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유산 기행 下> 호남만의 '고대국가' 세계문화유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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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백제문화유산 기행 下> 호남만의 '고대국가' 세계문화유산 될까
독자적 문화 구축…'백제 속국논란' 일축||중국 역사서에 위치·마한인 생활모습 기록도||지자체, 공동발전 협약 등 노력 불구||보편성, 독자성 등 확보 과제
  • 입력 : 2020. 07.20(월) 17:31
  • 김은지 기자

나주 영산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는 고분군의 모습. 전남일보DB

나주, 영암, 함평 등 영산강 일대에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수백개에 이르는 거대한 구릉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진 모습이다. 마치 경주 대릉원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봉분을 한 전형적인 고층 높이의 고분에서부터 옹관고분, 석실고분, 아파트식 고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분의 형태를 보고있으면 수십세기 전 이 지역을 지배했던 세력에 대해 궁금증이 든다. '마한' 연구의 시작이다.

●왜 마한일까=현재 나주시 인근 영산강 유역에는 480여 개의 마한의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그 수는 경주보다 더 많고, 규모 역시 더 크다. 고분은 묻힌 이의 정치적 세력과 후계자의 사회적 위세를 상징한다. 마한의 대표적인 유물인 금동관(국보 295호)이 출토된 '신촌리 9호분'의 경우 연간 5000명 이상의 인원이 동원돼야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당시 출토 된 금동관은 백제, 신라의 금동관과는 전혀 다른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그 뿐인가. 출토된 유물 하나하나는 마한만의 독자성이 묻어나있다. 마한을 대표하는 토기인 구멍 도기,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의 금동관, 금동신발, 세잎 무늬 고리 자루 칼, 그리고 거대한 항아리 2개를 붙여서 만든 옹관(독널)들이 백제와의 차별성을 증명하고 있다. 독자적인 유물들은 '마한은 백제의 속국이었을 것'이라는 설에 반기를 들었다. 성곽 등 결정적인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고대국가체계에는 근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역사서 '후한서'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도 마한의 존재를 설명하고 있다. 이 역사서에는 "마한은 서쪽에 54국, 진한은 동쪽에 12국, 변한은 남쪽에 12국이 있는데 마한이 가장 강대하다"고 서술돼 있고, 또 마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농사와 양잠을 할 줄 알고 씩씩하고 용감하다. 해마다 5·10월에 농사일을 마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자리를 베풀고 집단으로 가무를 즐긴다. 춤출 때는 수십 명이 줄줄이 서서 땅을 밟으며 손과 발로 장단을 맞춘다"는 기록이 있다.

●마한은 어떤 곳=마한은 기원전 2세기부터 경기·충청·전라 지방에 분포한 54개 소국을 가리킨다. 한강 유역의 백제가 영역을 넓히면서 대부분 복속됐으나, 영산강 유역의 마한 세력은 비교적 장기간 독자적으로 세력을 유지했다. 마한은 남도의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평야를 기반으로, 독특한 형태의 옹관고분을 발달시키고 현재 일본의 규슈 지역과 해양교류를 확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제에 병합되면서 '변방의 역사'로 기록됐다. 최근 활발히 이어진 마한에 대한 연구로 마한의 성립시기와 사회적 특징은 윤곽이 그려졌지만, 학계에서는 마한이 백제에 복속된 시점을 두고 논란이 활발하다.

당초 마한이 백제에 완전히 복속됐다고 여겨진 시기는 근초고왕이 남쪽 정벌을 한 4세기 중반부터 4세기 후반 사이라는 설이 우세했다. 하지만 영산강 유역에서 4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백제와 전혀 다른 형태의 옹관묘가 발견돼 마한의 정치 세력이 5세기까지는 유지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에는 송제리 고분 발굴 성과를 통해 백제의 마한 정복 시점이 6세기 전반이라는 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마한의 대표적인 묘제 양식인 옹관의 모습. 국립나주박물관 제공

노성태 국제고 수석교사는 "호남지역이 근초고왕으로 인해 4세기부터 백제에 병합됐다면,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무령왕릉보다 18m가 더 클 수 없었을 것"이라며 "우리 지역의 뿌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질문이다. 만일 6세기 초까지 마한이 호남지역에서 건재했다면, 우리의 뿌리는 백제가 아닌 마한이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한, 세계문화유산 될까=마한이 백제와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음을 알리기 위해 2015년부터 나주시는 영산강 유역 고대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본격 추진키로 했다. 이를 위해 마한 역사 문화 유적지와 국립나주박물관을 연계해 매년 마한 문화제를 진행해왔다. 또 전국 최초 마한 교과서 발간과 고고학 관련 학술대회 개최, 마한 애니메이션 제작 등 현대사회에서 고대 마한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에는 목포시와 나주시를 비롯한 담양, 화순, 해남, 영암, 무안, 함평, 영광, 장성, 신안 등 11개 시군이 참여해 마한 문화권 지역 공동발전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여기에 국립나주박물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전남대박물관, 목포대박물관, 동신대영산강문화연구센터, 전남문화관광재단, 나주복암리고분전시관, 마한연구원 등 8개 시군 유관기관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마한역사문화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자체 사업 발굴, 특별법 제정 및 국가계획 반영, 동아시아 고대문화 해양 교류의 중심지인 마한역사문화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관리 기반 구축 등에 공동 협력할 계획이다.

●향후 과제는=마한역사문화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운영지침은 유산의 탁월한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으로 다음 10가지 가치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기준 Ⅰ부터 Ⅵ까지는 문화유산에 해당되며, Ⅶ부터 Ⅹ까지는 자연유산에 해당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선 최소 1개 이상의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백제문화유적지구의 경우 기준Ⅱ(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하는 문화)와 Ⅲ(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을 충족시켰다. 이에 반해 마한역사문화권의 연구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다시말해 현재까지는 단 한개의 조건도 충족되지 않았다. 현재 중·고등학생들의 교과서에는 이병도 박사의 4세기 병합설이 반영돼 있어 문화 형성의 상징성은 물론, 보편적 중요성도 인정받기 힘든 상황이다.

노 수석교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기본적으로 재질이나 기법 등에서 유산이 진정성을 보유하고 있어야한다"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마한의 유적과 유물들이 독자적으로 만들어졌음은 물론, 마한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한 정체성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승자에 의한 기록된 역사를 바로잡고, 세계가 인정하는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영암 내동리 쌍무덤에서 출토된 금동관(편). 영암군 제공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