폐로, 오염수 처리 등 사고 여파도 전 지구적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사고 처리 비용이 우리 돈으로 최대 830조 원에 이르고 원자로 폐쇄까지 50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한빛원전에서 50㎞도 채 떨어지지 않은 광주시민으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아찔한 일이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원자력 발전의 전면 재검토였다. 지금의 셈법으로는 원자력이 가장 값싼 전력원이지만 사고 위험이 높고 고준위 핵폐기물과 발전소 폐기 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공약을 통해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노후 원전 폐쇄 등을 약속했다. 2017년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 기념식에서는 "값싼 발전 단가를 최고로 여겼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후순위였다"며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다. '친핵'이나 '탈핵' 등 진영 논리를 떠나 인간이 만든 기술, 특히 핵발전에서 100% 안전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고, 결코 겪어서는 안 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소한 사고부터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급 미증유의 참사까지 원전 사고에서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티끌에 불과하다. 이번 한빛 1호기처럼 제어봉 인출을 시작해 단, 1분 만에 출력이 18%까지 상승하는 짧은 순간에 지침이나 매뉴얼이 얼마나 도움을 줄지도 의문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이번 한빛원전에서 발생했던 사고는 분명 인재(人災)였다. 그것도 한수원이 강조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나 '기본과 원칙을 준수하는 것'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한계에 의한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 전에 보다 긴 안목에서 원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탈원전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원전의 안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틀에 박힌 변명에 앞서 겸허한 자세로 인간의 한계를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의 목숨과 미래를 언제까지 '행운'이나 '요행'에 맡겨둘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는 정말 바꿀 때가 됐고 바꿔야 한다. 전남취재본부 부국장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