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륙의 바다 '장성호'… 아시안게임 '금' 노린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장성군
내륙의 바다 '장성호'… 아시안게임 '금' 노린다
장성호 명실상부한 최고 조정 도시 자리매김||쉼터·농업용수에 조정선수 훈련장으로 한 몫||"바람 영향 받지 않고 파도 없어 훈련에 제격"
  • 입력 : 2020. 08.20(목) 14:31
  • 장성=유봉현 기자

내륙의 바다. 장성호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랫동안 장성 군민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고 낚시터가 되기도 했고 논에 댈 물을 갖다 쓰기도 했다. 아낌없이 내주는 '내륙의 바다'의 역할은 또 있다. 바로 조정 선수들의 일터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따뜻해지면 3월부터 선수들은 이곳에서 실전 연습에 돌입한다. 뜨거운 햇볕을 식혀주기라도 하듯이 힘껏 물살을 가로지른다.

장성호에서 조정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웅장한 규모에 파도 없어… 조정에 적합"

주말마다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장성호 수변길. 입구에서 전용 요트를 타고 4㎞ 지점까지 들어가면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나온다. 바로 장성군청 소속 조정 선수들의 일터다. 성인 선수뿐만이 아니라 장성 관내 중·고등학생 선수들과 광주체육고등학교 선수들도 이곳에서 훈련한다.

장성호에서 힘껏 노를 젓는 조정 선수의 모습.

2~8명의 선수들이 노를 저어 길고 좁은 형태의 레이스 보트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스포츠 경주인 '조정'은 마라톤에 버금갈 정도로 체력 소모가 크다. 2㎞ 코스를 끝내면 한번 레이스로 1~2㎏ 정도의 체중이 줄어들 정도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져도 이들의 금빛 레이스는 계속됐다.

맨손으로 노를 젓다 보니, 아무리 좋은 실외 훈련장이 있더라고 겨울에는 실전 훈련이 어렵다. 장성군 선수들도 날씨가 풀리는 3월부터 이곳 장성호에 레이스 보트를 띄운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물속에 성큼 레이스보트를 띄우고 오랜 훈련으로 다부진 근육에 까맣게 탄 살을 드러냈다.

큰 키가 눈에 띄어 조정을 시작한 박지성(장성중·3학년) 선수는 "5교시가 끝나면 장성호로 출발한다. 허벅지에 힘을 주는 포인트를 신경 쓰며 훈련에 몰입하고 있다"며 "최근 시합에서 은메달을 따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성호를 무대로 삼아 조정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장성호 조정 경기 선착장에 세워진 장성군체육시설. 선수들이 2층에서 에르고메타 훈련을 하고 있다.

모든 훈련이 장성호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에르고메타(근육을 움직여 작동시키는 자전거 형태의 훈련 장치)를 작동하는 실내 훈련장소 있다. 2층 규모의 장성군체육시설은 장고(배창고)와 실내훈련실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2008년 전국 체육대회 유치에 성공하면서 조정 선착장 바로 앞에 건물을 지었다. 최신식 건물은 아니지만, 장성 선수들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선수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장성군체육시설 1층에 마련된 장고.

장성군은 2008년 전국 체육대회를 시작으로 무려 12년 연속 전국 규모의 조정대회를 유치하면서 명실상부 조정의 도시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조정'. 유능한 선수들은 왜 군으로 모여들었을까? 비밀은 '장성호'에 있다.

장성호는 1970년대 장섬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호수다. 백암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황룡강을 막아 광주광역시 광산구와 나주시·장성군·함평군 등 4개 시군의 관개용수와 생활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내륙의 바다'라는 별칭처럼 유효 저수량 1억톤, 유역 면적 1만2000여 ㏊에 이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장성호가 수려한 산자락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북쪽에 백암산이 중심을 잡고 좌측 일봉산과 우측 용두산이 호수 양쪽을 감싸고 있어, 바람이 적고 물살이 잔잔하다. 웅장한 규모와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아 파도가 일지 않는다는 점은 수상 스포츠를 즐기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다.

김옥경 코치는 "장성에 실외 훈련장이 갖춰져 있다는 것은 선수로서 큰 장점이다. 전지훈련처럼 도시를 이동할 필요가 없어 그 에너지를 온전히 훈련에 쏟을 수 있다"며 "파도가 일지 않는 장성호가 없어지지 않는 한, 조정을 꿈꾸는 선수들이 모여드는 곳 중 하나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장성호 수변 데크길이 조성되며 전환기를 맞았다. 장성군은 이듬해 옐로우 출렁다리를 완공해 관광 핫플레이스로 됐다. 군에 따르면 옐로우 출렁다리 개통 이후인 2018년 7월부터 지금까지 기록된 장성호의 누적 방문객은 70만명에 이른다.

○"선수생활 짧아… 무기계약직 전환 감사해"

장성호 조정 경기 선착장에서 레이스 보트를 뛰우고 있다.

노를 저어 빠른 속도로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조정은 체력 소모가 큰 만큼, 부상의 위험도 크다. 2002년부터 장성에서 팀을 이끌고 있는 고광선 감독(장성군청)은 "조정은 굉장히 힘든 운동이다. 까맣게 탄 선수들을 볼때면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며 "감독으로서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을까 항상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호'라는 수상 스포츠에 최적의 조건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절대 풍족한 환경은 아니다. 충주 탄금호 경기장이나 미사리 경기장처럼 관람석이 마련된 것도 아니고 주변 환경이 정리된 것도 아니다. 용인시처럼 최신식 실내 훈련 시설인 로잉탱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고광선 감독.

하지만 장성군에서도 가장 최선으로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장성군청 조정팀에 대한 복지다. 지난 몇년 장성군청 조정팀 대상으로 한 장성군의 무기계약직 전환 결정은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다.

고광선 감독은 "군청 소속 실업팀을 이끄는 감독, 코치진에 대해 무기계약 전환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안정적인 근로 환경이 보장될 수 있도록 장성군에서도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조정은 선수 생명이 굉장히 짧은데, 장성군에서소속 선수들에 대한 연봉 인상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장성호에서 실전 훈련에 돌입한 이수빈 선수와 장성 실업팀 선수들.

충주에서 먼저 조정을 시작한 이수빈 선수(장성군청)는 지난 2018년 장성군과 계약을 맺고 훈련 환경에 심적으로 안정기를 찾았다. 이수빈 선수는 "조정국제경기장이 있고 세계조정선수권 대회를 유치한 만큼 충주에는 선수들이 많다. 실업팀 선수는 장성보다 2배정도 많은만큼 경쟁이 심했다"며 "기록에 집착하다보니 성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장성군청 소속 선수가 된 이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은 평정심이다. 항상 '평소처럼만 하자'는 마인드를 되새긴다. 이수빈 선수는 "2022년 예정된 아시안 게임 출전에 목표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며 "선수끼리 사이도 좋고 수가 적다보니 아무래도 감독님과 코치님이 세심하게 봐줄 수 있어 훈련에 만족이 크다"고 말했다.

장성=유봉현 기자 bhyu@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