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6> 영원히 끝나지 않을 길 위에서 만난 아잔과 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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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6> 영원히 끝나지 않을 길 위에서 만난 아잔과 시사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19. 12.12(목) 11:01
  • 편집에디터

16-1. 피라미드가 내려다보이는 호텔에서의 아침식사.

1) 아잔(Azan)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넋을 잃고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흐느끼는 듯하다가 호소하는 듯도 한 그것은 노을 속으로 피라미드를 젖어들게 했고 하나둘 커지는 마을 불빛을 흔들어놓았다. 마침 마른 모래 바람이 한차례 내 뺨을 훑었다.

"아잔이야. 모스크에서 들리는 소리지."

이즈마엘이 내게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그 음성 또한 아잔의 일부처럼 들렸다.

중동에 오면 아잔에 익숙해져야 한다. 새벽 4시가 넘어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올 때부터 시작된다. 아잔이란 예배 시간을 알리고 예배를 보러 오라고 청하는 낭송이다. 하루 다섯 번이다. 4~5시경, 12시경, 오후 3~4시경, 일몰 예배, 8~9시경 취침 예배로 나뉜다. 예배 시간은 일출과 일몰 시간에 따라 매일 달라진다. 한 곳에서만 들리지 않는다. 모스크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이다. 오케스트라 연출 같다가도 슬픈 연가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모스크 옆에는 반드시 미나레트(Minaret)라 불리는 높고 뾰족한 첨탑이 있다. 그 첨탑 위에서 무아진(Muazzin)이라는 독경사가 육성으로 아잔을 낭송한다. 무아진의 호소력 짙은 음성은 이어졌다가 끊어졌다가를 반복된다.

"아잔이 울리면 모든 카페는 음악을 끄지."

시사(물 담배) 연기를 입 안 가득 담고 있던 이즈마엘이 어둠을 향해 내뿜으면서 덧붙였다. 나는 언덕 위 카페에서 아잔을 귀로 아니라 눈으로 듣고 있었다.

2) 시사(Shisha)

나는 지금 이즈마엘과 그의 친구 두 명과 함께 언덕 위 카페에서 저녁나절을 보내고 있다. 소위 말하는 현지인이 아니면 갈 수 없는 장소에서다. '현지인 찬스'를 제대로 사용했다.

중동에서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시사도 피울 수 있다. 카이로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 헤맬 때 골목마다 호리병처럼 생긴 유리병에서 뻗어 나온 호스를 빨고 있는 흰 원피스인 토브(Thobe)를 입은 시커먼 남자들을 봤다. 혹시 마약 같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강한 호기심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시사는 영어로 후카바(Hookar)라고 하는 물 담배이다. 담뱃잎을 태우는 게 아니라 향을 태워 그 연기를 흡입하기 때문에 목 넘김이 부드럽다. 여러 가지 맛이 있어 그 맛(향)을 선택할 수가 있다. 니코틴이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술을 마시면서 친교를 맺는다면 이곳에서는 시사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돌려가면서 피우기도 한다. 흡연이 너그럽기 때문에 실내 어디서든 웬만해서는 제지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피울 수 있는 기구를 갖춘 곳이 많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 나는 이즈마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그런데 말이야. 왜 나이 든 남자든 여자든 앞니가 시커멓게 닳아있지?"

정말 그랬다. 파피루스에 그린 그림을 내게 팔려고 했던 의사뿐만 아니라 이집트 박물관으로 가는 택시에서 만난 검은 차도르 입은 퍽 지적인 나이 든 여자도 영어로 내게 말할 때마다 검은 치아를 드러냈다. 그는 말했다.

"시사를 많이 피워서 그래."

이집트 여행을 끝내고 요르단 암만에서 우버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할 때 운전사인 아멘에게 검은 치아에 대해 말했다. 그는 웃으면서 농담처럼 답했다. "이집트 사람들이 양치질을 잘 안 해서 그래."

이슬람 지역에서는 술은 '하람(하지 말아야 할 것)'인 반면 담배는 '하라(해도 되는 것)'이다.

나는 이즈마엘과 그 친구 덕에 하람인 술도 마셔봤다. 피라미드 구경을 끝낸 저녁, 나일강변에 있는 유일하게 술을 파는 식당에서 이집트 맥주 '스텔라'를 맛보았다. 네 명 각자 돈을 모아서 알렉산드리아라는 해변 도시로 간 적이 있었다. 그곳 해변 출입은 돈을 내야 했다. 술도 허락을 맡아야 했다. 우리는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검은 비밀 봉지에 싸 온 맥주를 도둑고양이처럼 마시면서 파도소리를 들었다. 여행자인 나를 위한 그들의 배려였다.

3)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여행

나는 피라미드가 보이는 카페에서도 여행자로서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피라미드를 발밑에 두고 있는, 밤이 되면 담배 연기로 가득 차서 클럽이 된다는 이곳은 남자만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히잡을 쓰지 않아도 되는 외국인 여자라는 신분과 현지인 남자들과 동행해서 가능했다. 이즈마엘은 내 성별에 대해서 간단명료하게 정의했다. 외국인 여자들은 중동에서는 무조건 '중성'이란다.

중성인 내가 피라미드를 지그시 보면서 향을 흡입하는 동안 아잔은 긴 여운을 남기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은 피라미드 실루엣을 삼켰고 모래 바람을 한차례 또 일으켰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자꾸 흔들렸다. 오사카 이자카야 골목 홍등 같다고나 할까. 분명 마른 취기가 몸속을 돌고 있었다.

다음 날 호텔에서 제공하는 피라미드 투어를 신청했다. 왕의 무덤들, 모래 언덕과 스핑크스의 거대함에 놀랐지만 이집트 하면 그때의 붉은 노을과 노을에 묻혀가는 피라미드와 마른바람을 따라 돌던 취기와 이즈마엘의 긴 속눈썹이 떠오른다.

그것은 닮지 않는 듯 닮은, 서로가 처한 상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흔들리는 홍등 아래에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 요청에 스스럼없이 보여줬던 그의 무언극 공연. 이라크 고대 문화에서부터 맨부커 상 최종 후보작에 선정된 아흐메드 사다위의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 석유 산유국인 이라크. 1년에 뉴욕 같은 도시를 몇 개 지을 만한 돈이 들어오지만 부정부패로 전기와 물 공급까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즈마엘의 한탄. 광주 5·18에 대한 나의 이야기.

그가 귀국하고 나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유럽 유학 좌절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반부패 세력에 대한 항쟁. 총리 사퇴. 이란 영사관 화재에 대한 매스컴과 다른 그의 해석. 수많은 희생자들. 낮에는 시위 현장에 머물지만 밤에는 집에 돌아와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는….

"Do not worry, we are a people who do not fear death, but we are afraid to live like dead."

얼마 전 그에게 몸조심해, 라는 문자를 보냈을 때 그는 위 문장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한동안 가슴을 휘어잡는 결의에 나는 전율했다.

여행은 사람이다. 그 사람과의 인연이 계속된다면 결코 끝날 수가 없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곧 좋은 여행이 된다. 나는 충분히 여행을 잘 하고 있다. 내게 터키 커피를 입맛 들게 한 밀렌드 가족과의 만남도 계속해서 이어지니깐 말이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16-2. 언덕 위 카페에서 내려다본 마을 야경.

16-3. 낙타와 말. 저 말을 타고 피라미드 주위를 2시간 동안 돌아다녔다.

16-4. 당나귀와 토브 입은 그 주인.

16-5. 피라미드 현지 가이드와 나.

16-6. 피라미드보다 더 높이뛰기.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