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농촌을 환하게 바꾼 '노리터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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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황량한 농촌을 환하게 바꾼 '노리터 프로젝트'
‘서울청년’ 이주열·정용근씨 등 담양서 빈집 개조||게스트하우스 변모…활력 돌아 7가구 새로 이주 ||청년창업자 위한 한국형 '실리콘 발리' 진화기대
  • 입력 : 2019. 10.20(일) 16:16
  • 김양지 PD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 22.4%에 달하는 초고령 지역, 인구 10만명당 사망률 전국 1위, 인구소멸지수 전국 최하위…. '나이든 전남'을 웅변하는 언어들이다.

청년은 떠나고 노인만 남아 있는 전남의 시골은 활력이 없고 황량하다. 군데군데 빈집은 늘어 가고 텅 빈 동네엔 흙먼지가 날린다. 시골의 사막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광주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위치한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도 같은 처지였다. 전체 35가구 중 28가구가 폐가로 방치돼 있었다. 마을 청년 회장은 71세 할아버지다. 마을엔 잿빛 절망이 감돌았다.

이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웃음이 퍼지고 있다. 그림자가 걷히고 삶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서울 청년들의 창의적 도전이 마을을 변화시켰다. 정용근 'Fun한 노리터'대표와 이주열 'Fun한 노리터'이사 등이 시작한 '노리터 프로젝트' 덕분이다.

◆산뜻한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한 시골 폐가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 입구에 들어서면 깔끔하게 정돈된 길옆으로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회색빛이었을 담벼락은 해바라기, 동백꽃들로 수놓아져 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니 마당이 딸린 단아한 집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집 안에선 담양의 특산물인 대나무 소품들이 특유의 향기를 품어낸다. 낮게 흐르는 옛 가요는 잊힌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펀한노리터 1호점 '休(쉴 휴)'는 전통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으로 1년간 셀프 리모델링으로 재탄생했다.

월평리는 사실 휑한 마을이다. 한집 걸러 한집이 폐가다. 그러나 단아하게 개조된 집들 덕분에 마을 전체가 꽉 차 있다는 느낌을 준다. 'Fun한 노리터' 프로젝트가 일군 변화다.

새롭게 단장한 월평리 빈집들은 '休(휴), 愛(애), 喜(희)'라는 이름을 가진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되고 있다.

전남 담양군 월산면 월평리 마을회관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아름다운 벽화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주민들과 호흡하며 창의적 시도…변화 일궈

지난 2017년 정용근 대표와 이주열 이사는 우연히 들른 월평리에서 비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특히 빈집에 주목했다. 흉물처럼 변한 빈집은 사골 마을의 이미지를 실추시켜 도시민들이 농촌을 더욱 외면하게 만든다.

"이 곳을 단장하면 시골 어르신들에게는 쉼터를 제공하고 농촌을 찾는 젊은이들에게는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게 좋을 텐데…."

'Fun한 노리터' 팀은 빈집에 생명을 불어 넣기로 했다. 한국 뉴욕주립대 교수인 이주열 이사는 비슷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경험이 있었다. 담양이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젊은이들이 찾고 싶은 장소로 꼽히고 있다는 점, 광주와 근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다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로 판단했다. 두 사람은 은퇴 이후 이 곳에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경영컨설팅 전문가와 문화 콘텐츠 전문가도 합류했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건축에 문외한이었던 정 대표와 이 이사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IT전문가인 정 대표는 "통신 관련 업종에만 20년 이상 종사했기 때문에 건축 분야는 전혀 몰랐다"면서 "처음에는 집수리를 혼자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막막했다"고 말했다. 지역의 어르신들과의 의견 차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이 이사는 "지역 주민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 추구하던 방향이 맞지 않아 고민도 많이 했지만 점차 서로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거쳤다"면서 "이후 프로젝트 추진을 하면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고 술회했다.

두 사람은 마을 주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청년회에 가입을 하고 주말이면 마을가꾸기 운동도 하고 있다. 그렇게 'Fun한 노리터'를 추진한 지 2년. 정 대표와 이 이사는 마을 어르신들과 격의 없이 지낸다. 어르신들이 집에 통신 케이블과 와이파이를 설치했다. 어르신들은 도회지에 사는 손자와 화상통화를 할 정도다. 손자들이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찾아오는 횟수가 늘었다. 마을에 활력이 돌면서 7가구가 월평리에 들어오기도 했다.

'펀한노리터 2호점'은 황토와 고목으로 지어진 전통한옥집을 개조하여 편안한 분위기를 준다.

◆빈집을 한국형 '실리콘 발리'로 조성 예정

이주열 이사는 농촌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있다. 다만 귀농을 결심했다면 농촌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 지 깊게 고민해야 하다고 조언했다.

이 이사는 "많은 사람들이 '귀농'하면 '농사를 지어야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게스트하우스 형태로 사람들과 교류도 하면서 일정부분 수익도 얻을 수 있다"면서 농촌에서의 지속가능한 삶의 형태를 스스로 발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월평리를 다향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다. 이 이사는 "이곳을 인도네시아의 '실리콘 발리'처럼 관광지에 청년 창업자들이 거주하며 휴식과 일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쉼터이자 놀이터로 만들고 싶다"면서 "동네 어르신들에게도 일거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공유 밥상프로그램, 지역 농산물 등을 이용한 로컬 굿즈, 빈집을 개조한 카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10여 년간 폐가였던 喜(기쁠희) 3호점의 회색빛이었을 담벼락이 화려한 꽃으로 수놓아져 있다.

담양 죽녹원 인근의 폐가와 개보수 후 모습

'공간을 공감하고 세대에 공감하는'놀이터 프로젝트 핵심가치

작은 농촌마을을 바꾼 어리석은 도전 '노리터 프로젝트'

김양지 PD yang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