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학교 밖에서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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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꿈은 학교 밖에서도 자란다
양가람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0. 08.25(화) 14:54
  • 양가람 기자
양가람 사회부 기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새롭게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알을 깨고 나오듯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헤르만헤세 '데미안' 중

싱클레어는 부모·학교·규범으로 표상되는 '알'을 깨부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다. 어린 시절엔 반항하고 또 고뇌하는 싱클레어가 막연히 부러웠다. 그에겐 '알'의 존재를 일깨워준 데미안이 있었고, 껍질을 깨고 나가려는 용기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싱클레어로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전국적으로 39만명, 광주에만 매년 1500여 명의 학교밖청소년들이 생겨난다. 학교라는 첫 번째 알을 깨고 나왔을 때, 그들이 마주하는 건 '문제아' 낙인이 찍힌 또다른 알이다. 그 알은 너무 단단하고 커서 그들 혼자 힘으로 깨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좌절한다.

알 밖의 세상은 가혹했다. 아이들은 버스를 탈 때도 학생증이 없어 성인 요금을 냈고, 공부가 하고 싶어도 방법을 알 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땐 물건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조그만 실수에도 크게 지적 받던 한 아이는 외출할 때마다 옷장 속 옛 교복을 꺼내입었다고 한다. 알 밖으로 나온 이유는 깨진 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다.

꿈은 학교 안에서만 꾼 것이라야 했다. 글쓰는 걸 좋아했던 아이는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공모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교내 활동'만 기입해야 하는 대입 자기소개서를 붙들고 아이들은 하염없이 울어야 했다. 온전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길은 '학교 밖'에서 출발할 때 훨씬 멀고 험했다.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걸음마를 떼더라도 자립은 한참 먼 얘기다. 코로나19로 센터가 휴관하자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당장 아이들의 결식과 건강이 우려되지만, 대다수 기부금과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센터 측 입장에선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그나마 정부의 학교밖청소년 지원금은 제도권 내 청소년들과 비교해 10분의1 수준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그래서 특별한 아이들이에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해요." 센터 관계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꿈은 어디서든 꿀 수 있다고 말해줄, 그들이 다시 한 번 알을 깰 수 있도록 손잡아줄 데미안은 없는 것일까. "나는 철면피 방탕아인 척했지만, 사실 사랑에 대한 격렬한 동경과 가망없는 그리움에 가득 찬 외로운 소년이었다." 싱클레어의 독백이 유독 가슴에 꽂힌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