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에 비춰진 한국전쟁 속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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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비춰진 한국전쟁 속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 입력 : 2020. 06.25(목) 17:22
  • 김은지 기자

혼란한 시기, 생필품만 챙겨 어디론가 떠나는 피난민 가족의 모습. 서울셀렉션 제공

1950: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 | 존 리치 사진·글 | 서울셀렉션 | 2만원

"어머니의 왼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는 아버지의 부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당시 대부분의 성인 남자는 남한이나 북한 어느 한쪽으로부터 징집을 당했고, 이는 피난민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깍지 낀 두 손으로 막내를 끌어안은 아이의 시선이 애처롭다"

1950년 6월 25일, 70년 전 오늘엔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누는 동족상잔의 비극적 참상을 겪었다. 2020년, 오늘엔 어떨까. 더 이상 총칼이 오가지 않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다.

70주년이라는 숫자는 그 어느 때보다 사뭇 다르게 다가오며 새로운 감상을 준다. 수십 년 동안 남북 관계는 얼어붙거나 활기를 띠거나, 수차례를 반복해왔다. 특히 현 정부에 들어서는 2010년대 들어서 경직됐던 남북 관계에 평화 기류가 불기 시작했고, 국민들 사이 '종전'이라는 희망적 메시지가 오고 가고 있다. 이런 시류 덕분일까. 출판계에서도 역시 70년 전 그날을 되돌아보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출간된 도서 중 가장 눈에 띄었던 책, '1950'이다. 그동안 우리가 한국전쟁과 관련해 기존에 접해온 이미지는 대부분 전쟁의 참사를 부각하는 것들이었다. 빛바랜 흑백사진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침울함과 시대적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쨍한 컬러사진으로 그려낸다. 시대적 격변 속에서도 꿋꿋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삶에 대한 희망과 강인한 의지를 뿜어내는 사람들, 전쟁의 한복판이나 피난길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철모에 진달래꽃을 꽂은 채 카메라를 응시 중인 한 소년병의 모습. 서울셀렉션 제공

책의 저자인 존 리치는 1939년 '케네백 저널'이라는 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는 미국 통신사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INS)에 입사해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받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도쿄에 있던 그는 개전 첫 주에 한국에 도착해 3년간 한국전쟁을 보도하며 한반도 곳곳을 렌즈에 담았다. 미국 기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한국 전쟁을 취재한 그는 이후에도 베트남 전쟁을 10년 동안 보도하며 종전 기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가 60년 전 찍은 컬러사진들은 그가 타고 다니던 차 안 상자에 보관돼 있다가 50년 만에 발견돼 세상에 공개됐다. 그가 전쟁 당시 촬영한 사진들은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이던 2010년에 '컬러로 보는 한국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으며, '1950'은 이 책의 개정판이다.

책에는 개전부터 휴전까지 3년 동안의 시대상이 담긴 컬러사진 150여 장이 수록돼 있다. 저자가 찍은 사진에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 맞은 서울 전경부터 시장 풍경, 피난 가는 난민들 그리고 국군의 표정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기억 속 얼굴들' '전쟁 속의 일상' '폐허의 그늘' '사선(射線)에서' '전쟁과 무기' '지난했던 협상' 등 6개 챕터로 구성됐으며, 당시 한국인들의 각박했던 삶을 담아낸 사진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사진뿐만 아니라 전쟁 당시 무명의 참전용사나 유엔군 장병 그리고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살아간 사람들을 취재한 비하인드스토리도 함께 실려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 사진들은 시대의 기록인 동시에 한국에서 보낸 내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이어 "내 바람은 독자들이 한국전쟁을 과거의 역사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라며 "사진들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그것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희생과 아픔, 그리고 강인한 소생의 의지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1950. 서울셀렉션 제공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