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숭고미 작품 '검은 비' 용도 폐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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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숭고미 작품 '검은 비' 용도 폐기 위기
아문당, 작가 기증 의사 불구 철거·이전 요구
  • 입력 : 2020. 08.03(월) 16:38
  • 오선우 기자
광주 동구 상무관에 전시된 정영창 작가의 5·18민주화운동 헌정 미술작품 '검은 비(碑)(black memorial)'. 5·18기념재단 제공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상무관에 전시된 미술작품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3일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5·18 40주년을 맞아 독일을 무대로 활동하는 정영창 작가가 상무관에 전시된 자신의 미술작품 '검은 비(碑)(black memorial)'를 헌정하겠다고 밝혔다.

기념재단은 "5·18 희생자 시신을 수습했던 상무관은 도청 본관과 함께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하지만 상무관은 5·18 38주년 기념전으로 '검은 비' 작품을 전시하기 전까지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갈 곳 없이 떠돌던 희생자들의 영혼이 상무관의 '검은 비' 작품 전시를 통해 38년 만에 시민들과 해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러나 구 도청과 상무관 등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을 관리하고 복원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작가에게 '검은 비' 작품을 상무관에서 이전하거나 철거해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상무관 공간의 복원을 추진하기 위해 작가에게 작품 철거를 요청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했다.

기념재단은 "복원을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2018년 5월 이후 상무관을 지키고 있는 작품 '검은 비'는 5·18민주화운동의 예술적 자산"이라며 "그런데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작가는 작품의 기증 의사와 상관없이 철거나 이전을 요구했다"고 했다.

아울러 "가치를 논하기 전에 이름도 존재도 없이 잊히고 산화한 수많은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전시가 끝났다고 무참하게 용도 폐기하는 것은 너무도 참혹한 처사"라며 "작품을 그대로 전시·보존해야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한다"고 했다.

'검은 비'는 5·18 당시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당한 주검을 수습한 장소였던 상무관에 전시하기 위해 제작된 장소특정작품으로, 지난 2018년 5·18 38주년 특별전으로 설치됐다.

가로 8.5m, 세로 2.5m의 크기로, 쌀에 유화물감을 섞어 배열과 색감이 만들어내는 카오스적 이미지를 뿜어내 보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지난 2000년부터 작가가 100㎏이 넘는 쌀과 긴 시간 공력을 투입해 완성했다. 5개의 작품이 모여 하나의 완전체를 구성하는 형식이다.

상무관의 대형공간에 한 몸처럼 녹아든 '검은 비'는 방문객들에게 장엄함과 숭고미를 통한 숙연함을 느끼게 하며 그 존재감을 자랑해 왔다. 검은 단색으로 된 일종의 추상회화로, 멀리서 볼 때와 달리 가까이 다가가면 전혀 다른 입체감을 선보이는 등 뛰어난 원근감으로도 알려졌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