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강박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가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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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작업, 강박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가는 여정
포스트코로나 7〉서영기(38)작가 ||
  • 입력 : 2020. 08.12(수) 17:22
  • 박상지 기자

서영기 작 'Irony-Candy Bomb5'

작가로서 유명인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선 그만의 독창적인 이미지가 수반돼야 한다. 기하학적으로 축소, 왜곡된 입체적인 이미지의 피카소, 소용돌이 치는 거친 붓터치가 인상적인 고흐, 꼿꼿한 자세의 '걸어가는 사람'을 작업한 자코메티, 국내에선 '물방울 작가' 김창열, '소' 이중섭, '문자추상' 이응노 등이 대표적이다. 작가들의 정체성이 담긴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떠오르는 의문 하나. '이 이미지는 작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이 이미지로 보여지길 원하는 것일까'. 서영기(38)작가의 작업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현대미술이 갖는 강박에 대한 반성이다.

●살아남기:현대미술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칠흙같은 밤하늘에 유영하는 별처럼 보이는 해양쓰레기들, 전선과 폐기물로 어지러운 달동네와 쓰레기 사이사이에 쾅쾅 박힌 색색의 알사탕 등 서 작가의 작품엔 모순과 반전이 있다. 캔버스에 드러난 아름다움과 역겨움, 달콤함과 씁쓸함 등 이중적인 감정은 작가의 자화상이라고 고백한다.

"작가라고 하기에 저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극단적인것과 갈등을 싫어해요. 그렇다보니 내 마음을 그렇지 않은데, 불편한 감정과 분위기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타인에게 맞춰주는 삶을 살아왔던 것 같아요. '모순과 반전'은 우연한 소재가 아니었어요. 언젠가 '왜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리는걸까' 궁금했고,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됐던것 같아요."

철저히 이타적인 삶의 방식은 부모로부터 타고난 것이 반이라고 한다면, 미술대학에서 학습된 것이 반이다. 그림 그리는것이 좋아서 시작한 작가생활이었는데 어느순간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아닌, 누군가에게 의미를 남기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더란다.

"내 작품이 누군가를 계몽하거나 방향성을 제시하는걸 그리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작가생활을 하다보니 작품 안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더라고요. 이야기가 있을만 한것, 의미가 있어 보이는것을 화면안에 마구 넣었죠. 나중에 내 작품을 봤는데 이도저도 아닌게 돼 있더라고요. 슬럼프가 그래서 길었어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보여주기 위한 작품을 했던 것에 대한 반성에서 '모순'과 '반전'을 담은 작품을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작업하기: 즉흥적인 감성에 서사 입히기

작품이 솔직해졌다. 그때그때 작가의 감성을 자극하는 주변의 풍경을 진솔함을 담아 화면 안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경계에 선 자' '상대적 풍경' '어떤 가능성''경계선' 등 그의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엔 무심히 지나쳤을법한 주변의 모습들이 담겨져있다.

"최근작에 대해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이나 사건이 일어난 직후의 모습같다'는 평가를 해요. 작품 속엔 특별한 의미는 없는 듯 하지만, 작품들을 어떻게 큐레이팅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들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구조에요."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전달하는 회화엔 시간의 흐름이 없다. 이야기와 이미지의 관계를 고민하는 서 작가에게 '시간성을 갖는 회화'는 일종의 실험이자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이다.

"의식적인 것을 내려놓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에 충실하고 있어요. '현대미술'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니 세상이 훨씬 흥미로워요. 아름다운 풍경 뿐 아니라 길을 가다 포착되는 장면과 뉴스에서 흘려듣는 주변의 이야기도 저에겐 의미있는 작품 소재가 되고있죠."

●살아가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오는 11월 예정돼 있는 개인전을 기대하고 있다. '시간성을 갖는 회화'라는 실험의 첫 결과이기 때문이다. 단편적인 이미지만 보여주는 회화의 속성 혹은 한계를 극복해 온 과정인만큼 작품이 전시되는 공간 역시 '전시장'이라는 형식을 깨보고 싶기도 하다.

"실험적인 전시인만큼 '전시관' 혹은 '갤러리'라는 고정된 틀에서도 한번 벗어나보고 싶어요. 일단 계획은 일반인들의 발길이 드문 비어있는 상가를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 계획이 무산되면 제 작업실에서 개인전을 열어볼까 합니다. 작품이 흰 벽에만 걸려있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보고 싶어요."

무술가 이소룡의 '물이 되어라, 친구여(Be water, my friend)'라는 말을 좋아한다. 물처럼 어떤 형태나 구속에서 벗어나라는 의미를 작업에 더욱 충실히 새기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 작업을 어떻게 하겠다는 포부는 생략하고 싶어요. 단편적인 작품을 엮어 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기획자의 몫이고, 저는 그저 감각적으로 일상의 풍경들을 그려낼 계획입니다. 물처럼 그저 자유롭게 감각의 강을 흘러가고 싶어요."

서영기 작 'Irony-Candy Bomb3'

서영기 작 'The way to go Forward'

서영기 작 'The way to go Forward-Blue'

서영기 작 '별이 되고픈 구체'

서영기 작 '위장'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