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박용수>혼자 그러나 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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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박용수>혼자 그러나 홀로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
  • 입력 : 2020. 08.05(수) 14:34
  • 편집에디터
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그래서 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서로 사랑하라.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중략-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중략-

함께 서 있으라.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

밤하늘의 별들은 아름답다. 은하수와 같은 빛의 잔치는 황홀하기 그지없고, 해 질 녘 가창오리 떼의 군무나 까마귀들의 비행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럿이 함께 펼치는 공연은 카드섹션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간관계의 양적인 폭, 그가 펼친 그물의 넓이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저기 모임을 만들고 서로 자랑한다. 혼자 있지 않다는 과시일 것이다. 특정 집단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으려는 심리, 우수한 집단에 소속하고 싶은 욕망은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힘들어한다.

여럿이 있다 보면 눈치가 빨라야 한다. 단체 생활은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해야 하는 사회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대인관계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것도 없다. 그로 인해 즐겁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단하고 피곤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당수 사람은 의외로 떠밀려서 혼자 되는 경우가 많다. 타지로 이사를 하거나, 자녀가 독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떠나면 유독 외로움을 탄다. 인생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지금까지 삶이 문득 공허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린 가끔 스스로 집단에서 벗어나 '홀로'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일부러 복잡한 관계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혼자와 홀로는 비슷하나 그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혼자'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홀로'는 자신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다. '혼자' 있다는 것이 외로움이라면 '홀로' 있다는 것은 고독이다. '혼자'의 유의어가 노예(奴隸)라면 '홀로'는 자주(自主)이고, '혼자(aloneness)'는 당한 것이지만 '홀로(one's own)'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혼자'가 쓸쓸한 패배라면 '홀로'는 의연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혼자'가 스스로 붕괴하는 시간이라면 '홀로'는 자신의 삶을 탄탄하게 재구성(reset)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홀로' 있으면 절대 외롭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은 눈과 코와 같은 감각기관에 의지해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서도 사유와 통찰로서 살아가기도 한다. 전자가 동물적이고 직관적 삶이라면 후자는 인간만이 간직할 수 있는 사유와 성찰적 삶에 가깝다. 혼자는 밝은 대낮에도 앞을 못 보는 암흑 시간이라면, 홀로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내면을 관조할 수 있는 시간이다. 즉 혼자는 텅 빈 존재라면 홀로는 꽉 찬 존재인 것이다. 그리하여 혼자 있으면 외로워 누군가를 필요로 하지만, 홀로 있으면 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 현악기의 줄처럼 신전의 기둥이나 사이프러스 나무들처럼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

실상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는 시간보다 혼자 또는 홀로 있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누구는 '혼자의 시간'을 맞이하지만, 또 누구는 '홀로의 시간'을 만들어 간다. 결핍을 직시하는 괴로운 시간을 택할지, 스스로 충만해지는 독락(獨樂)의 시간을 택할지는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에 달린 것이다.

명절 때면 가족끼리 모여서 왁자지껄 웃으며 음식을 만들고 술잔을 나누는 집안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웃음을 들여다보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는 틈새, 즉 간격이 분명하고, '홀로'의 시간이 더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철학자가 독립성과 타인과 일체감 사이의 갈등을 고슴도치에 비유하여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했다. 너무 가까이 가면 서로 찔리고, 멀어지면 온기를 나눌 수 없음을 이를 것이다.

밤하늘의 별들도 실상 홀로이다. 우리가 보기에 가까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 별들은 하나하나 수천만 킬로미터씩 홀로 떨어져 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가창오리도 마찬가지다. 놀랍게도 그들의 군무(群舞)는 자유롭다.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이기를 수만 번 하되 절대 상대의 비행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 붙되 결코 상대의 날갯짓을 방해하지 않는다. 새가 태양을 대하듯, 우리는 뜨겁게 사랑하되 지나치게 가까이는 말고, 멀리하되 얼어서는 죽지 않을 만큼 가까이, 혼자가 아닌 홀로, 함께 하되 저만치, 그래야 아름답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