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5> 예루살렘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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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5> 예루살렘에서 길을 잃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20. 04.23(목) 13:11
  • 편집에디터

25-1. 통곡의 벽 입구에서 카파를 쓴 유대인 아이가 일회용 카파 상자를 보고 있다. 남자들은 카파를 써야 통곡의 벽까지 갈 수 있다.

1) 이스라엘에서의 환영 인사

바르셀로나에 있을 때 횡단보도 없는 도로를 건너려 할 때면 달려오던 차가 멈췄다. 차가 다니기 이전부터 사람이 걸어 다녔던 곳이라고 해서 유럽은 무조건 사람이 우선인 곳이 많다. 이집트보다는 요르단이 도로 교통이 그나마 양반이다. 하지만 외국인이 걸어 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암만에서 렌트한 차를 반납했을 때 숙소까지 운동 삼아 걷고 싶었다. 50분 정도 걸으면 되었다. 하지만 20분도 걷지 못하고 우버 택시를 불러야 했다. 이집트든 요르단이든 철저하게 자동차 중심이다. 횡단보도는 찾기 힘들다. 있다하더라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무단 횡단이 일상이다.

이스라엘 육로 입국장을 나와 예루살렘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을 때 운전자가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안전벨트 매세요!"

다른 중동 지역에서는 절대 들어볼 수 없는 말이었다. 낯선 이 땅이 갑자기 친숙하게 느껴졌다. 이런 기분은 숙소에 도착해 저녁거리를 사러 슈퍼마켓에 갔을 때도 그랬다. 다양한 종류의 맥주와 위스키가 한 벽면 가득 진열된 코너를 보고는, 기쁨의 탄성을 터트렸으니까.

2) 예루살렘의 구시가지

세계 3대 일신교인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주요 성지가 있는 예루살렘은 사연이 많다.

1947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할한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동쪽은 아랍인 국가(팔레스타인국), 서쪽은 유대인 국가(이스라엘)를 형성한다. 두 나라의 국경처럼 예루살렘을 국제 공동통치지역으로 남겨둔다. 하지만 제3차 중동전쟁(1967년)을 승리로 이끈 이스라엘은 동서를 통일해서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만다.

예루살렘은 지금도 국제법상으로는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의 영토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자신의 수도라고 말하는데도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2017년 12월 6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포하기에 이른다.

예루살렘은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지가 있다(Site proposed by Jordan). 오스만 제국의 술레이만 1세 때 재건된 거대한 도시 성벽 안에 있는 구시가지, 그곳에는 이슬람교의 성소인 바위 돔과 알 아크사 모스크, 유대교 성지인 통곡의 벽 등이 있다. 무슬림·기독교인·유대인·아르메니아인 구역으로 나뉜다.

미로 같은 골목길이 네 구역을 연결한다. 상점과 식당 그리고 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좁은 골목길을 여행객들이 차지한다. 내가 처음 성벽 안에 들어섰을 때 미로 같은 골목길에 길을 잃을 뻔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 출신 유태인 노미에게 길을 잃을 뻔했던 경험을 말했다. 그녀는 현지인 예루살렘 1일 투어 신청을 도와주었다.

3) 각각의 입장 차이 그리고 여행객

다음날, 다국적 여행객으로 구성된 영어 현지 투어에 참여했다. 다섯 시간 동안 땡볕에서 걸어 다녔다. 넉넉한 성품의 유태인 가이드는 지식이 많았고 책임감도 강했다. 황금 돔(Dome of the Rock,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입장하려면 까다로운 검문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혹시 가방 속에 이스라엘에 관한 책자가 있으면 놔두고 가라고 했다.

그녀의 경고만큼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이미 이집트, 요르단에서 빈번하게 검문검색을 받아온 터라 나에게는 일상처럼 느껴졌다. 대신 구시가지 곳곳에 중무장한 이스라엘 경찰들이 더 경각심을 일깨웠다.

황금 돔 주위를 돌고 있을 때 바그다드에 있는 이스마엘이 어디에 있냐고 문자를 보내왔다. 'Temple of Mount(성전산)'이라고 하자 그는 '팔레스타인 수도에 있구나.'라고 했다.

예루살렘을 두고 유대인이나 아랍인들은 그들의 수도라고 한다. 그는 내가 이스라엘에 간다고 하자 "너는 팔레스타인에 가는 거야. 이곳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라고 하면서 다시 내 말을 고쳐주기까지 했다.

킹 후세인 브릿지까지 나를 데려다준 아멘은 팔레스타인 역사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고 항공권 예약서를 프린트를 해준 시리아 M은 유태인들을 조심하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겉과 속이 달라!"라고 했다.

전날 투어 신청을 하면서 나를 도와준 프랑스 출신 유태인 노미에게 혼자 밤거리를 다녀도 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면서 말했다. "위험하지는 않은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조심해야 해. 그들은 가난해서 너 소지품을 훔칠 수도 있고 돈을 달라고 조를 수도 있거든."

나는 이들에게 어떤 반론도 하지 않았다. 역사 속 갈등으로 들어가면 내가 여행객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 같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일단 나를 '無'로 만들었다. 이렇게 했으면서도 여전히 선입견이 작동했다.

유태인 현지인 가이드는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사진도 제대로 찍지 못할 만큼 여행객들을 바삐 돌렸다. 성벽 안 강렬한 태양과 인파에 에너지를 많이 뺏긴 나는 어서 숙소에 도착해서 시원한 맥주라도 마시면서 쉬고 싶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가는 교통편을 구글에서 검색했다.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과 유태인들이 사는 구역이 따로 있다. 대중교통도 다르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4일 동안 머물 곳은 유태인 구역에 있는 아파트이다. 유태인 구역은 유럽과 닮았다. 건물 모양새도 횡단보도 없는 도로를 건널 때 차가 먼저 정차하는 것까지도.

구글맵은 내가 있는 Damascus Gate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팔레스타인 버스 정류장을 안내했다. 101번 버스를 타면 13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선뜻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중동에서 아주 적응을 잘했는데도 유태인 교통편을 원하고 있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것은 유럽과 같다. 트램도 버스도 스페인에서 공수해 온 것처럼 내릴 때 노란 버튼을 누르면 된다. 다음 도착지까지 알려준다. 교통카드만 있으면 편하게 요금을 지불할 수 있다.

나는 팔레스타인 버스 정류장까지 갔다가 북적거리는 것이 싫어서 다시 걸어 나와 유태인 트램 1번을 탔다. 팔레스타인 버스에서는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은근히 나는 '안전과 편함'을 추구하고 있었고 팔레스타인보다는 이스라엘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감정.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이곳.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상관하지 않고 '나의 속물'로 귀결하고 있었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25-2. 예루살렘 내 구시가지에서 보초서는 중무장한 이스라엘 경찰들.

25-3. 십자가를 메고 예루살렘 구시가지 골목을 오르는 사람들.

25-4. 예루살렘 바위 사원(Dome of the Rock).

25-5. 통곡의 벽과 그 위 황금빛 돔이 있는 바위 사원.

25-6. 유대인 가이드(가운데)와 다국적 여행객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