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시선으로 포착한 여성 예술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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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시선으로 포착한 여성 예술가의 삶
  • 입력 : 2020. 07.02(목) 16:49
  • 박상지 기자
여기 있어 황홀하다

마리 다리외세크 | 에포크 | 1만4000원



'여기 있어 황홀하다'는 프랑스의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마리 다리외세크가 쓴 독일 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전기다. 마리 다리외세크는 그간 '암퇘지', '가시내',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 등의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가 독일의 화가를, 그것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여성 화가의 전기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마리 다리외세크는 자신에게 잘못 도착한 정신분석학회 안내장 스팸 메일에서 파울라의 작품을 처음 보았다. 옷을 벗은 엄마와 아기의 모습이었다. 다리외세크는 이렇게 편안한 자세로 수유하는 엄마와 아기의 그림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미술관에 가득한 성모상에 구현된 성스러운 어머니와 아기 예술의 모습이 아니라 오로지 여성이기에 알 수 있는 현실 속의 수유하는 자세를 그린 그림이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저자는 이 작품을 그린 이를 찾아 나섰다.

다리외세크는 파울라의 흔적을 찾아 독일 보르프스베데와 브레멘을 방문하고, 그녀가 남긴 편지와 일기를 탐독했다. 그러면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의 우정,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호프와 나눈 삶의 고민들, 보르프스베데에서 만난 화가 오토 모더존과의 사랑, 결혼과 아이에 대한 생각, 그림에 대한 간절함을 알게 됐다.

파울라의 편지와 내밀한 일기 등 짧은 글에는 그녀의 삶뿐 아니라 그녀가 갖고 있던 생각과 고민들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여성의 자리 그리고 화가로서의 자의식과 욕망 사이의 갈등이었다. 보르프스베데에서는 부인의 역할과 창작의 욕구 사이에 고뇌했지만 새로운 미술을 찾아 여러 차례 홀로 파리에 갔을 때는 자유를 느꼈다. 파리에서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그림"을 그렸지만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 가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파울라의 연대기를 따라가다보면 100년이 넘도록 이어져오는 '여성의 삶'이라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시절 여성의 삶은 쉽지 않았다. 특히 파울라는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여성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당시에 새로운 미술로 떠오르던 모더니즘을 예견하는 형식을 구현했던 시도는 여성이기에 묵살당했다.

글은 파편 조각을 이은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짧은 단락으로 이어진 글은 파울라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과 닮아있다. 또한 글의 곳곳에 자연스럽게 소개한 파울라의 작품들을 통해 파울라의 미술적 재능과 그녀만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한국어판에는 원서에는 없는 파울라 모더존 베커의 작품 17점을 수록해 그녀의 예술세계를 조금이나마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파울라의 보르스프베데의 초기작부터 모더니즘의 경향이 엿보이는 후기작까지 고루 감상할 수 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