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함으로 녹여낸 인간 근원적인 불안과 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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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치밀함으로 녹여낸 인간 근원적인 불안과 고립
포스트코로나:살아남기 작업하기 살아가기 4〉윤준영||
  • 입력 : 2020. 08.05(수) 16:51
  • 박상지 기자

윤준영 작 '가둔 밤의 정원'

최고 명성의 예술가들이 하나같이 던지는 말이 있다. "예술에 우연이란 없다"고. 예술분야에 완벽주의자가 유독 많은 이유다. 미켈란젤로가 3대 걸작 중 하나인 모세상을 완성한 후 "어찌 아무말이 없으십니까"라고 울며 탄식했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돌로 실제 삶을 창조할 수 있다고 믿고 완벽을 추구한 그에게 모세상이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유감이었던 까닭이다. 5만점의 작품을 남긴 피카소는 "예술가에게 끝이란 없다. 예술가가 작업을 마쳤다는 것은 다만 이제 또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라며 예술가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완벽성'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래도 예술가의 완벽성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윤준영(35)작가의 작업이 그 답을 제시할 수 있다.

●살아남기: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예술고등학교 시절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윤 작가의 작업은 이렇다 할만한 변화를 겪지 않았다.

"예고 입시에서부터 현재까지 스타일에 변화를 주지 않았어요. 다만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중입니다. 완성도 높은 작업이 때론 비평가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기도 해요. 회화적인 느낌이 떨어지고 무뚝뚝하다는 거지요."

주제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좀 더 편하게 작업해도 될 듯 하나, 윤 작가는 소소한 부분까지도 결코 내버려두질 못한다. 수십년간 수도없이 노력했지만 작은부분까지도 챙겨야 하는 섬세함은 결국 고질병이 됐다.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렸어요. 섬세한 표현을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하자 작업에도 자신이 생겼어요. '작업에 우연의 결과는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모든 작업엔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데 있어 제가 가진 섬세함은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유의 또 다른 얼굴은 통제다. 자유가 주어진 만큼 스스로를 통제해야 해야하는 아이러니가 그에겐 일상이 됐다. 작품 구상에서부터 완성까지 한치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은데는 엄격한 상사 밑에서 근무하는 직장인과 다름없는 하루를 살고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일상에는 자유가 있어요. 그 자유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많은 시간을 버릴 수 밖에 없어요. 스스로 흐트러지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요. 누가 시켜서 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해야 해요. 저 역시 1년에 방학 두번을 제외하곤 직장인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요. 아침 9시에 일어나서 아침겸 점심을 먹고 1시에는 무조건 작업실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10시에 퇴근을 하지요. 작업을 하든 하지않든, 출퇴근 시간은 무조건 지키고 있어요."

●작업하기: 사회·삶 속의 '불안함'을 그려넣다

끝 모를 우주와 같은 어둠 속에 부유하듯 떠 있는 섬, 검은 물결로 굽이치는 적막한 바다, 근원 혹은 회귀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 미로 속의 집 등 윤 작가의 작업에는 소외와 불안, 갈등, 단절 등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흔하게 겪는 외로운 감정들이 드러나있다.

네명의 동생들과 복닥거리며 유년시절을 보내온 덕에 외로움이나 고립, 불안 등을 맛 볼 틈이 없었단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루어졌고, 사회구성원들이 갖는 감정들에 공감할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 나를 마주하게 됐어요. 나는 어떤사람인지, 예술가로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등에 대해 고민했죠.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도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자유롭지 않죠. 불안, 소외, 두려움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니까요."

사회구성원으로서 마주한 자신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화를 전공하면서 전통 채색화를 배경으로 작업했는데, 어느순간 강한 색들이 작품에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온전히 현대인의 고립감과 불안함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과감하게 색을 포기했다. 윤 작가 특유의 섬세함으로 도시와 자연을 견고하게 쌓아올리면서 지금의 작품이 완성됐다.

"단단하고 견고한, 독립적인 건축물들은 그 안을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거리감을 주고 있어요. 개인화 된 채 점점 고립된 섬과 같이 변하도록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셈이죠. 내 작업에서 도시는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 아닌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살아가기: 코로나? 그래도 작업은 계속된다

올해는 힘 빠지는 날이 이어지고 있단다. 숙련된 섬세함과 열정 덕에 100호 크기의 작품도 한달이면 완성할 자신이 있는데, 막상 전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음악, 공연예술, 책은 대면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데, 미술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코로나19로 시각예술은 위기를 맞고있는거죠. 저의 고민이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있는건 아니니, 일단 저의 작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더 의욕적으로요."

윤 작가의 이야기를 가장 잘 풀어줄 수 있는 장르는 평면회화이지만, 코로나에 맞서 새로운 장르에도 도전해 볼 계획이다. 장르가 다양하면 관람객이 받을 수 있는 자극 또한 다양해 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설치를 겸해볼까 합니다. 평면 회화 속에 등장한 구조물들을 현실로 옮겨오는 작업을 시도중이에요. 내 작품 하나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없지만, 작품을 보는 현대인들이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코로나19가 어떻든, 내년 개인전을 목표로 저의 이야기를 흔들림없이 이어나갈 계획이에요."

윤준영 작 'there'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