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열매가 가르쳐 준 '공생', 작업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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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한 알의 열매가 가르쳐 준 '공생', 작업의 숙명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살아남기 작업하기 살아가기||
  • 입력 : 2020. 07.23(목) 18:02
  • 박상지 기자

김수진 작 '삶, 여행' (2020)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가는 시기가 있다는 의미다. 시절인연은 사람과의 관계에만 국한되는건 아니다. 일, 물건과의 만남에도 때가 있단다. 영문학도였던 김수진(35) 작가가 뒤늦게서야 미술대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시절인연이 무르익었기 때문이었다. 미술 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고, 어린시절 대부분의 추억엔 그림이 있었다. 때문에 미술대학에도 무난히 진학할 수 있을 줄 알았단다. 예술은 생계수단이 될때 고달파지기 마련이다. 부모님은 김 작가에게 '예술가의 길'을 쉬 허락하지 않았다.

● 살아남기: 내면에 귀 기울이다

"어릴때부터 부모님의 작업이 재미있어 보였어요. 직업으로서 작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부모님은 그게 아니었나봐요. 좋은 직업,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중·고등학교때 미술학원 다니고 싶다고 했을땐 반대가 심하셨죠. 결국 영문과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대학 졸업 무렵 직업에 관한 고민이 찾아왔고, '좋은직업=안정적인 직업'이라는 판단에 공무원 고시를 선택했다. 2년여의 고시생활은 치열했다. 별 보고 나와 별 보고 들어가는 나날이 계속됐다. 몸과 마음에 병이 찾아왔다.

"고시 생활이 길어지니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공무원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즐거워야 하고, 그 즐거움이 또 수험생활을 하게하는 원동력이 돼야하는데, 저는 상상을 해도 즐겁지가 않았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공무원이 아니었던거죠. 마음이 그곳에 없으니 수험생활을 유지할 수 없겠더라고요."

쇠약해진 몸과 매듭짓지 못한 수험생활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면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 덕이다. 다시 생각해도 김 작가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이었다.

27살에 전남대 미술대학에 편입학했다. 퍽퍽한 수업과 산적된 과제가 그저 즐겁기만 했단다.

"미술대학은 과제도 그림이고, 공부도 그림이에요. 앉아서 종일 그림만 그리는데 피식 웃음이 나는거에요. 그렇게 하고싶었던 그림을 눈 떠서 잠들기 직전까지 하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미술대학에서 공부해보니 그동안 내 생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도 알 수 있었어요. 미술 대학시절은 내 정체성과 작업에 방향을 찾아갈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어요. 난 한국사람이고, 광주사람이니 한국적인 것과 광주적인 것을 표현할 계획입니다. 내 안에 것을 지키는 것이 곧 경쟁력이기 때문이죠."

●작업하기: 生과 死의 답을 구하다

김 작가의 아버지는 불상을 제작하고, 어머니는 탱화를 그린다. 김 작가가 가진 바탕이다. '내 안에 것'을 풀어내야겠다고 했을때 빠뜨려서는 안될 김 작가의 일부이자 전부이다. 미술대학 졸업작품전에서 처음으로 그의 정체성 중 일부를 작품을 통해 풀어냈다. 각자의 작업에 몰두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2016년 '씨앗'이라는 주제로 무각사 갤러리를 통해 대중에게 선보였다. 어린시절부터 지속돼 온 '생(生)과 사(死)'에 고민을 김 작가는 '자아성찰'에서 찾았고 성찰의 과정이 작업의 씨앗이 됐다.

지난 2018년까지 연달아 열린 김 작가의 개인전은 '생과 사'라는 큰 주제 아래 이에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16년엔 '자아성찰'이 '생과 사'의 답에 대한 '씨앗'이라는 것을 이야기 했다면, 2017년에는 탄생과 죽음의 연결을 '삶'으로 보고 답을 구했다. 답은 2017년 전남대 용봉관에서의 개인전 주제 '공생'을 통해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무화과를 참 좋아해요. 우연히 무화과가 수분을 맺는 방법에 대해 알게되면서 진정한 공생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어요. 무화과는 무화과 말벌(좀벌)과의 공생으로 수분을 하고 열매를 맺어요. 무화과는 좀벌에게 생의 장소이자 죽음의 공간을 제공하고, 좀벌은 무화과의 화분을 몸에 묻혀 다른 무화과 안으로 들어가 수분을 맺게 해주죠. 어떤 존재이든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듬해 열린 개인전 Figverse(fig + universe)에서도 '공생'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전 개인전이 무화과 나무의 전체적인 모습에 집중했다면, 2018년 개인전에서는 무화과 열매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했다. 무화과 열매 속에서 일어나는 삶의 순환과 생의 감각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에서다.

"린 마굴리스의 세포공생설을 믿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포 하나에도 대우주의 자연법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진화를 위한 세포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에서도 '공생'이 전제가 돼야 하는거죠."

●살아가기: 진정한 '공생'을 말하다

김 작가의 공생에 관한 이야기는 향후에도 지속 될 전망이다. 주제를 풀어내는 작업에도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그동안에는 유화물감을 사용해 질감을 살려 작품에 생동감을 부여했다면, 올해에는 유화물감 대신 먹과 아크릴물감을 시도했다. 내달 열리는 2020 작가미술장터 'New wave of Local Arts-광주'에서는 '공생'에 대한 고민과 답을 담은 새로운 시도의 작품 두점을 처음 선보인다. 그간의 작품들에선 다양한 색채 구성과 표현을 감상할 수 있었다면,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에선 먹의 농담이 만들어내는 담백함을 즐길 수 있다.

"삶의 강렬한 욕구는 '나에게 직면하려는 나'로부터 나오는 것 같아요.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또는 그 과정에서 나오는거죠.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도 알아요. 살아있는 생명체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비롯되어 살아가게 되니깐요. 그러니 홀로 설 수도 있어야 하고, 동시에 함께 살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의미의 '공생'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풀어나갈 계획입니다."

김수진 작 'figverse- 각자의 생'(2018)

김수진 작 '어느 날'(2017)

김수진 작 '어떤 生'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