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유순남>세상에서 가장 공정하고 다정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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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세상에서 가장 공정하고 다정한 곳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0. 09.23(수) 14:39
  • 편집에디터
유순남 수필가
3년 전 현 정부의 캐치 프레이즈는 우리를 설레게 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감동과 기대는 그 동안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을 뿐이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지난 4·15총선에서 국민은 총 300석 중 여당에 180석이나 주었다. 어떤 이는 한시바삐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고, 혹자는 개혁을 한다한들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겠냐며 비리와 불공정은 인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존재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공정하고 다정한 곳은 세상에 없는 것일까?

파트라슈는 뜨거운 여름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힘에 버거운 짐을 끌다가 쓰러져서야,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술주정뱅이 철물상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길가에 쓰러져있는 파트라슈는 가난한 넬로 할아버지에게 발견되어 넬로의 친구가 되었다. 넬로네 집에서도 굶는 날이 많아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먹을 것이 있으면 주인인 할아버지와 넬로도 같이 먹고, 먹을 것이 없으면 다 같이 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랑스러운 미소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파트라슈는 하루 종일 수고한대가로 매와 욕을 먹는 다른 개들을 보면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공정하고 다정한곳에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운명에 깊이 감사한다. 동화 '프란다스의 개' 파트라슈의 이야기다.

우리 선조들은 동화가 아닌 실생활에서 공정과 다정을 실천하며 살았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은 1960년 가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경주를 여행하면서 시골집 마당의 감나무 끝에 달린 감 여남은 개를 보고 "따기 힘들어 그냥 두는 거냐?"고 물었다. 동행하던 기자가 "까치밥이라 해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둔 것" 이라고 하자, "바로 그거예요. 제가 한국에서 보고자 한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 라며 감동했다고 한다. 그녀는 또 황혼녘 논길에서 온종일 일을 한 소가 힘들까봐 달구지를 타지 않고 지게에 볏단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 감동을 1963년에 출간한 『살아있는 갈대』의 첫머리에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랬다. 우리 조상들은 혈육이나 이웃은 물론 짐승에게도 인정을 베풀며 살았다. 봄에 씨앗을 심을 때도 날짐승을 위해 두세 개씩 심었고, 땅 없는 사람이 땅을 가진 자에게 집을 짓거나 조상의 묘를 쓸 땅을 빌려달라고 하면 응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또 구례 최 부잣집 운조루에는 밥 굶는 이웃을 위해 누구나 열 수 있게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쓰인 쌀독이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부터 인색해졌을까? 정작 풍요로워지면서부터다. 물질이 풍요로워 질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 강퍅해진 것이다.

불평 즉 명(不平則鳴)이라고 한다. 지금 정부에 불평을 부르짖는 국민이 많다. 공정과 다정은 전혀 다른 말같이 느껴지지만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공정하면 모든 사람에게 불평이 없을 것이고, 차별 없는 사회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다름을 인정하며, 인격이 존중된다면 억울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공정의 문제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가장 기본이고 중요한 문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공정은 경제문제다. 넘치면 덜고, 부족하면 채워주는 다정이 있는 공정이 그것이다.

지난 달 3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모교인 전북 김제 백석초등학교에 10억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는 예전에도 여러 곳에 15억 원을 기부했으며, 이번에 기부한 돈은 그가 노년을 보낼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한 전 재산이라고 한다. 재산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여 따뜻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를 한 훌륭한 경제인이다. 정부의 뼈를 깎는 노력은 물론이요, 가진 자는 가슴에 욕심을 덜어내고 거기에 사랑을 채워서 우리사회가 공정하고 다정한 사회로 나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