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관점, 가족의 눈으로 그려낸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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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관점, 가족의 눈으로 그려낸 한국전쟁
  • 입력 : 2020. 07.09(목) 15:20
  • 김은지 기자

지난 2018년 8월 26일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당시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을 마치고 버스에 오른 북측 가족들이 남측 가족들과 헤어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전쟁과 가족 | 권헌익 | 창비 | 2만원

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째 되는 해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2.7세인 것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간직한 살아있는 전쟁의 기억이 그 생을 다할 때가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쟁 문화사 연구자들은 이 시점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이해한다. 전쟁의 경험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그 전쟁을 누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 등 냉전 연구로 세계 인류학계에서 독보적 위치에 오른 저자 권헌익은 책을 통해 한국전쟁 당시 양민들이 처했던 현실과 폭력이 작동한 방식을 가족과 친족의 관계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저자는 한국의 전통적 공동체에서 인간적 친밀함이라는 환경이 어떻게 한국전쟁이라는 정치의 주요 표적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후 긴 냉전 시기 동안 어떻게 국가적 규율 행위의 핵심이 되어왔는지 분석한다.

안동, 제주 등의 현지조사를 통한 인류학적 분석은 문학, 사회학, 정치학, 역사학과 만나 전 지구적 분쟁의 최전선에서 벌어진 냉전적 근대성의 본질을 묻는다.

저자는 한국전쟁이 지금의 세계를 만든 전쟁이라고 말한다. 전 지구적 냉전체제를 형성한 초기 주요 사건이면서 최근 새롭게 부상한 중국과 미국의 소위 신냉전 구도의 뿌리도 한국전쟁에 있다는 것이다.

1990년 냉전이 종식됐지만 한반도에서는 냉전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남북 관계에서도 북미관계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으로, 동서 대결의 냉전이 종식된 지 어언 한세대가 지났음을 상기하면 놀라운 사실이다. 남북 분단과 휴전상태가 이어지면서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냉전의 섬'으로 남아있다.

전쟁과 가족. 창비 제공

1950년, 서울을 번갈아가며 덮치던 폭력의 물결은 가족, 이웃의 삶을 산산조각 내면서 그들 간에 놓인 유대와 연대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경험을 문학을 예시로 들며 그 속에서 얼마나 핍진하게 형상화되고, 작가의 역사적 인식이 작품으로 어떻게 결정화되었는지 분석해 '관계'가 핵심 용어로 등장함을 포착한다. 한국전쟁의 폭력은 가족·친족관계의 환경에 잔혹하고도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 관계적 고난이었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장에서 친족 세계는 공적 세계에서 독립되어 존재하는 사적 영역일 수도 없고, 이기적 개인의 연합인 사회에서 물러나 찾을 수 있는 은신처가 되어주지도 못했음을 지적한다.

또 전쟁 당시 북한군과 남한군이 번갈아 점령하면서 무수한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남으로 혹은 북으로 이동했다. 이 때문에 전후 한반도의 인간 조건과 관련해 아주 중대한 쟁점, 이산가족의 곤경이 생겨난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적의 영역으로 넘어갔다고 의심되는 자의 가족 전체가 감당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됐다. 저자는 이산가족과 연대책임이라는 두 현상이 가족과 친족 내에 극심한 존재적·도덕적 위기를 초래했음을 지적한다. 동시에 연좌제라는 규율 권력이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대상으로 작동되었는지 푸코, 보글리스 등의 이론을 통해 촘촘히 분석한다. 그리고 그 규율권력은 그 개인을 도덕적 인격으로 만드는 촘촘한 관계망을 표적으로 삼아 작동된 것이라 말한다.

산자는 정치적 두려움 없이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은 자는 친족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위험 없이 친족 세계에 귀속되고 기억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한반도가 우애와 연대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는 지금 한국전쟁 70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20세기 대표적 내전이자 가장 폭력적인 내전인 한국전쟁이 세계사의 넓은 치평을 차지하는 자리를 이해하는데, 이 책이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이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