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강진 남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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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강진 남포마을
이돈삼/여행전문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 입력 : 2019. 11.28(목) 13:13
  • 편집에디터

강진 남포마을

갈대밭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이 순천만이다. 인지상정이다. 순천만의 면적이 갯벌과 갈대밭을 합해 816만평이다. 국제적으로 보존협약이 맺어진 람사르습지로 지정돼 있다. 순천만과 자웅을 겨룰만한 곳이 강진만이다. 강진만은 갈대밭 20만평, 갯벌 793만평 모두 813만평(3282만㎡)에 이른다. 남쪽 바다를 향하는 부드러운 곡선의 물길과 갯벌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드넓은 강진만에 붙어있는 동네가 남포마을이다. 탐진강과 강진천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강진읍에서 다산초당 방면으로 가는 길목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 속한다.

남포는 오래 전 강진의 15개 포구 가운데 가장 큰 남당포구였다. 강진의 관문이었다. 제주도로 가는 뱃길의 출발지였다. 왜구들이 서남해안을 분탕질할 때도 죽음으로 지켰던 포구다. 도암만에서 나는 물목은 물론 완도, 고금도, 해남과 장흥에서 나는 물산까지 모여들면서 번성했다.

근대에 들어 제방을 쌓아 논을 만들고, 댐을 막아 물길을 차단하면서 포구의 기능이 쇠퇴했다. 드넓은 갯벌과 무성한 갈대로 시나브로 해양생태계의 보고로 인식되고 있다.

남포마을은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설움에 북받친 갈밭마을 여인을 만난 곳이다. 다산은 이 여인의 사연을 한시 '애절양(哀絶陽)'으로 읊었다.

1800년대 초 군적(軍籍)이 있었다. 군대 편성의 기준이 되는 문서다. 군적에 오른 사람은 병역을 대신해 군포(軍布)를 내야 했다. 관리들이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거둬들이기 위해 죽은 사람과 갓난아이의 이름까지 군적에 올렸다. 군포를 감당할 수 없었던 이정이란 사람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자신의 생식기를 잘랐다.

'갈밭마을 젊은 아낙네 우는 소리 길기도 해/ 관문 앞으로 달려가 통곡하다 하늘 보고 울부짖네/ 싸우러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있었으나/ 사내가 자기 양기를 잘랐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네/ 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갓난아이는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모두 실렸네/ 억울한 사연 호소하려 해도 관가 문지기는 호랑이 같고/ 이정은 크게 포효하며 외양간 소마저 끌고 갔네/ 남편이 칼 들고 들어간 방에 피가 흥건하고/ 남편은 스스로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중략)...부자들은 일 년 내내 풍악을 울리며 즐기지만/ 쌀 한 톨 삼베 한 치도 내놓는 일 없네/ 너나 나나 다 같은 백성인데 어찌 이리 불공평한가/ 객창에 우두커니 앉아 시구 편만 읊노라.'

'애절양'은 기막힌 현실을 관청에 하소연하러 갔다가 높은 문턱만 확인하고 돌아서는 갈밭(남포)마을 여인의 사연을 담고 있다. 다산이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시구다.

남포는 강진의 근대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1919년 3월 대한독립을 위한 봉기가 계획됐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민족시인 영랑 김윤식 등 강진의 지도자 12명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일제에 발각돼 붙잡히면서 실패했다. 2차 거사가 다시 논의됐다. 강진읍의 한 교회에서 독립선언문을 작성했다. 남포에 사는 박학조, 강주형, 차명진, 박영옥 등은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들은 거사 당일, 생선상자에 태극기를 숨겨 장터로 갖고 갔다. 4월 4일 강진시장에서 주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빠르게 전남 전역으로 확산됐다. 남포마을 입구에 '삼일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연유다.

남포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에 특별한 제사도 지낸다. 하늘신에 천제(天祭)를, 땅신에 지제(地祭)를 올린다. 바다에서 일을 하다가 변을 당하고도, 자식이 없어 제삿밥도 먹지 못하는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다. 헌식을 할 때 강진만 갯벌에서 얻은 파래를 떡과 함께 올린다. 역사와 문화가 남다른 남포마을이다.

남포마을은 귀한 강진만 갈대밭을 끼고 있다. 갈대는 단풍 못지않게 남도의 늦가을을 아름답게, 낭만적으로 만들어준다. 갈대가 바닷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춘다. 갈대가 서로 몸을 부대끼며 들려주는 노래 '갈대의 순정'도 감미롭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겨울철새 큰고니(백조)도 찾아와 있다.

사철 아무 때라도 좋지만, 이맘때 더욱 매혹적인 갈대밭이다. 날씨 좋은 날 마냥 걸어도 좋다. 비라도 내리면 날 우산 쓰고 걸어도 낭만적이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갈대밭을 뉘엿뉘엿 거닐다보면 늦가을여행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갈대밭에 탐방로도 설치돼 있다. 갈대밭 사이로 놓인 나무 데크 길이 3㎞를 넘는다. 이 길을 따라 갈대밭 사이를 하늘거린다. 낭만이 넘실대는 같대밭이다. 강진만 둔치를 따라 걸을 수도 있다. 둔치는 바닷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기에 맞춤이다.

나무 데크든, 둔치든 어느 쪽이라도 온통 누렇게 채색된 갈대밭이 펼쳐진다. 연인들은 두 손을 꼭 잡고 걷는다. 부모는 아이의 손을 잡고 사부작사부작 걷는다. 나이 든 부모를 모시고 나온 여행객들도 많다. 시선을 어디에 두든지, 한 편의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어느 쪽으로 사진을 찍든지 작품사진이다. 갈대밭 사이를 걷는 사람들까지도 사진 속의 배경이 된다.

데크 길에서 만나는 갯벌생물도 오진 볼거리다. 갈대숲 사이로 드러난 갯벌에서 농게와 칠게, 방게가 노닐고 있다. 갯벌에 짱뚱어도 지천이다. 엄지손톱만한 대추귀고둥과 집게발의 등에 오돌토돌한 돌기가 많은 붉은발말똥게도 살고 있다. 대추귀고둥과 붉은발말똥게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있다.

갯골에서 구애를 하고 있는 '겨울진객' 큰고니(백조)도 볼거리다. 강진만은 우리나라에서 큰고니가 가장 많이 관찰되는 곳이다. 민물도요와 묏부리도요도 귀한 새다. 정광태가 노래했듯이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빨리 나는 도요새다. 쇠백로, 왜가리, 흰죽지, 흑부리오리, 청둥오리도 갈대밭 데크에서 만난다.

해질 무렵 갈대숲은 장엄하다. 황홀경이란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마땅치 않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갈대숲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든다. 속살까지 드러난 갯벌의 색감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S자로 유려한 갯골은 빨갛게 채색된다. 누구라도 시 한 편 읊을 수 있는 시인이 되는 순간이다. 멋진 수채화 한 폭 그릴 수 있는 화가로도 만들어주는 강진만 갈대밭이다.

이돈삼/여행전문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강진 남포마을

강진 남포마을

강진 남포마을

강진 남포마을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과 갈대밭

강진만 갯벌의 짱뚱어와 게

강진만 갯벌의 짱뚱어와 게

강진만 갯벌의 짱뚱어와 게

강진만 갯벌의 짱뚱어와 게

강진만 갯벌의 짱뚱어와 게

강진만 갯벌의 짱뚱어와 게

강진만 갯벌의 짱뚱어와 게

강진만 갯벌의 짱뚱어와 게

강진만 둑방 자전거길

강진만 멀구슬쉼터

강진만 큰고니

강진만 큰고니

강진만 혹부리오리

강진만 백로

남포마을 삼일운동 기념비

남포마을 삼일운동 기념비

이돈삼/여행전문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