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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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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개구리

게재 2020-07-29 13:03:23

1960년대 강강술래 남생이놀이와 개고리타령 연습-진도 지산면 인지리 설진석 제공
1960년대 강강술래 남생이놀이와 개고리타령 연습-진도 지산면 인지리 설진석 제공

"개고리 개골청 방죽아래 왕개골/ 왕개골을 찾을라믄 양폴을 뜩뜩 걷고 미나리 방죽을 더듬어/ 어헝 어헝 어헝 낭 어헝 어라디야/ 삼대독자 외아들 병이 날까 수심인데/ 개고리는 머하라 잡나 외아들 꾀아진데 데려믹일라고 잡었네" 강강술래의 여흥놀이 중 하나, 개구리타령이다. 수년 전 나는 이 지면을 통해 강강술래의 남생이놀이를 '천렵(川獵)'놀이로 해석한 바 있다. 삼복더위의 피서놀이 중 고래의 유속으로 남아있는 천렵이 역동적인 강강술래와 묶이면서 그 생동감을 더했다는 주장이었다. '남생이놀이'가 솔가지와 나무젓가락 등의 가사를 통해 간접적인 풍경을 묘사한 것이라면 '개구리타령'은 보다 직접적이다. 농어촌에서 자란 세대들은 익히 기억할 것이다. 미나리 방죽을 더듬고 마을 늪을 헤집어 개구리를 잡던 채렵의 풍경 말이다. 강강술래에 삽입된 여흥놀이 때문이겠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천재교과서 초등4 등)에서도 즐겨 다루고 있다. 남생이놀이와 연행하는 또 다른 버전도 있다. "개골 되야지골 방주굴에 오리발/ 오리발을 찾을라믄/ 미나리방죽을 더듬어라/ 한산한 세북소리 객귀수심을 도드난 듯/ 간다못간다 낙누하는 처녀야/ 내말 듣고서 따라 오너라/ 청산을 고금에 변함이 없어도/ 흐르는 물은 흘러가고 오지를 않네" 개구리를 마을 처녀에게 비교하여 설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가사는 모두 강강술래 등의 놀이에 편입되어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연원 깊은 노동요가 있고 심연의 철학이 있다. 노래 중의 외아들과 처녀를 읽는 시선이랄까. 동양 최고의 고전 <시경>의 심중으로 거슬러 오르는 강강술래놀이의 보다 근원적인 함의는 무엇일까?

강강술래 개고리타령, 향토민요와 경기선소리에서 남도잡가까지

개구리타령은 경기선소리(立唱)를 비롯해 다양한 버전으로 전승되어 왔다. 예컨대 1928년 녹음된 배설향의 음반 '개고리타령'은 남도잡가다. 손인애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개구리타령을 이렇게 설명한다. "개구리타령은 본래 사당패소리에서 비롯되었다. 근세 경기 지방에서는 선소리로 계승되었고 남도지방에서는 전문 소리꾼에 의해 민요 또는 잡가로 변화되었다. 이로 인해 남도에서는 음악적 성격이 크게 바뀌었는데 나름대로 예술화가 이루어지면서 판소리의 유명 대목을 따서 부르고 선율도 매우 기교적으로 발전하였다." 해석은 이어진다. 조선대학교 이상원의 연구에 의하면, 개구리타령은 본래 '청개골이타령'이며 분량이 짧은 노래와 긴 노래였다. 또한 향토민요, 통속민요, 경기잡가, 남도잡가의 흐름으로 전환되었다. 향토민요 단계에서는 개구리노래라 했다. 모찌기노래나 모내기노래 등 노동요의 일부로 존재했다. 개구리가 잃어버린 엄마를 그리워하거나 성담론이 내포된 짝 찾기 노래로 바뀌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남도잡가나 강강술래 여흥놀이로 정착했다. '삼월 삼짓날'로 시작되는 남도잡가 메들리의 개구리타령이나 강강술래 여흥놀이 중의 개구리타령이 남도 기반의 육자배기토리로 구성되고 오늘날 교과서에 수록되는 데 유랑극단의 예인들 나아가 판소리 창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주목할 것은 모내기에서부터 놀이까지 확산된 노래의 컨텍스트 이른바 개구리의 세계다. 교과서에 삽입된 전통문화로서의 개구리가 단순한 노래나 놀이의 차원, 한 시기 천렵에 포획된 풍경들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이다.

금와왕 개구리와 선덕여왕의 개구리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와왕 신화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동부여를 세운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제사를 지내려고 가던 중, 마침 타고 가던 말이 곤연(鯤淵)에 이르러 큰 돌 하나를 보고 자꾸 눈물을 흘렸다. 돌을 치우게 하니 거기에 금빛 개구리 모습을 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를 금와(金蛙, 금빛 개구리)라 하고 태자를 삼았다. 대를 이어 왕이 되었다. 이후 스토리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왕이 된 금와가 태백산 남쪽 유발수에서 사냥을 하다가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나 방에 가두었더니 창문으로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 알을 낳았는데 여기서 주몽 곧 동명성왕이 나왔고 고구려를 건국한다. 알의 유기, 고난의 극복 등 영웅 신화의 서사는 변화무쌍의 드라마다. 비유해본다. <장자>의 첫 구절부터 등장하는 곤(鯤)이 몇 천리가 되는지도 모를 큰 물고기이며 이것이 붕(鵬)이라는 새로 변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동부여 신화의 곤연이라는 의미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곤연에서 나온 금개구리이니 달의 정기 혹은 원초적 생명으로서의 상징성이 얼마나 클 것인가. 개구리 신화는 더욱 다채롭다. <삼국유사> 기이편에 의하면, 영묘사 옥문지에 겨울인데도 많은 개구리가 울었다. 이 사실을 알리니 선덕여왕은 정병을 여근곡에 보내어 적을 섬멸하도록 하였다. 군사가 서교에 가보니 과연 여근곡이 있고 적군(백제군) 5백여 명이 매복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섬멸했다. 여기서의 개구리 울음은 곧 백제군을 상징한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보면 유리왕 29년 6월에 모천에서 검은 개구리와 붉은 개구리가 무리지어 싸우다가 검은 개구리가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 이를 북부여가 패망할 징조로 읽었다. 오방색 중의 북쪽이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개구리 또한 서로의 군사들을 상징한다. 경남 양산 하북 자장암 연기설화도 흥미롭다. 자장율사가 법당 뒤 큰 암벽에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했다는 스토리다. 자장암 개구리는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벌, 나비, 거미 등으로 변하며 바위를 자유로이 뛰어 다닌다. 동명성왕이 된 금와 개구리와는 결이 좀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개구리가 신화 속에 매우 깊숙하게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나 사찰의 연기설화 뿐일까? 개구리 서사는 동아시아 전반, 아니 세계의 신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겨울잠과 경칩(驚蟄)의 함의, 민화 초충도 스토리텔링

우리 민화의 초충도(草蟲圖)에서 즐겨 그리는 것 중 하나가 개구리다. 다른 초목 및 야생화와 함께 그려 그 의미를 스토리텔링 해왔다. 지난 호에서 나는 오이를 사례 삼아, 강하고 부귀한 것들에 대응하는 저항기제로써의 민화, 그 중의 초충도를 거론한 바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여겨졌던 풀벌레들을 주목했던 여성들의 심성 혹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심성에 대해서였다. 하지만 풀벌레 그림은 그보다 훨씬 방대하고 융숭 깊은 이야기들을 행간과 여백에 가득 채워왔다. 오늘 사례 삼은 개구리만 해도 그렇다. 개구리는 겨울잠을 잔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거듭남과 재생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추운겨울 내내 땅속에서 잠을 자다가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가져오는 전령사이기 때문이다. 올챙이에서 개구리로 변신하는 형상은 매미의 탈바꿈만큼이나 경이롭다. 올챙이에서 비롯된 다산과 풍요의 특질은 단순한 기표일 뿐이다. 올챙에서 개구리로의 변신, 기다렸다가 일시에 튀어 오르는 도약, 다산, 여성의 임신한 배, 셀 수도 없는 올챙이 알들, 비의 전령사, 이들 변신의 기의(記意)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혁명이고 갱생이며 거듭남이고 부활이다. 그러기에 남중국과 동아시아 아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비와 여성성의 근원으로 그려졌던 것 아닌가. 금와왕 설화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복희와 여와, 혹은 아담과 하와를 관통하는 생식의 찬미가 개구리를 둘러싼 노래와 신화와 그림과 그리고 이야기들에 녹아들어 있다. 수많은 개구리들이 음양의 교합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흙으로 만든 신라의 토우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흙인형을 만들었던 신라사람들은 틀림없이 남중국과 동남아시아 혹은 이집트를 거쳐 전 세계를 유영했던 노마디스트들임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전 세계 보편으로서의 개구리 신화를 공유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인류 보편의 달의 철학을 공유하였던 것이 틀림없다. 묵화 혹은 민화만 해도, 신사임당을 비롯해 정선의 개구리와 오이 그림을 관통해온 세계관이 있다. 현대 민화작가들 중에서도 이를 즐겨 그리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한 장의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저 융숭 깊은 신화의 심연에 닿아있을까? 정인수 외 교사들의 한 연구(초등 한국화교육에서 초충도의 도입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현대사회가 상실한 자연관을 성찰하는 의미를 내세운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초충도의 일원론적 자연관이 학교폭력이 난무하는 오늘날의 학교에 조화와 가치를 심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공감 가는 분석이다. 그들 분석에 보태고 싶은 것들이 있다. 예컨대 개구리 노래와 개구리 신화와 개구리 그림들을 한 통속으로 꿰어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교수법, 학습모형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시공을 함께 보고 듣는 종합적인 이해의 태도이지 않을까? 개구리타령이며 개구리노래, 그림과 신화들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다.

남도인문학 팁

복희와 여와, 동남아시아 청동북(銅鼓)에서 이집트의 개구리 여신까지

수교 직후부터 다니기 시작한 중국과 베트남에서 매우 흥미로웠던 점 하나가 있다. 남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북쪽에서 산견되는 청동북이 그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 북의 표면에 다수의 개구리 모양을 장식한다는 점이다. 중국 신화전문가 김선자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중국 좡족(壯族) 사람들은 개구리를 비를 관장하는 천둥신의 딸 혹은 아들로 여겼다.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천둥신에게 보내는 음성 메지지라는 뜻이다. 논의 개구리를 몽땅 잡아먹어버리는 바람에 몇 년 동안 병충해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뜨거운 물을 뿌렸다가 개구리가 몽땅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흉년이 들어 고통당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좡족 북부지역에서는 매해 설마다 청개구리(마과이, 拐)축제를 연다." 흥미로운 점은 청개구리 장례 풍습을 재현하면서 한 해 동안 풍작이 들고 마을이 평안하기를 기원한다는 점이다. 한 해의 시작인 설날에 왠 장례를, 그것도 개구리의 장례란 말인가? 개구리의 겨울잠 현상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베트남의 중부 이북이나 동남아시아 또한 이 문화권과 궤를 같이 한다. 이집트의 개구리 여신 헤(Heh)나 헤게트(Heqet)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헤케트는 고대 이집트에서 개구리 모습으로 묘사되는 생명과 다산의 여신이다. 나일강의 신 크눔의 부인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고대 헤르모폴리스에서 숭배되던 여덟 신 중 하나이며 여신은 뱀과 융합되고 남신은 개구리와 융합되었다고 설명된다. 의미 독해야 연구자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와 강, 여성과 생식, 생산과 다산, 시작과 풍요를 상징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동양 최고의 신화 복희와 여와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와(女媧)는 복희와 남매로 나타나지만 성경의 아담과 하와와 유사한 캐릭터다. 여와는 여와(女娃)로 표기하기도 한다. 와(娃)는 와(蛙)와 상통한다. 개구리의 화신이라는 뜻이다. 달 속의 여신 항아(姮娥)의 원음 섬여(蟾蜍)와 유사하다. 달 속의 두꺼비와 개구리의 출처가 같다는 뜻이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섬진강 이름의 내력 곧 두꺼비를 말해왔다. 사실 여성성 토대로서의 두꺼비는 개구리와 큰 차이가 없다. 곧 여와를 개구리신, 음(陰)의 신, 달의 신으로 풀어도 무리가 없다. 남성성으로서의 삼족오나 태양, 별 등에 대칭하여 여성성으로서의 개구리 혹은 두꺼비와 달, 물고기 등을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구리타령의 이면을 주목한다.

강강술래 개고리타령 연습-진도군 지산면 길은리 사람들-촬영 이윤선
강강술래 개고리타령 연습-진도군 지산면 길은리 사람들-촬영 이윤선
개구리장식이 있는 청동북(남중국)
개구리장식이 있는 청동북(남중국)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토우장식 항아리의 개구리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토우장식 항아리의 개구리
이집트의 개구리여신 해(Heh)-구글에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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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오이와 개구리-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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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우의 민화-동화-개구리세상-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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