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유산 기행 上>잊혀졌던 우리 줄기, 백제의 흔적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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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백제문화유산 기행 上>잊혀졌던 우리 줄기, 백제의 흔적따라
언론재단 ‘백제세계문화유산기행’ 연수 답사기||충남 공주·부여·전북 익산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지구' 현장 찾아||백제의 부흥부터 멸망까지 한 걸음에
  • 입력 : 2020. 07.19(일) 17:15
  • 김은지 기자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공산성의 모습.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삼한지중 백제최강최문(三韓之中 百濟最强最文)'라고 밝힌바 있다.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고 문화가 발달했다는 의미다. 같은 시기 한반도를 지배했던 고구려, 신라에 비해 공예술과 건축기술이 발달했고, 해상거점을 개척했다. 이처럼 독자적인 기술과 문화를 형성하며 문화강국으로 이름을 떨쳤던 백제로 역사기행을 떠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백제세계문화유산센터는 백제문화유산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9일과 10일 양일간 '백제세계문화유산기행'을 진행했다. 특히 백제역사지구는 지난 2015년 지자체의 노력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 있다. 본보는 백제 역사기행을 통해 찬란한 백제문화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나주 영산강 일대에 형성됐던 '마한'의 독자적인 문화가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기까지 기울여야 하는 노력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660년까지 700여 년간 한반도에서 고대문화를 형성했던 국가 백제(百濟). '백제'는 백가제해의 줄임말로 물을 가진 수많은 가문이 물(氵)을 다스린다는 뜻과 많은 나루터를 가진 나라라는 의미다. 백제라는 이름 자체가 동아시아의 강과 바다를 지배하던 거대한 해상왕국이었음을 뜻한다. 가슴뛰는 6세기 해상왕국으로의 기행은 충남 공주시, 부여군, 전북 익산시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지구 일대에서 이루어졌다.

●백제의 찬란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공주'

백제의 두 번째 도읍지이자 웅진 백제의 심장이라 불리는 충남 공주시의 공산성에서 본격적인 답사가 시작됐다. 성벽 길이 약 2.6km에 이르는 고대 성곽인 공산성은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아진 방어성으로 해발 110m에 위치해있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 서 남쪽에는 가파른 성벽이 자리하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이점을 가진다. 성벽의 가장 위쪽에 자리한 공산정에 올라서면 공주시내의 전경과 그곳을 감싸고 흐르는 금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또 왕궁지로 추정되는 터와 부속시설지에서는 현재도 발굴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충남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에 재현된 무령왕릉 내부 모습.

다음으로 찾은 공주의 백제문화유산은 송산리 고분군 유적지였다. 이곳은 웅진 시기 백제왕과 왕족들이 묻혀있는 무덤들로, 그중 무령왕릉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무령왕릉에 비해 비교적 일찍 발굴됐던 1~5호 분은 백제 전통 무덤 양식인 굴식 돌방무덤의 형태를 띠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무덤이다. 이는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무덤 양식으로, 백제가 웅진 시기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냈음을 의미한다. 또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됐으며,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만 4600점 이상으로 당시 백제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익산'

전북 익산시는 백제 후기의 무왕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다. 강력한 왕권과 백제의 재부흥을 꿈꿨던 노력의 흔적이 익산 곳곳에 남아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미륵사다. 미륵사지는 동아시아 최대의 사찰터중 하나로, 백제 문화의 탁월한 독창성을 보여준다. 백제 고유의 가람배치 형식인 일탑 일금당 형식에서 확장해 삼탑 삼금당 형식의 독특한 배치 형식으로 조성됐다. 이 같은 배치는 미륵부처가 지상에 내려와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원하는 모습을 사찰 배치에 표현한 매우 특이한 사례다.

국보 제11호로 등재된 서탑은 2001년부터 해체보수가 진행돼 2019년에 완료됐다. 이 과정에서 사리봉영기가 발견돼 639년에 석탑이 건립됐음을 알게 됐다. 미륵사지 유적지 인접한 곳에 설립된 국립익산박물관에서는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의 복원 모형을 만나볼 수 있다. 실제 사리장엄은 서탑 심주석 사리공에 다시 봉안됐으며, 금동제사리외호, 금제사리내호, 유리병으로 구성된 3종의 사리기는 석탑의 축조, 미륵사 조성에 대한 역사성에 진정성을 더해준다.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

또 다른 익산의 유적으로는 왕궁리 유적이 있다. 왕궁리유적은 백제 무왕기에 조성된 왕궁으로, 발굴조사 경과 장방형의 궁장 내무에서 왕궁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들이 확인됐다. 왕궁의 북쪽에는 현존하는 백제 유일의 후원이 있다. 중국에서 가져온 수석과 각종 시설들은 백제 후기의 화려한 정원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왕궁리유적이 특이한 점은 7세기 이후로 사찰로 기능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왕궁리 5층 석탑은 백제 또는 그 시기 이후로 축조시기를 추측 중이며, 백제 석탑 건축의 기본이 후대로 전해진 양상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충남 부여군에 자리한 정림사지 5층석탑.

●백제 최초의 계획도시 '부여'

다음날 방문한 곳은 백제의 마지막, 사비시기의 숨결이 살아있는 부여였다. 익산에 미륵사지가 있다면 부여에는 정림사지가 있다. 정림사지는 사비도성의 중앙에 위치했던 절터로, 도심에 세워진 절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불·법·승의 불교 3보를 모두 구비한 백제 고유의 사찰 건축을 보여주는 정림사지, 그 한가운데 위치한 정림사지 5층 석탑은 원형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목탑의 한계를 극복한 높이 8.3m의 탑은 완벽한 균형미와 비례미를 자랑하며 백제만의 우아함과 절제미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백제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는 부여인 만큼, 낙화암과 고란사 등 백제의 전설과 관련된 역사적 흔적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관북리 유적과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부소산성은 왕궁의 후원이자 비상시 방어성으로 사용돼 지금도 그 당시의 성벽을 확인할 수 있다.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뛰어내렸다는 '낙화암'도 바로 이곳에 있다.

● 1500여 년 전 우리 역사,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지난 2015년 7월 8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에서는 12번째 세계유산이다.

이 결정으로 475년부터 660년까지의 웅진 사비기의 백제 도성 유적 8개소, 익산, 공주, 부여로 통하는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웅진 시기 유적인 공주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 사비시기 유적인 부여 관북리 유석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 사비시기 백제의 또 다른 중심지였던 익산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세계유산 등재기준 10개 항목 중 (ii), (iii)이 충족된다고 인정받았다. (ii)의 경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고고학 유적과 건축물은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고대 왕국들 사이에 있었던 상호 교류를 통해 이룩된 백제의 건축 기술의 발전과 불교 확산을 가져온 교류의 증거가 된다. (iii)는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볼 수 있는 수도의 입지 선정을 통해 백제의 역사, 불교 사찰과 고분, 건축학적 특징과 석탑 등이 백제 왕국의 고유한 문화, 종교, 예술미를 보여주는 탁월한 증거를 제시한다고 인정받았다.

이 같은 백제역사유적지구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수많은 역경이 있었다. 당초 충남과 전북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각자 추진해왔다. 충남의 유네스코 등재 노력은 27년 전인 1994년부터 시작된다. 1994년 9월 '무령왕릉과 송산리 고분군'이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2006년 12월 이코모스 한국위원회로부터 무령왕릉만으로는 등 재조건이 안되니 공산성과 부여의 백제유적을 연계해 잠정목록을 신청할 것을 권고받았다. 이에 따라 2007년 학술용역을 거쳐 2009년 12월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신청했고 2010년 1월 등재가 확정됐다.

문화재청과 해당 광역, 기초 자치단체는 백제문화의 중심지인 백제왕도가 세계적인 역사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상호 협력키로 했다. 그러다 2011년 2월 문화재청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 우선 추진 대상을 선정하면서 같은 백제 유적인 충남 공주, 부여에 전북 익산을 통합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재를 추진하게 됐다.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선정된 5개 광역, 기초 자치단체는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문화유산의 OUV(뛰어난 보편적 가치), 진정성, 완전성을 입증하는 이론 배경도 다시 가다듬어 정리했다. 또 익산, 공주, 부여지역에 조직되어 활동 중인 고도 주민협의회의 지역주민 활동도 가산점을 받는 데에 중요한 요인이 됐다. 체계적으로 구성된 준비 위원회와 추진 위원회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데 큰 공헌을 한 것이다.

5개 자치단체가 함께 보존하는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 세계유산센터를 설립해 유적지구의 지속 가능한 보존과 활용을 통해 전 세계인들과 백제문화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