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노키아, 스타트업으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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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칼럼
몰락한 노키아, 스타트업으로 부활
박간재 경제문화체육부·부국장
  • 입력 : 2019. 08.19(월) 13:20
  • 박간재 기자
"졸업하면 어디 취업 할거니?" "취업이요? 노키아(NOKIA)에 입사하면 돼죠"

2010년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핀란드 대학생들은 노키아에 취업했다. 2011년까지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고수했던 노키아. GDP의 20%를 차지할만큼 자국 경제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15년간 선두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노키아의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2012년 1위 자리를 삼성에게 내준 뒤 위기설이 퍼지더니 급기야 2013년 9월3일 마이크로소프트에 휴대폰 사업부를 매각했다. '노키아의 붕괴'는 전 세계 톱뉴스로 장식됐다. 2013년 노키아가 몰락하고 나서야 핀란드 업체임을 알았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노키아 추락의 이유는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했고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관료화됐기 때문'이라는 해설기사가 쏟아졌다.

노키아는 울부짖었다. "모두가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 그거 우리가 만든 것이잖아. 앱스토어? 제일 먼저 도입한 곳도 우리 아닌가. 지하철에서 휴대폰 게임하는 사람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휴대폰에 처음 게임을 장착했지. 그런데 왜 우린 망한 것일까"

2013년 노키아가 침몰하자 핀란드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 시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핀란드 정부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나서며 노키아 출신 직원들에게 창업을 독려했다.

노키아의 붕괴로 핀란드는 대기업에 의존하지 말고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노키아 출신 엔지니어와 기술자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놨다. 수도 헬싱키 인근 알토대학에 IT 창업 인재를 양성하는 국가적 전략 기지를 구축했다. 그렇게 해서 유니콘(unicorn) 기업인 '앵그리버드', '슈퍼셀' 등이 태어났다. 유니콘 기업이란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1조)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을 말한다.

필자는 지난 달 말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지원하는 기획시리즈 취재차 핀란드를 방문했다. 핀란드는 스타트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물론 퇴직자, 전문가, 성공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참여해 키워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업체를 적극 지원하는 정책도 이채로웠다.

직접 만나 얘기해보고 둘러본 곳 역시 창업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헬싱키에서 한국인 최초로 스타트업을 창업한 배동훈·박솔잎 대표의 '포어싱크(Forethink)'. 그들이 개발한 '저스트 브라우즈'는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 사용자 행동을 분석해 자동으로 상품 목록을 개인화하는 AI 모바일 카탈로그 플랫폼이다. 조만간 정식 서비스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알토대학 오타니에미 캠퍼스에 있는 '스타트업 사우나'는 슬러시 콘퍼런스, 스타트업 라이퍼스 인턴쉽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곳 역시 스타트업체의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지도록 도와주는 5~9주짜리 프로그램이며 전문가의 멘토링과 창업 컨설팅을 지원한다.

'슬러시 콘퍼런스'는 매년 11월 열리는 유럽 최대 IT 투자회의로,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자리다. 돈이 많아 어디에 쓸지 고민하는 투자자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배고픈 개발자들이 만나 소개팅하는 자리다. '스타트업 라이퍼스 인턴쉽'은 대학생들을 전세계 스타트업 업체에 보내 훈련을 받고 돌아오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초기 창업에 성공한 업체는 고용노동부 산하의 '핀베라(FINNVERA)'가 재정지원을 맡는다. 한 업체당 3억원에서 최대 150억 이상의 통큰 지원을 한다.

핀란드 정부의 노력에 스타트업 붐이 일어났고 유럽 인구의 4%인 핀란드에서 유럽 전체 스타트업의 4분의1이 탄생했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유니콘 기업 '슈퍼셀'은 유니콘 기업으로 현재 2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1억명 이상의 유저를 보유하고 있다. 창업 당시 9평 공간을 빌려 재활용센터에서 가져온 책상 6개를 두고 시작했던 업체였다.

'노키아'가 쓰러진 자리에 수 천개의 '스타트업 씨앗'이 뿌려졌고 뿌리를 내린 뒤 마침내 싹으로 활짝 피어난 셈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할까. 청년창업 기업의 90%가 1~3년 내 사업을 접는 '데스밸리(Death Vally)'를 경험한다. 냉혹한 현실에 안타까움만 더한다. 다행히 중소기업진흥공단 호남연수원이 광주와 나주에서 운영중인 '청년창업사관학교' 입교생들의 성공률이 전국 상위권 이라는 소식에 위안이 된다. 열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스타트업 천국'으로 자리매김 된 핀란드 스타트업정책을 참고할 만 하다. 그 과정을 거친다면 광주·전남에도 청년창업의 씨앗이 뿌려질 테고 싹이 트고 잎이 돋아나 큰 나무로 성장하게 될 터다. 그래야만이 김기림의 시 '새나라 송(頌)'에 나오는 싯귀처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가 되지 않겠는가.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