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1> 시타델로 향하는 두 명의 남자와의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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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1> 시타델로 향하는 두 명의 남자와의 에피소드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20. 02.27(목) 13:33
  • 편집에디터

21-1. 엠피시어터 위로 블러드 문이 떴다(스마트폰으로는 붉은빛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

1. 낯선 남자를 따라가면 생길 수 있는 일

어른들은 말한다. 낯선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어른이 된 아이는 그 말을 무시하기도 한다. '호기심 때문이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라는. 호기심이 때로는 사람을 '잡'는다.

내가 암만에서 3일째 머무르고 있을 때이다. 그날도 올드타운을 산책 겸 걷고 있었다. 한 가지 미션이 있었다. 괜찮은 식당을 찾는 것.

요르단을 포함하여 중동 사람들 식사는 양고기, 요구르트, 빵(쿠브즈 아라비: Khubz Arabi)이 기본이다. 얇고 납작한 빵을 맨 손으로 집어서 소스에 찍어 먹거나 양고기 등을 싸 먹기도 한다. 콩으로 만든 길거리 요리도 많다. 콩을 삶아서 으깨서 다른 야채와 섞어 기름에 튀기거나 하는 것. 자주 먹어서인지 느끼했다. 후식은 내 입맛에는 지나치게 달았다. 맛집이라고 해서 현지인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팬케이크 식당도 그냥 지나쳤다. 이런 내 고민을 거리에서 만난 낯선 남자가 들어주겠다고 했다. 좋은 식당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지금까지 나는 좋은 사람들만 만났다. 경계를 했지만 암만 시내 지리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그와 동행했다. 시장 거리라 사람들도 많았다.

남자는 시장 골목을 벗어났다. 식당이 어디에 있느냐고 내가 물었다. 그 남자, 썩 영어를 잘하지 않는다. 식당이 이제는 '괜찮은 장소'로 바뀌어 있다. 주택가 오르막을 오른다. 언덕 위의 궁전 시타델로 향하고 있다. 앞길이 아니라 한적한 뒷길이다. 내가 가늠해도 지름길이라는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아마도 남자가 넝쿨을 밟지만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넝쿨 가시가 스니커즈 천을 뚫고 남자의 발가락을 찔렀다. 그가 잔뜩 인상을 구기며 신음을 뱉었다. 걱정이 된 나는 그의 발을 들여다보았다. 잠깐의 정적. 그게 문제였다. 궁전 뒷길은 군데군데 풀이 나 있는 마른 언덕에 있다. Z자로 된 돌길이 위로 향한다. 한참 발아래에 건물이 있다. 사람 그림자는 없다. 태양이 뜨겁다. 겨우 머리만 그늘에 넣을 수 있는 작은 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쉬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그 남자가 수작을 걸기 시작한 것이.

먼저 손가락에 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 입술이 예쁘다고 한다. 어깨를 끌어당기려고도 한다. 180cm 정도 키에 탄탄하고 날렵한 몸집, 부리부리한 눈과 매부리코. 남자의 신체조건과 힘은 나를 제압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시에 찔려 통증을 느끼고 있다. 그런 그가 달렸을 때 어느 정도 속도를 낼까. 계산하면서 나는 그를 살며시 밀어냈다. 그리고 내가 달려야 할 언덕길을 보았다.

앞뒤 잴 필요는 없었다. 그를 간호할 의무도 내게 없었다. 그를 안심시키듯 돌아보면서 씩 웃어주고는 냅다 달렸다. 인상을 험악하게 구긴 그가 나를 뒤쫓아 오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봤을 뿐 뛰면서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믿는 것은 편한 신발을 신고 달리는 그 못지않게 튼튼한 내 다리였다.

언덕을 거의 오르니 궁전 뜰 한 구석에 경찰 봉고차가 보였다. 위급한 상황을 알았는지 경찰 한 명이 내게 달려왔다. 나는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가 나를 위협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내 뒤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펜스 문을 닫았다. 그때야 나는 심장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 아담

"내 친구가 암만에 있어. 뮤지션이야. 그의 가족이 암만으로 가고 나서 우리 집에 한 달 정도 머무른 적이 있거든. 할머니 하고도 멋진 대화를 이어가던 친구였어. 그 친구가 네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 내가 메신저로 연락해놓았으니깐 곧 네게 연락을 할 거야."

낯선 남자 이야기를 다 들은 이라크 친구 이즈마엘은 친구 한 명을 소개해 주었다.

이즈마엘의 친구 아담이라고 하는 뮤지션과는 쉽게 연락이 닿았다. 다음날 만나기로 했다(그날이 2018년 7월 28일, 21세기 들어 블러드 문이 가장 길게 지속되는 날이었다.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남미 일부 지역에서 잘 볼 수 있다는 내용을 귀국하고 나서야 알았다). 블러드 문을 놓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저녁 7시에 다운타운에서 만나서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담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랩에 박자를 맞추듯 마르고 큰 키에 리듬을 주면서 움직였다. 긴 레게머리였지만 중동 남자들에게 흔한 수염은 없었다. 이즈마엘처럼 그도 오래된 친구처럼 낯설지 않았다. 사소한 이야기로 언덕에서는 논쟁까지 했다. '사랑'과 '동양 사람의 생김새'였다. 내 눈이 '찢어진 눈'이라면서 놀리기도 했다. 나는 중동 남자들이 모조리 '골초'라고 맞받아쳤다. 쓸데없는 이야깃거리에 서로 질리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앰피시어터 위로 붉은 달이 떠올랐다. 7시 30분이었다.

블러드 문은 달이 지구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 때 생긴다. 옛날부터 흉조로 여겨졌지만 이곳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궁전이 있는 언덕은 이미 이슬람 신도들이 차지하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축제 분위기였다.

아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친구들을 연이어 만났다. 친구들 중 M은 DJ 겸 일렉기타리스트라고 했다. 굉장히 유명한 듯 한걸음 뗄 때마다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일일이 사람들과 악수하거나 포옹하면서 말을 나누었다.

이집트를 떠나올 때 나는 밀렌드 가족과 작별을 고해야 했다.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영어를 잘하는 이집트인 가이드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가이드와 밀렌드 아버지가 처음 만났는데도 손을 잡고, 나를 쏙 빼놓고는 긴 대화를 이어갔다. 당황한 내 마음을 알았는지 가이드가 말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처음 만나더라도 이것저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이곳 암만에서도 그랬다. 아담과 그의 친구들이 정신없이 불어나서 나는 그만 혼이 나가버렸다. 이들 중 다섯 명이 간신히 빠져나왔다. 일렉기타리스트 M, 아담, 암만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프랑스인 여대생, 차를 가지고 왔던 남자 공무원. 우리는 유일하게 술을 파는 상점에서 맥주 한 병 씩 각자 사 와서는 주택가 골목으로 갔다(공공장소에서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한 방에 남녀가 함께 있을 수도 없다). 이미 그 장소는 그들에게 익숙한 듯했다.

맥주를 조금씩 아껴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도 이렇게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은 모두들 만담가였다. 술자리(?)가 끝난 새벽 2시 밤하늘에는 맨 얼굴 달이 걸려있었다. 지친 블러드 문이 일찍 귀가한 듯했다.

3. 그리고…

그 뒤로 나는 일주일 동안 차를 빌렸다. 하루 평균 6~8 시간 운전을 하면서 요르단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숙소로 돌아온 저녁, 올드타운을 걸을 때면 나를 성추행하려 했던 남자를 다시 만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잠깐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아서 쓸데없는 생각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21-2. 시타델 언덕에서 블러드 문을 구경하는 사람들.

21-3. 암만 올드타운 거리 맛집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21-4. 암만 올드타운 식당 골목.

21-5. 암만 올드타운 밤 풍경.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