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36> 미마르 시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완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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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36> 미마르 시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완성품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20. 09.24(목) 13:09
  • 편집에디터

36-1. 갈라타 다리가 내려다보이는 쉴레이마니예 사원 뜰에서 이브라함, 세비크와 함께. .

1. 화장실이 맺어준 인연

이스탄불에는 크고 작은 모스크가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규모와 상관없이 외양과 실내가 오래되고 아름답다. 내가 모스크라는 곳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이유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순전히 참을 수 없는 욕구 때문이었다.

이스탄불에 도착한 다음날, 구글 지도를 보고 무작정 골든혼으로 걸어간 적이 있다. 버스 정거장을 지나고 허름한 뒷골목을 지나면서 현지인의 민낯을 보는 듯해 만족해했다. 돌아오는 길은 달랐다. 화장실을 급하게 찾아야 했다. 마침 표지판이 있어 들어갔지만 나왔을 때에야 그곳이 모스크였다는 것을 알았다. 화장실 근처 창구에 있던 남자가 1리라를 내라고 했다.

화장실과 관련된 일화는 또 있다. 매일 이른 아침, 블루모스크 야경을 보러 갈 때였다. 그때도 다급했던 나는 톱카프 궁전 근처에 있는 일찍 오픈한 카페에 들어갔지만 화장실이 없는 곳이었다. 공공 화장실은 개방 전이었다. 당황하던 내게 세비크라는 청년이 다가왔다. 그는 인근 레스토랑 화장실로 나를 안내했다.

사람은 사람을 연결시켰다. 블루모스크 근처에 가게가 있던 세비크는 그 근방의 상점들이 친척이거나 아는 사람들이 운영한다고 했다. 그의 사촌 가족이 운영하는 한 고급 카펫 상점에서는 언제든지 애플티를 마시러 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그와 그의 사촌 이브라함은 나와 죽이 잘 맞았다. 셋은 가끔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가게가 마감하여 골목으로 나 있는 CCTV 모니터에 이브라함의 형과 아버지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면 불량학생처럼 진짜 호랑이 가죽이 깔려 있는 사무실에서 보드카를 마시기도 했다.

제법 찬바람이 불면서 눈발이 방향 감각 없이 내리던 어느 날, 이브라함이 내게 말했다. "내가 정말 아름다운 모스크를 안내해줄게. 특별히 너를 위해서 말이야. 먼저 미마르 시난을 알아야 해."

2. 미마르 시난

미마르 시난(Mimar Sinan: 1489~1588)은 오스만 제국 때 활동했던 건축가이다. 서양에 다빈치가 있다면 동양에는 시난이 있다고 할 정도로 위대한 건축가에게만 붙는 '미마르(터키어로 건축가를 말한다)'라는 애칭을 받았다. 90세가 넘도록 세 명의 술탄을 거치면서 350여 개의 건축물을 세웠다. 이스탄불에서 볼 수 있는 웬만한 건축물 99%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거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블루모스크와 인도 타지마할도 그의 제자 작품이다). 그야말로 '도시'를 예술품으로 만드는 신의 손을 가진 예술가였다.

그 당시 오스만 제국 술탄들은 그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몇 가지 제도를 만들었다. 왕위를 계승할 왕자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를 전부 죽였고 외척 세력을 키우지 않기 위해서 정복지 어린 소녀들을 하렘에서 교육시켜 왕비 후보자로 키웠다. '예니체리'라는 이름의 근위병 또한 이교도에서 선별해서 훈련시켰다.

시난은 예니체리 출신이었다. 이교도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서 기술적인 교육을 받아 공병이 되었다. 빠른 승진을 하였던 그는 예니체리의 지휘관이 되었을 때 막사를 지은 적이 있었다. 그때 술탄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그 재능을 키워주었다. 그는 자신의 건축 기술과 공학 기술을 가다듬어 도로, 다리 같은 군사 기반 시설이나 요새화 작업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었다.

이브라함을 따라가고 있는 곳은 쉴레이만 1세의 명령에 따라 시난이 구시가지에 있는 7개의 언덕 중 한 곳에 세운, 쉴레이마니예 모스크였다. 1550년에 착공해서 1557년에 완공한, 시난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이스탄불에서 제일 우아하다는 모스크였다.

3.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블루모스크 인근 이브라함 카펫 상점에서 출발할 때는 성긴 눈발이었다. 걸을수록 바람은 거칠어지고 눈발도 굵어졌다. 덩치 큰 이브라함은 흡사 군대 행렬 병사처럼 우리를 이끌었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 길이라 숨이 찼지만 이스탄불 대학, 그랜드 바자르, 책방 거리를 지났을 때는 눈요깃거리를 할 수 있었다. 모스크 주위로는 시장, 학교, 목욕탕 등 부대시설이 모여 있다. 장사를 했던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가 사람이 모이는 곳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부대시설을 적극 권장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원들은 그곳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사원을 운영한다.

마침내 15분 동안 부지런히 걸어서 쉴레이마니예에 도착했다. 십 년을 미국에서 살다왔다는 장난꾸러기 동생처럼 구는 세비크와는 달리 아버지에게 엄격하게 사업을 배우고 있는 이브라함은 전문 가이드 못지않은 지식으로 이슬람교 장례절차부터 모스크 안에 낮게 내려온 샹들리에의 용도까지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남자들만 출입이 가능한 예배당에 가서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돔 천장과 흰 대리석 미흐랍과 민바르를 찍어다 주기까지 했다.

역시나 실내보다는 확 트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모스크 정원이 나는 더 좋았다. 늘 올려다보기만 했던 모스크에서 갈라타 다리를 여유롭게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눈이 이울어 온통 잿빝 풍경이었지만 미끄러지듯 내려갈 것 같은 경사진 곳을 둥근 지붕이 채운 것을 봤을 때 묘한 기분에 빠졌다.

쉴레이마니예 모스크는 쉴레이마니예 1세가 자신의 사랑하는 부인 록셀라나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며 그녀에게 헌정한 사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정한 사원을 건축한 시난은 세월이 흘러 이들 부부의 딸인 미흐리마 공주를 사랑하게 된다. 시난은 그녀를 위해서 그녀의 이름과 똑같은 사원을 짓는다. 청혼을 한 셈이다. 신분과 종교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들. 그녀는 어렸을 적에 약혼했던 사람과 결혼한다. 세월이 또 지나 시난은 죽기 전에 그녀에게 선물을 한다. 다른 지역에 공주와 이름이 똑같은 사원을 하나 더 지은 것이다.

1년에 딱 한 번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미흐리마 공주가 자주 가던 언덕에 오르면 두 미흐리마 술탄 사원 첨탑 꼭대기에 태양과 달이 각각 걸려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 3월 21일. 미흐리마 공주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는 죽어서도 그녀를 놓지 않았던 것이다.

눈발이 다시 시작되자 무게감 있던 이브라함까지 장난꾸러기가 되어버렸다. 장난꾸러기 두 남자에게 이끌려 언덕을 내려가면서 그 묘한 감정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루어진 사랑 보다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더 큰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것. 에너지는 그리움을 먹고 사는데 그 그리움은 또한 창조적 에너지의 원동력이 아닐까, 라는 그런 짐작.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36-2. 갈라타 다리가 있는 풍경.

36-3. 쉴레이마니예 사원 남자들의 공간에 있는, 메카(동쪽)의 방향을 나타내는 미흐랍(Mihrab).

36-4. 미흐랍 옆에는 계단으로 된 민바르(Minbar)가 있다. 민바르에서 이슬람 지도자 이맘이 설교를 한다.

36-5. 쉴레이마니예 사원에 있는 낮은 샹들리에. 코란을 읽기 위해서 낮게 설치했다.

36-6. 쉴레이마니예 사원에 있는 야외 예배당. 모스크 실내와 야외 예배당 넓이가 같다고 한다.

36-7. 쉴레이마니예 사원 가는길, 책방 거리를 지나면서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