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문화Ⅱ> 4.바닷길, 아시아를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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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아시아의 문화Ⅱ> 4.바닷길, 아시아를 잇다
전근대 아시아 표류기를 통해 본 아시아 문화 교류와 해상 네트워크 ||안재연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기획팀장
  • 입력 : 2020. 07.23(목) 16:50
  • 편집에디터

아시아의 표해록. 아시아문화원 제공

지금으로부터 약 530여 년 전 한 중년의 나주(羅州) 선비가 왕명을 받아 중국에 표류했던 경험을 붓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친부상을 치르기 위해 급히 제주도에서 귀향하던 중 절강(浙江)에 표착했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제주도에 부임한 사연부터 여섯 달만에 한양에 당도하기까지의 여정을 빼곡하게 세 권에 나누어 적었다. 최부(崔溥, 1454~1504)의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은 그렇게 탄생했다.

최부 '금남표해록'. 전남대학교 제공

최부는 산더미처럼 몰아치던 폭풍우, 처음 보는 고래와 신기한 해양 생물들, 배고픔과 기갈보다 더한 두려움으로 점철된 생환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해양문학의 한 흐름을 일구었다. 또한 강남의 대표적 도시였던 항주, 소주를 거쳐 양자강을 건너고 북경과 한양에 도달하기까지 목도한 명(明)의 풍속, 산천, 제도, 운하와 문물 등을 손에 잡힐 듯 기록했다.

'표해록'이 엔닌(圓仁)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더불어 중국 3대 여행기로 손꼽히고 있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수차의 이용과 제작법은 이후 충청도 해갈에 도움이 되어 아시아 과학사의 산 증거가 되었다. 성종의 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표해록'이 낯선 땅에서의견문을 나누고자 했던 그의 열정의 소산이었음은 분명하다.

돌이켜보면 동아시아에서 표해록을 남긴 이가 최부만도 아니었고, 모두 임금의 명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뜻밖에 접한 아시아의 풍경과 간난신고의 경험을 기록하려 한 아시아인의 자발적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아시아문화연구소가 전근대 아시아 표해록에 주목한 첫 번째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시아 표해록을 통해 서양과의 접촉이 본격화되기 전 실재했던 아시아 문화 교류의 한 양상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아시아를 위한, 아시아에 의한 기록 발굴은 정복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하려는 최근 문화 연구의 흐름에도 부합한다. 또한 표해록은 국가, 저자, 혹은 기록 시기에 따라 상이한 특징을 보인다. 이를 비교한다면 자국의 역사와 타자의 시선을 종합하여 '함께 기억하는 인터아시아의 역사'를 구조화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시아가 담은 아시아의 모습을 통하여 같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로 발전시키고자 함이 본 연구의 출발점이자 주요 목적이다. 다른 한편, 표해록이 가진 문화적·인류학적 가치에도 주목했다. 표해록은 뜻하지 않게 정처 없이 '표류(漂流)'했다가 돌아와 남긴 기록으로서, 박진감 넘치는 해양 체험과 이국의 풍속·제도 등을 기록한 역사기록이다. 연행록이나 조선통신사 등의 사행기록이 공적인 외교문서라면, 표해록은 벼슬아치, 무사, 어민, 무역상, 승려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남긴 현장감 넘치는 사료로 볼 수 있다. 표해록은 대개 표착한 국가의 산천, 사람, 사회, 제도와 문물 등을 담은 일종의 민속지였다.

표해록이 가진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도 빼놓을 수 없다. 표해라는 돌발적인 사건과 '표류의 발생-바다에서의 위기–표착–이국 생활과 송환 여정–귀국'이라는 서사 구조는 문화 콘텐츠로서의 잠재력이 상당히 크다. 해난사고를 당하면 생환의 가능성이 극히 낮았던 과거, 육지에 닿아 생존하기까지의 과정과 미지의 세상을 여행하면서 귀환하는 이야기는 그 당시는 물론 오늘날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온갖 역경을 뚫고 귀환한 주인공들은 '(문화) 영웅'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문화연구소는 표해록이 집중적으로 생산된 15세기부터 19세기 아시아 표해록을 연구했다. 우리나라 제주도와 일본의 경우,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는 지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가장 많은 표해록이 배태되고 선행 연구도 적지 않다. 따라서 연구소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진한 여타 아시아 표해록을 집중 발굴하는 데 역점을 두어 대만에서 베트남으로, 류큐와 일본에서 충청도로, 혹은 조선에서 류큐와 필리핀을 거쳐 마카오로 표류했던 기록들을 조사했다. 궁극적으로 표해가 아시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이며, 이를 통해 아시아 해양문명 네트워크의 한 축을 구성하는 데 일조했음을 규명하고자 했다.

아시아문화연구소는 2019년 지난 3년간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2019 라이브러리파크 테마전 《아시아의 표해록: 바다 건너 만난 이웃》을 개최한 바 있다. 올해는 2018년부터 부경대학교 인문한국플러스(HK+)사업단과 지속한 공동연구가 속속 결실을 맺고 있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시아 각국이 풍랑을 헤치고 교류를 했던 기록을 모은 번역서 『아시아 표해록』과 '조선표류일기'가 발간됐다.

'아시아 표해록'(왼쪽)과 '조선표류일기'. 아시아문화원 제공

'아시아 표해록'에 수록된 7편의 기록 중 2편은 부산에서 출발해 표류하다 북해도와 일본 본토,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온 이지항의 '표주록'(1696년)과 제주도를 출발한 뒤 풍랑을 만나 베트남까지 표류한 뒤 돌아온 김대황의 '표해일록'(1687년)이다.

한국 표해록을 제외한 5편은 처음 소개되는 자료이며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시아 각국이 풍랑을 헤치고 해상 교류를 했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표해록은 대만을 출발해 베트남으로 표류한 기록인 채정란의 '해남잡저'(1836년)이며 중국에서 출발해 베트남에 표착한 반정규의 '안남기유'(1688년)와 일본으로 표류한 정광조의 '표박이역'(1842년)이 수록됐다.일본의 표해록으로는 일본에서 표류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뒤 만주와 조선을 거쳐 돌아온 표류민들의 구술을 받아 적은 이시이 본의 '달단 표류기'(1644년)가 실렸다. 베트남의 표해록으로는 일본으로 표류한 군인들의 이야기를 옮겨 적은 장등계의 '일본견문록'(1815년)이 담겼다.

이지항 '표주록'.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채정란 '해남잡저'. 남개대학교 도서관 제공

'조선표류일기'는 야스다 요시카타安田義方라는 일본 큐슈 지방의 중급 무사가 조선에 표류하게 되면서 남긴 일기이다. 그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표류일기'에 유려한 필치로 고단했던 표류의 여정을 담았으며, 섬세한 붓놀림으로 19세기 조선의 풍광과 민속을 재현하였는데, 총 37장을 그림을 남겼다.

야스다 요시카타 '조선표류일기'.고베대학교 도서관 자료실

한편 이 두 발간물 출간을 기념하여 오는 27일부터 부경대에서 '아시아의 표해록: 바닷길, 아시아를 잇다' 전시가 개최되며, 10월27∼29일 부산에서 개최되는 제14회 세계해양포럼에서도 소개될 예정이다.

안재연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기획팀장. 아시아문화원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