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청년들 "5·18은 동떨어진 이야기…계승 노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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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청년들 "5·18은 동떨어진 이야기…계승 노력 필요"
5·18을 향한 다양한 '시선' ⑥ 5·18을 교과서로 배운 광주·전남 청년들||5‧18 정신은 민주주의 동의하지만…대다수 "잘 몰라요"||교과서로 배운 5‧18은 부실 투성이…정확한 교육 필요
  • 입력 : 2020. 06.14(일) 16:08
  • 양가람 기자
5·18을 교과서로만 접한 젊은 청년들에게 5·18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30명의 광주·전남 청년에게 물었다. 청년들은 대부분 5·18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가장 흔한 답변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청년들은 올바른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40년 전 광주는 참혹했고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시민군들이든, 계엄군들이든, 또 우연히 휩쓸린 목격자들이든 그날의 충격은 실로 그들의 삶에 커다란 의미를 남겼다.

40년이 흘렀지만 광주 시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현장을 생생하게 답했다. 그들에게 5·18은 어제의 역사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생생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5·18을 교과서로만 접한 젊은 청년들에게 이날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30명의 광주·전남 청년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미묘한 온도차를 찾을 수 있었다.

광주·전남 청년들은 대부분 5·18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 중 몇몇은 아버지, 혹은 이웃들을 통해 5·18의 경험담을 전해듣기도 했다. 대학교에서 5·18을 전문적으로 배운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들을 수 있었던 가장 흔한 답변은 "잘 모르겠다"였다.

젊은 청년들에게는 5·18이 너무나도 먼 과거였고, 교과서에서 한 두 줄 스쳐지나가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비록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어도 진정 가슴까지 와 닿지는 않는다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 교과서에서 접한 5·18 이야기는

이들 대부분은 5·18민주화운동을 처음 접한 것은 교과서를 통해서다. 그러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5·18 이야기는 너무나도 부실했다는 것이 공통된 대답이다.

박지수(30)씨는 중학교 국사시간에 5·18을 처음 접했다. 배웠다기보다는 지나쳤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그는 "교과서에 5·18이 나오기는 했지만 물음표만 남았다"고 했다. 학교에서 배운 5·18은 너무나도 부실했다는 이야기다.

박씨는 "사진 한 장과 다섯 줄 남짓한 언급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시민들의 희생과 저항, 공동체 정신까지 10일간 벌어진 항쟁을 세세히 알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5·18을 금기처럼 여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가 아직도 살아있는 현대사이기 때문에 5·18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린 것 같다"고 했다.

진승기(26)씨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진승기씨는 "교과서 내용만으로 5·18을 제대로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현대사는 배정된 분량도 적고 단원도 맨 끝자락에 위치해 그냥 지나치기 쉬워 보였다"고 했다.

진씨는 "다행히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며 "만약 타 지역에서 학교를 나왔다면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증언과 체험 통해 간접적 경험

수업시간을 통해 배우는 5·18은 너무나도 빈약했다. 청년들은 오히려 가족이나 이웃들의 입을 통해 또는 체험학습을 통해 5·18을 배운 경우가 더러 있었다.

변주의(24)씨는 부모의 설명을 통해 5·18을 배웠다. 언니 이름은 민주고 그의 이름은 주의다.

변주의씨는 "어릴 적에는 이름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5‧18과 관련된 숙제를 내줬는데 '빨갱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보였던 기억이 난다"며 "그때 부모님께서 '5‧18은 민주화운동이고, 광주 시민들은 빨갱이가 아니다'며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현장 체험도 청년들이 5‧18을 처음 접한 방식이다.

김준영(36)씨는 "망월동으로 소풍을 가면서 1980년 5월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었는지를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했다.

김미려(22)씨 역시 "5·18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대학교를 오고 나서인 것 같다"며 "대학교 2학년 때 5·18 사적지를 답사하면서 어떤 사건이 있었는 지 자세히 알게 됐다"고 했다.

● 청년들 5‧18은 생소한 이야기

청년 세대에게 5·18은 생소하기만 하다. 지금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가족 중 5·18을 경험한 이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장건(20)씨의 아버지는 5·18을 직접 경험했다. 그러나 그는 5·18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장건씨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다시는 되풀이돼선 안돼는 슬픈 사건이었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다"며 "직접 경험해본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통해서만 배웠기 때문에 진정 가슴으로 와닿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5·18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경험은 거의 없다.

서형택(25)씨는 "청년 세대에게 5·18은 너무나도 먼 과거의 일이어서 교과서에서 배우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과 차이점을 느끼지 어려운 것 같다"며 "우리 세대에게 5·18민주화운동은 너무나도 진지하고 정치적인 사건으로 여겨져서 친구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청년들은 영화속 장면이 더 와닿는다고 말한다.

임영민(20)씨는 "5·18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화려한 휴가나 택시운전사 같은 영화 속 장면들이다"며 "5·18에 대해 접할 기회도 많지 않고 동떨어진 이야기다보니 감명깊게 본 영화 속 장면들밖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 청년들이 정의하는 5‧18 모습은

그렇다면 청년들은 5·18에 대해 어떻게 정의내리고 있을까. 다양한 답이 나왔다.

비록 학생들은 그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를 만든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했다. 한발 더 나아간 평가들도 더러 있었다.

심재영씨는 '시민'이라도 답했다. 그는 어두운 거리에서 맞서 싸운 시민들의 용기로 5·18을 정의 내렸다.

'주먹밥'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상지씨는 "가장 힘든시기에 주먹을밥을 나눠준 이웃사랑의 정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광주가 있다"고 했다.

박정은씨는 '트라우마'라고 했다. 그는 "우연히 트라우마센터에서 5‧18 피해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며 "그분들한테 이것저것 얘기를 들으면서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5‧18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미려씨는 '검정'이라고 답했다. 어두운 역사,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진 사건이자 아직도 진실이 덮여진 역사라는 평가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답을 차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였다.

5·18을 직접 경험한 나이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젊은 세대 역시 5·18을 통해 민주정신을 봤다. 학생들은 수많은 어른들의 피와 희생이 모이고 모여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룩했다고 했다. 잊어서는 안 될 사건이고 잊혀지고 있기에 더욱 안타깝다고도 했다.

● 5‧18 올바른 역사계승 이뤄져야

청년들은 5·18이 나아가야 할 미래로 무엇을 주목하고 있을까.

시급한 과제로는 정확한 역사교육을 꼽았다.

김수빈씨는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나 영상과 같은 역사를 기억하게 할 만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우선 5·18이 젊은 세대 사이에 잊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왜곡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지연씨는 "일부 사이트에서 호남에 대한 지역차별 조장, 5‧18 왜곡 등에 앞장서면서 청소년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사이트는 철저히 규제돼야 한다"고 했다.

5·18민주화운동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문시언씨는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왜곡이 반복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진실이 바로서야 비로소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싸웠고 그날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모두가 공감하고 추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