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9> 새로운 시대, 도전의 예술가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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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9> 새로운 시대, 도전의 예술가 백남준
  • 입력 : 2020. 08.04(화) 12:50
  • 편집에디터

코로나블루(Corona blue)가 가지고 온 우리의 무기력한 일상은 더 이상 낯선 곳에서 얻는 여행의 영감이나, 사람들의 만남과 소통에서 오는 행복을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앞으로 우리 삶을 살아갈 때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지친 일상 속 나에게 위안을 주고 영혼을 치유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본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현실 너머의 '케렌시아(Querencia)' 공간을 꿈꾸며 만들고 싶어 한다고 한다. 케렌시아(Querencia)란? 스페인어로 피난처·안식처라는 뜻으로 원래는 마지막 일전을 앞둔 투우장의 소가 결전을 앞두고 잠시 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곳을 뜻한다. 지금은 숨 막히는 도시 속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재충전의 공간이란 뜻으로 새로운 시대의 환경용어이자 가상공간을 '케렌시아'로 해석하여 개인 취향의 가치로 담아내고 있다. 개인 취향의 영향은 어떻게 예술과 접목시킬 수 있으며,나아가 예술은 우리의 삶 속 어떤 의미로 가치 공간을 제공 해줄 수 있을까?

현재 자연스럽게 미술관 온라인 전시가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작품을 집에서 편하게 감상하는 방식에서 코로나시대 이후 더욱 다양한 미술의 장르와 특히 제한된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디지털 미디어 아트가 활기 찬 시대가 열릴 것이라 많은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디어 아트는 언제부터 예술 그리고 전시회로 보여 지게 되었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미디어아트를 예술학적으로 되돌아보았을 때 우리나라 작가 중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은 아마도 백남준 작가일 것이다. 그는 캔버스가 브라운관이나 모니터가 대체될 것을 예견하였고 비디오 아트(Video Art)라는 분야를 새롭게 개척했다. 비디오라는 매체가 중요한 이유는 기술의 발달에 따라 새로 등장한 표현 매체라는 점이었다. 이를 통해 백남준은 신기술이 어떻게 예술과 접목되어 구현되는지를 직접 보여준 예술가이다.

"모름지기 예술가란 미래를 사유할 수 있어야하며, 소통의 기획자로서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한다."- 백남준 어록 중

백남준(Paik Nam-june, 白南準, 1932~2006)은 세계적인 예술가, 작곡가이자 동시에 비디오 아티스트의 선구자로 1960년대 플럭서스(Fluxus) 운동의 대표적인 현대 미술가로 손꼽힌다. 조작된 텔레비전 스크린들을 이용한 설치 미술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학에서 현대 음악과 서양철학을 전공했다.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하던 중 작곡가 존 케이지의 연주를 눈앞에서 직접 보고 큰 감명을 받는다. 당시의 존 케이지는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서 건반 뚜껑을 닫고 악보만 넘기는 '연주하지 않는 연주'를 선보이는 파격적인 행동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소음 또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온 음악가이다. 그의 전위적 음악회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은 백남준은 확장 가능한 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그가 활발한 활동을 했을 당시, 텔레비전의 용도는 그저 시청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화려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용도였다. 이렇게 이뤄지는 텔레비전 고유의 전달 방식이 백남준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반대로 텔레비전과도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놀랍게도 "컬러 비디오전화를 통해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 간 회의가 상업적으로 실현될 것"이라 말했다. 당시 화상전화는 오래전부터 도입과 실패를 반복하던 미래의 최신 기술이었으며 백남준은 궁극적으로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스마트 폰을 열고 화상전화(페이스타임,Face Time), 스카이프(Skype), 줌(Zoom)으로 온라인 수업과 가상 여가 활동들이 가능 한 시대는 이미 그가 예견한 미래였다. 그의 작품 안에는 이처럼 다양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예견이 담겨 있었다.

[사진1. 백남준_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_1974_스미소니언아메리칸아트미술관]

1974년 록펠러 재단에 응모한 프로젝트로 백남준은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가로12m, 세로4.5m 크기의 네온 조명작품으로 미국 지도를 모티브로 텔레비전을 가득 채워 설치하여 전시했다. 텔레비전은 주마다 다른 영상들이 재생되고 있으며 전국이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위성, 케이블, 광섬유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도시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어 물리적인 거리가 더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경계를 뛰어넘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묘사했다. 연결을 도와주는 것은 최신 기술이었고 넓은 땅은 고속도로를 통해 연결해 있지만 교통과 대면이 아닌 전자통신을 통해 비대면으로 연결되고 통합된다는 것을 암시했다. 텔레비전이나 모니터만 있으면 다른 장소에서도 동일한 내용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백남준 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이 당시는 '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때였다. 현대적인 인터넷의 개념과 민간용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시기가 1980년대부터이니 지금과 같은 형태의 네트워크망이 구축되지 않았을 때 그는 몇 년 앞서 인터넷 시대가 올 것을 예상했던 것이다. 예술과 인터넷 기술이 접목되면서 참여와 소통이 활발해 질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모든 사람의 손바닥 안에서 풍부한 정보를 접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몸집이 큰 텔레비전이 손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지는 미래를 상상했던 것이다. 또한 앞으로 TV는 소형화되고 자기 손에 텔레비전을 들고 다니면서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소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2. 백남준_TV정원(TVGarden)_1974(2002)_백남준아트센터]

〈TV 정원(TVGarden)〉 비디오 설치작품은 정원 속 여러 개 텔레비전 화면에 열대 숲의 원시적 생명력과 비디오 판타지의 리듬이 주파수를 맞추면서 생명을 낳는 작품이다. 정원 속 TV 모니터에서 나오는 〈글로벌그루브〉는 음악과 춤의 힘을 상상의 비디오 경관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영상은 로컬의 문화유산과 현대 미디어 테크놀로지 양자 사이의 결합과 상생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 작품이 내포하는 문명사적 비전은 21세기 편재하는 미디어 환경의 확산으로 인해 실현이 가능해진 자연화 된 문화, 문화화 된 자연의 시점을 예견하고 자연과 인위의 경계를 허무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백남준아트센터의 소장이 된 〈TV 정원〉 작품에서 작가가 의도했던 것처럼 정원을 둘러볼 수 있는 작은 회랑으로 에워싸여 있고, 위에서 숲 전체를 조망하며 둘레를 거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진3. 백남준_다다익선 구상 스케치 및 설치 모습_1987]

[사진4. 백남준_다다익선(多多益善)_1987_국립현대미술관)

[사진4-1. 백남준 다다익선(크로즈업)_1988_과천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多多益善)>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램프코어에 설치된 백남준의 비디오 타워 작품이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개관하면서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Site-specific art)으로 제작됐다.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대의 브라운관(Cathode-Ray Tobe) 텔레비젼 모니터가 지름 7.5m의 원형에 높이 18.5m로 설치되어, 한 층 한 층 축소되는 모양으로 제작되었다.

1988년 최종 완성되어 이후 매일 8시간가량 영상이 상영됐다. 그러나 2002년 기기 장비 노후화로 인한 모니터 화재로 수리, 교체 등 많은 문제로 우려가 커지자 결국 2018년 2월 결국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듬해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의 <다다익선(多多益善)> 복원 계획을 발표하고, 국내외 전문가 40여명의 자문과 유사 사례 조사를 통한 신기술 연구를 도입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한 단순한 모니터의 수리 장비 및 기기 교체 뿐 만 아니라 작고한 故 백남준 작가의 의도에 따른 제작의의 및 원형 유지 방안이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신구(新舊)의 균형을 맞추며 정밀 진단과 수리를 거쳐 2022년 다시 빛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번 주부터 광주광역시 방역체계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하향 조정됨에 따라 미술관마다 임시휴관이 풀리고, 작품들이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도 조심스러운 상태와 하반기 코로나 2차유행 등 문화·예술계는 더 많은 불가능을 예견하고 있지만, 이미 포스트코로나시대 동행의 위기를 또 다른 깊이의 가치를 사유하고 '희망과 긍정적 시도의 기회'로 현명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예술'을 전하고자 한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