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촛불과 혼불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촛불과 혼불
  • 입력 : 2020. 03.25(수) 14:54
  • 편집에디터

지난 2016년~2017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 촛불집회 모습. 뉴시스

달이 환하게 밝은 밤이었대. 지나가는 나그네 한 사람, 그렇지 않아도 혼자 지나가기 겁이 나는데 냇물 위에서 짓걸짓걸 하는 소리가 나더란 말이지.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냇물에 사람 대가리만한 수박들이 떠 있지 않겠어? "옳지 저놈들이 '독갑이'로구나. 독갑이는 담뱃불을 무서워한다더라" 부리나케 담배를 물고 성냥불을 붙였지. 물속에 있던 선생과 상투쟁이들, 나그네 담뱃불에 뱃속 초가 불이 켜질까 겁이 났지. 허겁지겁 말하기를 "여보게 저놈이 성냥불을 그어 우리배 속의 초에 불을 켜려고 하네, 모두 머리까지 물속으로 잠그세, 안 그러면 큰일 나네"하고 머리와 얼굴까지 물속으로 담가버렸지. 나그네는 냇물 위의 수박 같은 독갑이 대가리들이 없어진 것을 보고, "대체로 독갑이란 놈들이 담배 불을 제일 무서워하는군..."하고 지나가 버렸지. 김경희가 「방정환 '귀신동화'의 형성과 의미연구」에서 소개한 「양초귀신」 이야기다. 한양(서울)에 구경을 간 송서방이라는 인물이 양초를 사와서 벌이는 해프닝이다. 마을사람들이 생전 처음 양초를 보고, 지식을 총동원하여 알려 했으나 쓰임새를 알 수 없더라는 것. 한 연장자와 글방 선생은 이것이 생선이라고, 백어(白魚)라고 주장했지. 모두 국을 끓여먹는다는 결론을 내고 먹었겠다. 후에 양초를 가져온 사람이 불을 켜는 것이라 하니, 뱃속에 불이 켜질까 두려운 사람들이 연못으로 들어갔다는, 도깨비불과 관련한 이야기 한토막이다.

양초물고기, 불도깨비에서 대장장이까지

나도 어렸을 때 도깨비불을 본 기억이 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이를 인불 혹은 혼불이라 불렀다. 도깨비불에 대한 구술사례는 아주 많다. 화장터 근처나 무덤가에 혼불이 날아다닐 확률이 훨씬 크다고 한다. 근처에 뿌린 뼛가루가 인(燐) 성분이니 그럴 것이요 날씨가 흐리면 이 성분이 푸른빛을 띠기 때문이다. 위의 양초귀신은 '독갑이' 즉 도깨비이다. 냇물 혹은 강과 불의 대칭관계가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는 민담 중의 하나다. 방정환이야 이를 지식 없는 미신과의 대조를 위해 인용했지만 의도치 않게 도깨비의 서식처는 물론 불과의 관계를 드러내주고 있다. 우연하게 포착된 것처럼 보이는 서식처는 물이나 강이다. 늪이나 숲, 삼국유사의 기록으로부터 오늘날 구술 자료들까지 예외 없이 도깨비가 출현하는 서식처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과 백여 년 전인데 15세기 '석보상절'에 나오는 '독갑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도 확인하게 된다. 귀신이란 표현을 도깨비와 혼용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 도깨비의 기능적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삼국유사 「비형랑설화」도 귀신의 작용으로 치부되었고 수많은 민담이나 구술 자료의 혼불도 도깨비불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다. 흥미로운 것은 불도깨비 혹 도깨비불을 대장장이 신화와 연결시키는 시각들이다. 비형랑설화에서 목랑(木郞, 두두리)을 '절구공이'로 해석하거나 대장간과 연결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강은해를 포함해 이두현, 박은용 등 여러 학자들이 이를 주장했다. 민담류의 도깨비가 형상이 없는데 비해 도상적 도깨비의 출처를 귀면와 등의 치우관련 형상으로 읽고 싶은 심리들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의문이 생긴다.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가 도깨비로 현현할 수 있다면 현격한 신의 자리에 좌정하지 않고 왜 애매모호하고 엉뚱한, 덜 떨어지고 응큼한 중간자적 존재로 전승해왔을까? 도깨비가 영험성을 탈각하고 타락한 것일까? 이 학자들은 도깨비의 전승적 이미지를 외다리, 애꾸눈, 거인, 난쟁이 등 신체상의 변이형상과 함께 그로테스크한 남정(男丁)의 이미지로 읽어내고 있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도깨비를 온전히 독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인(燐)불인가 도깨비불인가

"무겁게 감은 청암부인의 왼쪽 눈귀에 찐득한 눈물이 배어났다. 그것은 댓진 같은 진액이었다. 차마 흘러내리지도 못한 채 눈언저리에 엉기어 있기만 하는 그 눈물은, 무슨 응어리 같기도 하였다. 그날 밤, 인월댁은 종가의 지붕 위로 훌렁 떠오르는 푸른 불덩어리를 보았다. 안채 쪽에서 솟아오른 그 불덩어리는 보름달만큼 크고 투명하였다. 그러나 달보다 더 투명하고 시리어 섬뜩하도록 푸른빛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청암부인의 혼불이었다. 어두운 밤 우뚝한 용마루 근처에서 그 혼불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윽고 혀를 차듯 한 번 출렁하고는, 검푸른 대밭을 넘어 너훌너훌 들판 쪽으로 날아갔다." 최명희의 '혼불' 한 대목이다. 여기서 목도하는 혼불이 바로 민간에서 말하는 도깨비불이다. 시골생활을 경험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았음직한 푸른빛 도깨비불을 '인불'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에게서 나간 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밤에 무덤이니 습기가 많은 땅에서 이 불들은 공중을 향하여 날아오른다. 최명희 소설의 내용처럼 오래된 집에서 나가기도 하고 당산목 등 오래된 고목에서 날아가기도 한다. 이를 보통 인(燐)의 작용 때문으로 해석한다. 인(燐)은 도깨비불 혹은 반딧불을 나타내는 용어다. 질소족 원소의 하나로 원자 기호는 P다. 사람이나 동물의 뼈, 인광석 따위에 많이 들어 있다. 독성이 있고 공기 가운데서 발화하기 쉽다. 성냥이나 살충제 따위의 원료로 쓰인다. 어두운 곳에서 빛을 내기 때문에 도깨비불이라고 한다. 컴컴한 곳에서 명태 등의 물고기들이 환한 빛을 내는 사례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사람들이 푸른빛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귀화(鬼火) 외에도 귀린(鬼燐), 음화(陰火), 인화(燐火) 등으로 부른다. 모두 도깨비불이라는 뜻인데, 양화(陽火)가 아니라 음화(陰火) 곧 어두움을 밝히는 불 혹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불이라는 호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깨비불과 혼불

국어사전에서는 혼불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의 혼을 이루고 있다는 푸른 빛,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크기는 작은 밥그릇만 하다. 전라 지방의 방언이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수명이 다하여 사람이 죽으려하면 미리 혼불이 그 집에서 공중으로 나가는데 이 불을 말한다. 남자는 대빗자루 모양의 길고 큰 불덩이가 나가고, 여자는 접시모양의 둥글고 작은 불덩이가 나간다." 과연 그러할까? 유년에 마을 아이들과 함께 보았던 인불 곧 혼불들이 실제 그런 모양이었던지 기억은 없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이들 혼불을 도깨비불 혹은 불도깨비라고 불렀다는 점이다. 남자의 혼불이 빗자루 모양의 길다란 형태이고 여자의 혼불이 접시 모양의 동그란 형태라는 해석은 음양의 기호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컨대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 당집은 남성격인 할아버지당산과 여성격인 할머니당산의 모양이 이러한 음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당산은 길쭉길쭉한 남근(男根) 모양의 기둥석 위에 고인돌을 얹은 형태요, 8부 능선에 있는 할머니 당산은 마치 음근(陰根)처럼 나팔꽃 모양의 둥그런 형태로 조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산의 형태를 음양의 이치를 좇아 만든 마음처럼 도깨비불에 투사한 사람들의 음양관도 비슷했던 모양이다.

지난 2016년~2017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 촛불집회 모습.

촛불집회, 도깨비들의 혼불이었을까?

붉은악마의 엠블렘에 기표(記標)되었던 1997년에서 2017년까지의 20년이 주는 의미를 톺아본 이들이 얼마나 될까? 붉은악마가 뉴밀레니엄을 기획했던 것도 아니고 치우 형상이 의도적으로 부각된 것도 아니었지만 약속이나 한 듯이 뉴밀레니엄의 한 의례가 되었음을 상기하는 이유다. 의도하지 않았던 기의(記意)라고나 할까? 2002년 월드컵을 달구었던 붉은악마, 이른바 붉은 치우의 형상이 뉴밀레니엄의 벽두 사건이었다면 또 하나 뉴밀레니엄을 장식했던 기점의 풍경이 있다. 2016-17년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촛불, 그것은 마치 광장을 뒤덮은 또 하나의 도깨비불이었을지도 모른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에 걸쳐 진행된 탄핵정국의 촛불집회가 주는 파장은 그 어느 울림보다 강하고 광범위했다. 2002년 붉은악마의 경험으로부터 15년여 흐른 시기, 전 국민이 열광했던 붉은 옷과 붉은 머리띠와 붉은 치장들을 고스란히 대체한 도깨비불들 말이다. 어찌 보면 희고 어찌 보면 붉은 촛불들이 거의 모든 전국의 광장을 메우던 시기, 나는 이것이 필경 도깨비불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듣고 보고 자라던 도깨비불의 형상이 마치 그러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사실 세월호 규명 촛불로부터 촉발된 세기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의 붉은악마와 마찬가지로 이 야밤의 촛불 풍경을 누가 추동했던 것일까? 정열적이면서도 유쾌했던 반란, 도깨비민담에서 가장 빈도수가 많은 불도깨비들이 이 풍경을 연출했다고 믿어야 할까? '도깨비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민간에서는 도깨비불을 까닭 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불이라고 여기는데, 촛불집회는 '까닭 있어 저절로 일어난' 도깨비불 아니었나? 혹은 아사 직전 사람들이 내보낸 단말마의 혼불이었을까?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오늘 여기 빈 광장에 서서, 뉴밀레니엄 '다시천년' 벽두의 촛불, 아니지 광장 도깨비불의 의미를 묻는다.

남도인문학팁

비주류의 전이지대, 평범한 존재들의 혼불

일부 학자들의 주장대로 치우 관련 형상은 동물, 사람, 식물 등을 조합하여 환상적인 장식으로 발전해왔다. 2002년의 월드컵의 경험처럼 내셔널리스트로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조상이라 우기거나 도깨비의 시원이라고도 했다. 형상으로만 보면 괴기스런 예술미의 극치였다. 하지만 그로테스크만으로 도깨비를 읽어낼 수도, 민족표상으로 세울 수도 없다. 민담류의 도깨비에 한정해 말하자면, 그러한 형상은커녕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엉거주춤한 중간자로 나타나기 일쑤였다. 귀신과 사람의 중간자, 명료하지도 않고 구체적이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이 엉거주춤한 도깨비들에 마음을 투사한 사람들은 여전히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가지지 못한 자들이었다. 도깨비가 주로 출현하고 서식하는 개펄과 숲이 그 전형적인 공간, 곧 전이지대라는 점 여러 차례 강조해두었다. 억압과 횡포를 탈피하고자 했던 이들, 주류사회에 도전하는 이들이 이른바 도깨비 이야기에 자신들의 처지를 담아낸 자들이었다. 도깨비는 귀신류의 영혼이라기보다는 주로 사람이 사용하던 물체들, 부지깽이니 빗자루니 몽당 막대기니 따위라고들 했다. 그런데 혼불처럼 사람의 혼령과 관련을 짓기도 한다. 아마도 도깨비불이란 호명 속에는 일반적인 도깨비라는 인식보다는 살아있는 자의 혼(魂), 그것도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육신과 함께 하고 있는 어떤 정기(精氣)라는 마음들이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죽은자 혹은 정기가 없어진 존재들로부터는 도깨비불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여러 가지 괴담이나 민담 수준으로 전승해오던 도깨비불 특히 혼불을 생각한다. 죽은자 혹은 없어져버린 어떤 것일지라도 미세하게 남아있는 정기, 아직 살아있거나 잔존하는 생명력 같은 것 말이다. 2002년 광장의 도깨비불, 혼불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난 2016년~2017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 촛불집회 모습.

지난 2016년~2017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 촛불집회 모습.

지난 2016년~2017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 촛불집회 모습.

지난 2016년~2017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 촛불집회 모습.

지난 2016년~2017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범국민 촛불집회 모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