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초대석>최형식 군수는 '산골 나무꾼에서 4선 군수 오른 민주주의 파수꾼'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전일 초대석
전일초대석>최형식 군수는 '산골 나무꾼에서 4선 군수 오른 민주주의 파수꾼'
광주항쟁 참여후 정치권 입문…도의원 3선 역임||민선 3기·5~7기 군수 당선… ‘4선 군수’ 진기록
  • 입력 : 2020. 06.25(목) 17:03
  • 담양=이영수 기자
최형식 담양군수의 어릴 적 별명은 '하느재의 나무꾼 소년' 이다. 담양군 무정면 성도리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지게를 지고 '하늘에 닿을 만큼 높다'는 하느재를 넘나들며 땔나무를 했다. 포목 보따리를 이고 행상을 하던 어머니를 위해 밥을 짓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가끔은 우리 집이 왜 이렇게 가난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절에 감사한다. 가난한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고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는 의지가 형성됐다." 최 군수의 회고다.

최 군수는 지난 1980년 광주항쟁에 참여했다가 징역8월에 집행유예 10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치에 입문한 뒤 1991년 30대 젊은 나이에 전남도의회에 진출해 3선 의원을 역임했다. 2002년에는 무소속으로 민선3기 담양군수에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006년 치러진 민선4기 군수선거에서 낙마했지만 이후 민선 5·6·7기 연속 당선돼 '4선 군수'가 됐다. 최 군수는 "민주주의 파수꾼으로 신명을 다하겠다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았다"고 설명했다.

최 군수는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되신 어머니에게는 땅 한뙈기도 없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정치의 목적 또한 그들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깨끗한 자연과 지역에 산재한 누정들, 그곳에서 탄생한 수많은 가사문학이 담양의 가장 큰 자산이면서 경쟁력"이라며 "이런 장점을 살려 인문학 정원도시담양을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민선 7기도 벌써 5부 능선을 넘었습니다. 지난 14년간 이어왔던 지속가능한 생태도시에 더해 담양다운 그린뉴딜로 담양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모델로 만들겠습니다."

최형식 군수 약력

▲1955년 담양출생

▲송원고·조선대 정치학 석사

▲전남대 정치학 박사 수료

▲전남도의원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의원회 위원

▲민선 3기, 민선 5~7기 담양군수

▲2015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 조직위원회 이사장

▲전국농어촌군수협의회 회장









담양=이영수 기자 yslee2@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