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국악기와 공명(共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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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국악기와 공명(共鳴)
벽오동 심은 뜻은
  • 입력 : 2020. 08.05(수) 13:33
  • 편집에디터

광주신창동 출토 악기(위)와 국립국악원에서 복원한 형태(아래), 국립국악원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제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아/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디 모습 남아 있고/ 버드나무 백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삼척동자라도 외고 다닐만한 우리 한시의 정수다. 조선 중기 신흠(1566~1628)의 <상촌선생집>에 나온다. 비유대로 선비의 지조와 충정을 강조했다.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대쪽 같은 성정의 문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황은 이 시를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한다. 그래서였을까. 예로부터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잣나무를 심으라 했다. 딸을 시집보낼 때 오동나무로 가구를 만들어 혼수를 장만하고 잣나무는 관을 짜는데 사용했다던가. 지조와 정조 따위의 관념 혹은 이데올로기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속담이나 시의 행간에 당대인들의 욕망이 빼곡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오동 중의 오동은 벽오동(碧梧桐, 푸른 오동나무)이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시인묵객들이 벽오동을 소재삼아 풍월을 읊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트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만 빈가지에 걸렸어라." 작자 미상의 시로 김도향이 이 시를 인용한 가요를 불러 유명해지기도 했다. 벽오동의 그리움에 대한 정조는 생각 이상으로 광범위하다.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 '계량을 그리워하며'라는 유희경의 시다. 여기서의 계랑은 물론 전북 부안의 매창(이향금)을 말한다. 매창과 유희경의 정열적인 사랑, 허균과 나누었던 십여 년간의 정신적인 사랑은 아직까지도 고금을 횡단하는 전설로 남아있다. 여기 등장하는 오동나무들은 못 다한 사랑, 그리움, 기다림의 정조를 대변한다. 도대체 무엇이 오동나무에 대한 이 지극한 감성들을 촉발했던 것일까. 전설은 다시 전설을 낳는다. 매창이 38세의 나이로 죽을 때 거문고와 함께 묻혔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안겨 천년의 깊은 잠에 든 거문고 벽오동은 아직도 청정한 성음을 가지고 있을까.

성음(聲音) 품은 나무를 찾아서

나무는 성음을 품는다. 성음은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사람의 음성으로 하는 음악이라 풀이해두었다. 종류에 따라서는 창가, 민요, 가요, 가곡 따위로 구분하고 연주 형태에 따라서 독창, 중창, 합창, 제창으로 구분한다. 목소리나 음성을 넘어 음악 전반을 지시하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흔히 판소리 등의 성악을 감상할 때 성음이 좋니 나쁘니 한다. 절대음감으로의 톤이나 키만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서의 성음은 그 단계를 넘어선다. 높고 낮음, 맑고 탁함, 깊고 얕음, 슬프고 기쁨, 화나고 차분함 등을 넘어, 소리에 투영한 휴머니즘의 융숭 깊음과 그 지극함을 따지기 때문이다. 절대음가가 아니라 상대적인 가치 음가(音價)라고나 할까. 성음이라는 기표에 함의된 미학의 세계가 매우 광범위하다. 악기의 성음을 따져 묻기 전에 나무의 성음을 먼저 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광주시 지정 무형문화재 이복수(1953~본래 이름은 이준수다) 장인의 주장은 단호하다. 우리 악기를 만드는 제 일차적인 일은 좋은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좋은 나무는 어떻게 고르는가? 산이나 들에 들어서면 토양과 산세의 지형을 보고 바람과 구름의 흐름을 듣는다. 동남쪽 비탈에서 자라는 나무와 서북쪽 비탈에서 자라는 나무는 성질이 다르다. 계곡에서 자라는 나무와 산 정상에서 자라는 나무가 확연하게 다르다. 우거진 숲과 메마른 들판에서 자라는 나무가 또한 다르다. 눈에 보이는 풍경만이 풍경이 아니요, 귀에 들리는 바람만이 바람이 아니다. 햇볕이 잘 든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다. 음지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도 아니다. 나무가 좋은 성음을 품는 것은 천지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을 경우다. 오동나무가 선호되는 것은 다른 나무에 비해 성장의 균형과 가치 음가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돌밭에서 자라는 이른바 석산오동(石山梧桐)이 선호되는 것도 재질의 장력이 견고해서만은 아니다. 벼락 맞은 오동나무에 대한 환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 나무에 스며든 햇빛과 달빛과 별빛들, 수많은 가뭄과 장마를 반복하며 단련되었을 그 호흡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나무를 잘라보면 안다. 나이테와 수분의 함량과 옹이와 가지들의 향방이 그것을 말해준다. 손으로 만져보면 안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베어든 성음들이 손끝으로 전해져온다.

국악기의 제작, 바람의 성음을 듣는 법

귀로 듣는 것은 일차원적이다. 물론 잘 듣는 일이 중요할 터, 하지만 수십 년의 노하우는 손끝으로 집중된다. 눈을 감고도 풍경이 보이고 귀를 닫아도 소리가 들린다. 손끝 감각으로 나무의 수령과 자라온 환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장(名匠)이라는 호명이 아깝지 않다. 이 정도면 선경에 든 도사와 다름없다. 악기를 만드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이복수 문화재는 말한다. 악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좋은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좋은 나무란 어떤 것인가? 켜고 뜯고 부비는 파장들을 고스란히 안아내는 성질을 가진 나무를 말한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재질 조직이 성글다면 진동의 파장들이 새나간다. 이를 뜨는 성음이라고 한다. 소리가 허공중에 흩어져 날아다닌다고나 할까. 재질 조직이 조밀하면 공명통 안에 소리를 굴릴 수 있다. 이를 알찬 성음이라고 한다. 공명통과 울림턱에 도착한 소리들이 중후하게 내려앉는 풍경을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조직이 깡마르고 단단하다고 모두 알찬 성음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어떤 정도의 조화와 균형이 해당 악기의 공명을 최대화시키는가는 오직 손끝이 안다. 나무와 스킨십하고 교감하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알찬 성음을 내는 나무를 고르는 일은 악기 제작의 핵심이요 전부이기도 하다. 다음 단계는 건조다. 베어낸 나무를 어떤 환경에서 얼마만큼 건조시키는가가 성음을 결정한다. 이복수 문화재에게는 비법이 있다. 전통마을마다 있었던 오수 둠벙에 일정기간 담가두는 방법이다. 조직이 성근 목재와 조밀한 목재의 침수 기간이 다를 것은 자명한 이치다. 성근 목재를 너무 오래 담가두면 나무가 썩어버린다. 조밀한 목재를 너무 짧게 담가두면 성음이 날아다닌다. 마지막 과정이 제작이다. 제작은 눈썰미 좋고 손재주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제작을 악기 만드는 전부로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니다.

공명의 방식,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울릴 것인가

2017년 정유년 정초,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시대적 과제의 하나로 공명을 얘기했다. 문화융성이라는 지극한 아젠다를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독식해버린, 그래서 균형을 상실해버린 현실을 개탄하면서 말이다. 한 문단을 가져와본다. "우리나라 민속 문화 기반 의례음악의 연행을 '울린다'고 표현한다. 무엇을 울린다는 것일까? 마당을 밟으니 땅을 울리는 것이요 북장고와 꽹과리, 징으로 울리니 공중을 울리는 것이다. 곧 하늘을 울리는 것이므로 공중을 나는 새와 들짐승까지도 울림의 영역에 포함된다. 울림의 파장들은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침윤하여 본디 가진 메시지들을 전한다. 이들 의례음악을 굳이 '울린다'라고 표현한 이유가 무엇일까? 울림이 공명(共鳴)이기 때문이다. 한자말 공명(共鳴)은 우리말 '울림'의 다른 말이다. 의례음악의 울리는 기능이 공명의 세계를 도모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본래 공명은 진동하는 계의 진폭이 급격하게 늘어나거나 그런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외부에서 주기적으로 가하여지는 힘의 진동수가 진동하는 계 고유의 진동수에 가까워질 때 일어난다. 모든 악기는 이 공명의 파동을 통해 각양의 음파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이 음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것이 음악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공명은 각양의 악기들이 소리를 내는 기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리(音, Sound)를 울려 음악(樂, Music)을 만들고 이를 인간과 공동체, 사회와 자연, 우주의 신령들을 불러내어 공명(共鳴)한다는 함의가 들어있다. 이것이 울림의 요체다." 다시 악기로 좁혀 말하면 세 가지의 조건이 있다. 첫째는 공명통 즉 울림통을 만드는 일이다.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모두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공명의 음양을 맞추는 일이다. 이를 자웅성(雌雄性, 수컷과 암컷이라는 뜻)이라 한다. 장구를 예로 들면 궁편과 채편의 크기가 달라야 한다. 조화는 이 크기의 다름에서 온다. 사실 장단(長短)이라는 우리 음악 특유의 리듬 범주화 방식도 길고 짧은 것의 다름을 조화시키는 알고리즘에서 출발한 양식이다. 마지막 하나는 울림턱이다. 공명통 안에서 진동된 소리가 이 울림턱을 넘어야 회전하여 다시 흐를 수 있다. 소리의 흐름을 위해 나선을 공명통 안에 새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유물 중 미분류 품목들 중에서 이런 원리를 적용해보면 악기로 판명되는 사례들이 늘어날 수 있다. 이복수 문화재가 진도 오산리 출토 미분류 유물을 요고(腰鼓)로 고증하여 복원한 예가 그것이다. 내가 일찍부터 마한금(馬韓琴)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던 광주 신창동 출토 현악기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여전히 남는 문제는 공명 즉 울림이다. 좋은 재질의 나무가 우주천하를 그 몸에 품고 공명하는 것이 악기라면, 영장이라는 인간이 더불어 공명하고 울릴 대동세상은 무엇인지 말이다. 벽오동 거문고 끌어안고 묻힌 매창이 오늘 불현듯 부러운 것은 천년을 늙어도 변치 않을 성음 때문일 것이다. 고민이로다. 오늘 나는 유언장에 어떤 공명악기를 부장(副葬)하라 적어둘 것인가.

남도인문학팁

한국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악기장 이복수

1953년(호적은 1956년) 전북 완주 소양면에서 이경만과 한순례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한량이던 증조부로부터 자질을 이어받은 때문인지, 장형 이철수 등 집안이 국악계에 종사한다. 명문이던 전주북중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고도 가정형편상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어린 나이부터 김칠성이 이끌던 아리랑농악단에 입단, 전국을 유랑하였다. 호남농악단, 백구농악단, 아리랑여성농악단으로 이어지는 유서 깊은 활동이었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고 김광주 선생에게서 전통악기 제작을 배웠다. 1985년 광주에 정착, 광일국악사를 운영하면서 악기제작은 물론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울림창연구회'라는 소리배움 마당을 만들어 우리 음악 확산에도 기여하였다. 2010년 1월 광주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 부인 배숙자는 가야금 부들에 수를 짜는 달인, 아들 이상훈은 목공예디자이너, 딸 이상미는 '이상미가야금연구소'를 차려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명실상부한 국악가족인 셈이다. 제작하는 악기는 50여종이 넘는데, 대금, 단소, 태평소, 피리, 소금, 퉁소, 가야금, 거문고와 아쟁, 해금, 개량악기, 장구, 북, 징, 꽹과리, 대북, 모둠북 등이 대표적이다. 이탈리아의 현악기 명장 가문인 스트라디바리가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게 된 것은 세계와 공명하는 악기의 제작은 물론 1644년부터 이어오는 전승 맥락에 있다 하겠다. 한국의 스트라디바리가문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응원을 해드려야겠다.

국악기의 원리와 기능을 설명하고 있는 광주시지정 악기장 이복수

광주시지정 악기장 이복수

진도 오류리 출토 요고를 고증 복원한 이복수 광주시지정 악기장 문화재

광주시 무형문화제 제12호 악기장 이복수 씨가 지난 2014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진도 명량대첩로(오류리) 해역 수중 발굴조사 성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장고(杖鼓)의 원형인 요고(腰鼓, 허리가 잘록한 장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번 발굴에서는 삼국시대 초기의 토기를 필두로 고려시대 청자류, 용무늬 청동거울,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 폭탄인 석환(石丸) 등 500여 점에 달하는 다양한 유물을 발굴됐다. 뉴시스

광주시 무형문화제 제12호 악기장 이복수 씨가 지난 2014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진도 명량대첩로(오류리) 해역 수중 발굴조사 성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장고(杖鼓)의 원형인 요고(腰鼓, 허리가 잘록한 장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번 발굴에서는 삼국시대 초기의 토기를 필두로 고려시대 청자류, 용무늬 청동거울, 임진왜란 당시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 폭탄인 석환(石丸) 등 500여 점에 달하는 다양한 유물을 발굴됐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