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위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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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소 위령제
  • 입력 : 2020. 09.15(화) 16:31
  • 박상수 기자
지난 8월 12일 경남 남해군의 무인도인 난초섬에서 암소 한 마리가 발견됐다. 이 암소는 이력 조회 결과 8월 초 집중호우 당시 섬진강 상류인 구례군 구례읍 양정마을 축산단지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파악됐다. 나이는 16개월이고, 임신 4개월 상태로 몸무게는 450kg 정도였다. 남해군은 바지선과 어선 등을 동원해 이 암소를 데려와 돌려 보냈다.

8월 5~8일 구례·곡성 지역에는 586.6㎜의 폭우가 쏟아졌다. 소를 키우는 농가가 모여있는 양정마을은 기록적인 폭우로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 제방이 무너지면서 마을 대부분이 물에 잠겼다. 사람들은 급히 몸만 빠져 나오느라 소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대피하지 못한 소 수백 마리가 수장돼 숨졌다. 많은 소들이 물결에 휩쓸려 섬진강으로 떠내려갔다. 일부 소는 축사의 지붕 위로 올라가 버텼고, 해발 500m인 사성암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비가 그치자 당국은 크레인과 마취총까지 동원해 지붕 위에 올라간 소를 구출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사자성어가 SNS 등에 널리 떠돈 것은 이 무렵이다. '우생마사'는 '헤엄 잘 치는 말은 죽고 느린 소는 산다'는 뜻이다. 홍수에 휩쓸리면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오르려고 발버둥 치다 지쳐 죽지만, 소는 물살을 따라 떠내려가면서 조금씩 강가로 나와 살아남는다는 우화에서 나온 말이다. 어렵고 힘들수록 조급함을 버리고 순리를 따르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자주 쓰이지만 고사성어 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고, 정확한 출전도 알 수 없다. 8월의 섬진강 수해는 '우생마사'라는 정체불명의 사자성어까지 우리에게 소환했다.

지난 10일 구례 양정마을에서는 수해 참사로 죽어간 소의 넋을 달래는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민들은 마을에서 소 위령제를 지내고, 구례군청 앞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며 노제를 지냈다. 이후 전북의 섬진강댐으로 올라 가 다시 시위성 위령제를 올렸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소를 잃은 주민들은 끝내 눈물을 훔쳤다. 이 마을은 수해로 소 500여 마리가 수장됐고, 살아남은 소 200여 마리도 폐렴과 파상풍 등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폐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생때같은 소를 잃은 주민들은 턱없는 보상 소식에 다시 한 번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구례 양정마을에는 소 울음 소리보다 더 큰 사람들의 애끊는 통곡이 그치지 않고 있다.

박상수 주필 sspark@jnilbo.com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