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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 판소리 마실
  • 입력 : 2020. 09.24(목) 15:04
  • 편집에디터

1963년경 목포예술제, 손에 부채를 들고 노래하는 장면-목포예총 제공

판소리가 유네스코 지정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재된 것은 2003년 11월 7일이다. 2001년 종묘 제례 및 종묘 제례악이 지정되고 나서 두 번째 맞이한 경사였다. 이에 앞서 1964년 다섯 번째로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바 있다. 그만큼 판소리가 갖는 국내외적 위상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지정 판소리의 영문명은 'Pansori epic chant'이다. 에픽은 장편서사시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고 챈트는 구송(口誦)이라는 점을 강조한 번역이다. 춘향전 심청전 등 예로부터 전해져 온 장편 이야기를 노래로 꾸민 장르임을 분명하게 해두었다. 또 챈트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비롯해 불교의 독경이나 범패 등 성가 혹은 송가를 말하는 것이어서 반복적인 곡조로 부르는 노래 양식임을 알 수 있다. '판'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 또는 그 장면을 말한다. 처지, 판국, 형편 등의 뜻을 지닌 말이다. '마당'이라고도 하고 '장(場)'이라고도 한다. 판소리가 마당에서 비롯된 예술양식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따라서 판소리는 어떤 마당에서 옛이야기를 지어 부르는 노래 양식의 하나라고 정의할 수 있고, 여러 과정과 변모를 거듭해 오늘날 독립된 음악양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바닷길 따라 걷는 판소리 마실, 고창 후포에서 보성 율포까지

판소리의 음악적 기원을 전라도 무가로 여기는 연구자들의 주장이 '무가 기원설'이다. 하지만 고전소설이라고 하는 거대 서사가 있고, 판소리꾼으로 불리는 광대들의 활동내력이 있다. 문학적 지형과 음악적 재구성을 두루 살펴야 실체에 더 접근할 수 있다. 두부 자르듯 이것이다 저것이다 일방적인 규정을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전라도의 억양과 말하기 방식, 노래하고 의사소통하는 방식 등이 주요하게 채택된 장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거창하게 판소리 미학까지 따질 필요도 없이 소리 자체가 그렇다. 예컨대 '니 광한루 댕개왔노!'라고 아니리를 하면 어색한 것과 같은 이치다.

고창의 바닷가에서 나들이를 시작한다. 우리 판소리의 자존심이라는 김소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판소리를 정리한 신재효의 고을이기도 하다.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는 지금도 줄포, 우포, 사포 등 포구 혹은 옛 포구들에 쌓여 줄포만을 형성하는 지류 중 하나다. 김소희 생가는 마을로부터 포구 쪽으로 분리되어 있다. 지금은 바닷물길이 끊겨버렸지만 고대로 거슬러 오를수록 서남해 물길과 맞닿는 공간이다. 후포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동학혁명의 주요 인물인 전봉준이 나고 자랐던 고을에 이르고 판소리를 정리하고 가르쳤던 신재효의 고을 고창읍에 이른다. 법성포와 변산반도를 눈앞에 두고 줄포만을 나온 배들은 서남해의 크고 작은 섬들을 거쳐 영산강에 닿고 나주에 닿는다. 김소희는 나중에 박석기가 마련한 담양 지실마을 초당에서 박동실로부터 판소리를 연마하게 되지만 광주가 영산강의 상류라는 점에서 그 문화적 맥락은 서남해 바닷길과 무관하지 않다. 서편제와 여성판소리꾼의 탄생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흥선 대원군과 신재효의 드라마틱한 삶도 어쩌면 이 물길들을 통해서 탄생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재효의 아버지가 수도한양에 건정(말린 물고기)물류 사업을 하며 큰돈을 벌었다는 점, 신재효 땅을 밟지 않고는 고창 땅을 지날 수 없었다는 항간의 이야기도 조선후기 판소리 후원자들의 지형을 설명해주는 풍경들이다.

고창에서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 영광, 함평, 무안, 목포를 거쳐 나주 영산포에 이른다. 서편제의 확산이 사실상 나주사람 정재근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점 인정한다면 이 물길을 더욱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나주를 중심으로 한 전라도 서편의 판소리는 광주를 비롯해 여러 바닷길들을 돌며 한 지형을 형성했던 것이다. 근대기 진도와 목포에서 형성한 판소리의 맥락도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목포의 장월중선과 안향련, 진도의 신치선과 이병기를 기억해둘 일이다. 다시 뱃머리를 돌려 해남, 완도, 강진, 장흥, 고흥으로 향하면 우리나라 판소리의 거대 지류와 형성사를 만나게 된다. 우리 판소리를 크게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누고 그 하위분류로 보성소리와 동초소리로 나눈다. 동편제의 중요한 줄기 중 하나인 동초제는 고흥 거금도 사람 김연수가 재구성한 양식이다. 그의 호를 따서 동초제라고 한다. 동초제를 평생의 업으로 보듬고 살았던 오정숙은 그녀의 소원대로 일면식도 없는 땅 거금도 스승의 곁에 묻혔다. 서편제의 중요한 줄기 중 하나인 보성소리는 나주사람 정재근의 법통을 이은 정응민이 지금의 보성에서 재구성한 양식이다. 순창사람 박유전을 서편제의 시조로 삼긴 하지만 나주와 보성을 빼면 그 맥락을 제대로 좇기 어렵다. 내륙지역으로 들어가면 구례의 송흥록으로부터 남원, 전주의 소릿길로 이어진다. 하지만 바닷길만 통해서도 우리 판소리사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전라도의 해안을 나들이하며 철썩이는 파도와 탁한 뻘물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섬들을 마주한다. 판소리를 품은 움직이는 그림, 아니 이 풍경은 어쩌면 판소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남도의 판소리 마실을 가려면 바닷길을 따라 둘러보기를 권한다.

남도인문학팁

판소리의 탄생과 형성

판소리의 시작은 통상 숙종 연간으로 본다.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가 1754년(영조 30년)이라는 점에서 그 앞 시기인 1674년에서 1720년 사이(숙종 재위기)에 발생한 장르로 보는 것이다. 이에 앞서 광대들이 지어 부르던 노래나 연극 연행을 토대로 보는 견해에 의하면 조선 전기로 소급해 올라갈 수도 있다. 광대들의 연행 '광대소학지희'를 근거 삼은 해석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판소리로 정착된 것은 19세기 말경으로 본다. 문학적 내용이 풍부해져 형식이 완성되었고 양반층을 포함한 여러 지층의 동호인들을 양산해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후원자(패트런)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양반층의 이념과 기호가 반영된 시기를 전기판소리라 하고 중상인 계층의 부상과 후원을 받게 되는 시기를 후기판소리라 한다. 판소리 연행 시기를 굳이 나누자면 형성기, 전기 판소리, 후기 판소리, 무형문화재와 유네스코 지정기 등이 되겠다. 판소리를 고려시대로 소급해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은 노래 양식이나 이야기의 편성 혹은 연행 문법들이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명의 고수와 한명의 소리꾼이 짝을 이루는 양식이 언제부터 고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시기부터인가 판소리의 고유한 법제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고 소리꾼, 고수, 관객을 3요소로 보는 관점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장단과 선율에 싣는 소리, 말로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아니리, 몸짓으로 표현하는 발림(너름새라고도 한다) 등이 판소리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정착되었다. 판소리 창법은 아정한 음악이라고 하는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탁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수리성이니 천구성이니 하는 발성 관련 용어들이 그래서 나왔다. 수리성은 쉰 목소리처럼 껄껄하게 내는 목소리를 말하고 천구성은 타고난 명창의 틔어 나오는 소리를 말한다. 판소리를 경상도 방언이나 평양 방언으로 노래하면 그 맛이 살지 않는 이유와 견주어 살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판소리 문법이나 발성의 토대는 전라도 방언 혹은 전라도 말하기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또랑광대 판소리, 영어로 부르는 판소리, 현대음악들과의 콜라보레이션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나고 있다. 또 다른 예술장르로 발전할지, 판소리의 무한한 확장을 기대해본다.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을에서 판소리를 연행하던 사람들(진도군 지산면 소포리)

판소리 고수 보유자 고 김득수

판소리 만정(김소희)제 보유자 신영희(좌)와 동초제 보유자 고 오정숙(우)

지난 2018년 8월 LA한국문화원 Ari Hall 무대에서 . 판소리 명인 조통달 명창(국가무형문화재5호 판소리 전수교육조교)과 황승옥(광주 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8호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 윤미, 정다운, 유희찬 등 세종전통예술진흥회 회원들과 김원일-우리소리단원 고수희 무용단 등 한국과 미주지역 국악인들이 함께 공연하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