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자'가 쓴 '현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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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자'가 쓴 '현장' 이야기
  • 입력 : 2020. 09.24(목) 12:48
  • 박상지 기자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박정훈 | 빨간소금 | 1만3000원

배달의민족은 2020년 3월 기준 무려 5400만 명이 다운로드했고, 월 방문자는 1000만 건, 월 주문은 5000만 건을 기록했다. 한국 국민을 약 5000만 명이라고 보면 그야말로 국민 애플리케이션이다. 그러나 배달의민족은 이름과 달리 배달하지 않는다. 민트색 유니폼을 입은 라이더를 관리하는 배민라이더스라는 회사가 따로 있다. 배달의민족과 형제회사다. 이러한 주문 중개 앱과 배달 대행 플랫폼의 분리가 한국만의 독특한 배달 산업 구조를 만들어냈다. 바로 '한국형 배달 플랫폼'의 탄생이다. 이 안에서도 차이가 크지만, 본사가 자사의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노동자에게 입히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으며 설사 책임을 지더라도 프랜차이즈 지점장이 지는 형태다 .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플랫폼의 형태는 양자 또는 3자 중개다. 손님-음식점-라이더(3자)를 연결하거나, 클라이언트와 노동자(양자)를 중개한다. 그런데 한국은 주문 중개 플랫폼(배달의민족, 요기요 등)과 배달 대행 플랫폼(부릉, 바르고 등)이 나뉘어 있다. 여기에 동네 배달 대행사가 끼어 있다. 그래서 한국의 플랫폼 산업은 2개의 플랫폼(주문 중개, 배달 대행)이 손님-음식점-동네 배달 대행사-라이더, 이 4자를 중개한다.

여기에는 배달 대행 플랫폼 사와 동네 배달 대행사의 독특한 관계도 있다. 배달 대행 플랫폼 사는 동네 배달 대행사와 '위탁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이 동네 배달 대행사는 라이더와 '알선 계약'을 맺는다. CU 편의점 알바가 CU 본사의 직원이 아니고 동네 편의점의 직원인 것처럼, 플랫폼 회사는 라이더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데 프랜차이즈 사업처럼 라이더는 플랫폼 사의 로고가 찍힌 배달통을 달고 배달 조끼를 입어야 한다. 게다가 CU 편의점 알바가 가맹점의 직원인 것과 달리, 라이더는 배달 대행사의 직원도 되지 못한다. 두 번 멀어지는 셈이다.

한국형 플랫폼 산업이 낳은 문제는 다종다양하다. 대표적으로 플랫폼 배달 라이더의 지위는 개인사업자로 볼 것인가, 근로자로 볼 것인가의 문제다. 이는 배달료 산정 방식, 라이더 처우, 산재 처리 문제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유상운송보험'이라는 이름의 영업용 보험 문제도 있다. 이 보험료가 20대 라이더에게는 연 1000만 원에 육박하기 때문에 사실상 보험을 들 수가 없다. 사고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보험사는 보험료를 높이고, 보험료가 높기 때문에 라이더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륜차 시스템 문제도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한국에는 오토바이 정비 자격증이 없다. 이러다 보니 표준공임단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부르는 게 값이다. 오토바이 부품 가격 역시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해외 직구를 하는 예가 많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10만~20만 원의 바가지보다 '불신'이다.

이 책을 쓴 박정훈은 한국 최초의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이다. 알바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4대 보험은 되면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다 우연히 맥도날드 라이더로 일하게 됐다. 2018년 여름, '폭염수당 100원을 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이 시위가 주목받은 데 힘입어 라이더유니온을 만들게 되었다.

배달 일 한 지 이제 4년, 그는 맥도날드, 우버이츠, 쿠팡이츠, 동네 배달 대행, 배민라이더스를 두루 경험했다. 다양한 형태로 일하는 라이더는 물론이고 동네 배달 대행사 사장부터 유명 플랫폼 기업의 임원, 정부 부처 관료와 국회의원, 박사, 법조인, 음식점 사장 등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 책은 그 경험의 산물이다.

라이더유니온 소속 배달의민족 배달원들이 지난 2월 서울 송파구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운영사) 사옥 앞에서 일방적 배달료 삭감 반대 및 지역 차별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