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을 알수없는 불안에 대한 끈질긴 천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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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을 알수없는 불안에 대한 끈질긴 천착
  • 입력 : 2020. 07.09(목) 15:16
  • 박상지 기자
실패한 여름휴가

허희정 | 문학과지성사 | 1만3000원



2016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허희정 작가의 첫 소설집이 출간됐다. 허 작가는 '실패한 여름휴가'에서 온전히 도저히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 곧 이성적 판단이나 논리적 인과로 설명하기 힘든 불안의 감각을 형식과 이미지로 구체화해낸다. 문장을 무대 장치처럼 쌓아올렸다가 부서뜨리고,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기를 거듭하면서 흔적과 파편을 층층이 겹쳐 만든 그의 소설은 섣부른 정의나 명명을 비껴나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작가의 소설은 누군가가 떠나가고 남은 공백에서 시작하곤 한다. 작품 속 인물은 곁에서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거나, 곧 사라질 누군가에 대해 생각한다. 우울증을 앓다가 떠나버린 연인을 기다리면서('파운드케이크'), 대재난 이후 지구 복귀를 위해 파견됐던 프로젝트에서 실종된 탐사 파트너를 떠올리면서('우중비행'), 친구의 죽음을 알게 된 뒤 함께 알던 또 다른 친구에게 뒤늦은 안부를 묻는 편지를 쓰면서('망가진 겨울여행'), 록밴드 해외 공연 티켓을 양도해준 팬카페 회원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오랜 불안을 되새기면서('인컴플리트 피치') 이야기는 시작되고, 타인의 흔적을 침착하고 집요하게 되짚어나간다.

그러나 기억은 기록이 되는 과정에서 사실과 사실 아님이 뒤섞인 채 불완전한 단서가 돼버린다. '까맣게 덧칠된 필름, 잘려 나간 페이지, 이미 섞여버린 반죽'(실패한 여름휴가 중)처럼, 층층이 쌓인 흔적으로 그려진 그 '누군가'의 모습은 희미할 수밖에 없다.

결국 빈 자리는 채울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 작가는 소설 속의 사람이든 소설 밖의 사람이든 온전히 도저히 영원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채로 쓰고, 쌓고, 허물고, 다시 쓴다. 우리는 허희정의 미완성을 향한 이러한 여정에서 이루어지는 시도들을 지켜보고 예민한 감각적 경험을 함께하면서 은유로 존재하던 감정을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