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폭염 시작됐는데… '에너지 빈곤층'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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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복지
최악의 폭염 시작됐는데… '에너지 빈곤층' 어쩌나
선풍기 하나로 냉방 각종 감염병에 속수무책||정부·자치단체 차원 공식적인 집계마저 캄캄||“육식 줄이는 등 ‘작은 실천’ 당장 시작해야”
  • 입력 : 2020. 08.04(화) 14:55
  • 도선인 기자
지난 40여년동안 선풍기 하나로 무더위를 보내온 박영림 할머니의 집.
낡은 시멘트 벽에 둘러싸여 겹겹이 덧댄 건축 판재와 비닐. 광주 북구에 위치한 박영림 할머니(70)의 집이다.

박 할머니가 온·냉방 시설 없이 이곳에서 한국의 겨울과 여름을 버텨온 지 40년이 넘었다. 지난 3일 찾아간 박 씨의 집은 쏟아지는 땡볕에 집 천장을 덮은 지붕 슬레이트가 뜨겁게 달궈져 그야말로 한증막이었다. 15㎡ 남짓한 이곳은 온종일 선풍기를 켜 놔도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박영림 할머니의 본격적인 여름나기가 시작됐다. 박씨는 "오후 2시 넘어가면 너무 더워 밖으로 나간다. 지하철 쉼터나 경로당 쉼터에서 지낸다"며 "해가 져도 낮부터 달궈졌던 집이라 굉장히 덥다. 겨울은 연탄을 때니 그런대로 지내지만 여름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기상청은 유난히 길었던 이번 장마를 끝으로 8월부터 낮 기온이 큰 폭으로 오를 것을 예고했다. 지난 한 세기간 급격한 기후변화로 한반도가 열대기후로 바뀌는 가운데 저소득층이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기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기상청과 환경부가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경우 1912~2017년 동안 평균 지표온도가 약 1.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기후 변화가 계속된다면 폭염일수가 연간 10.1일에서 21세기 후반 35.5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도상승에 따른 동물 매개 감염병, 식품 매개 감염병도 늘어날 것은 뻔한 이치다.

하지만 정작 온·냉방 시설 없이 폭염과 혹한을 버티는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국가적 인식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에너지 빈곤층'은 적정한 수준의 에너지소비를 감당할 경제적 수준이 안되는 가구를 말한다. 이들 빈곤층은 열사병 등 질병에 노출되고 있지만 공식적인 집계도 없는 상황이다.

'2020년 광주광역시 폭염 시민인식조서 보고서'에 따르면 폭염 시 '지병악화'를 호소하는 일반시민은 1.4%이고 저소득층은 22.6%로 일반시민에 비해 저소득층이 폭염시 '과도한 땀흘림', '불면증', '호흡곤란' 등 지병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주시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온·냉방 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통계는 없다. 아직 '에너지 빈곤층'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에서 정의가 합의된 것이 없다"며 "저소득층의 기초생활수급 가구가 에너지 빈곤층이라 추정은 해볼 수 있어서 현재까지는 전기료 감면, 공동모금회와 같은 복지단체에서 냉방기구를 지원하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염철훈 지속가능협의회 활동가는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확인했듯이 급격한 환경적 위협은 저소득층에 더 취약하다. 이들이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경로당 쉼터, 은행 같은 곳에서 쉬는 것 뿐이다"며 "광주시에서 2045년에 탄소중립(Net-Zero) 도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행정의 방향만큼이나 신재생 에너지와 같은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 시민의식을 바꾸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또 "일상생활에서 절전형 기계, 일정 시간에만 에어컨을 사용하는 등의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며 "일주일 중 하루를 정해 육식을 하지 않는 방법도 탄소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광주 전 시민이 일주일 중 하루만 채식을 한다고 가정할 때, 온실가스 배출 50%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황석태 환경부 생활환경정책실장은 "폭염, 홍수 등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고 있어 취약계층 보호가 중요하다"며 "사회적 형평성을 고려해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도선인 기자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