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이재민들 "추석 전 머물 곳이라도 생겨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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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전남 이재민들 "추석 전 머물 곳이라도 생겨 다행"
●구례‧함평 수해 임시주택 상황 취재||구례, 25일부터 임시주택 입주||함평, 임시주거시설 입주 완료||“당장 급한 불은 해결됐지만…”||“수해는 인재” 갈길 먼 보상·복구
  • 입력 : 2020. 09.28(월) 14:18
  • 김해나 기자

28일 구례 양정마을에 제공된 임시주택에서 마을주민 박용만(60)씨가 집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다행히 명절에 제사라도 지낼 수 있겠네요. 전에 살던 집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수해로 집과 일터 등 모든 것을 잃었던 구례군 양정마을에 드디어 임시주택이 모두 들어섰다.

28일 오전 9시께 찾은 구례군 공설운동장에는 컨테이너 18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재민들에게 제공된 임시주택이다.

임시주택들은 서로 거리를 둔 채 설치가 완료돼 있었고, 집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 벽면에는 번지수와 호수가 적혀 있었다.

이재민들은 지난 25일부터 이곳 임시주택에 입주를 시작했으며 몇몇 주택에서는 전기와 상하수도 설비 등의 막바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입주를 완료한 주민들은 구슬땀을 흘리며 이삿짐을 정리하고 어지러운 집을 청소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곳에 입주한 박용만(60)씨는 양정마을 주민이지만 개인 땅이 없다 보니 공설운동장에 마련된 임시주택에 들어와 있다.

집 내부에는 잠을 잘 수 있을만한 작은 방 형태의 공간과 부엌, 화장실이 구비돼 있었다. 수해로 모든 것을 잃은 탓에 새로 구입한 냉장고와 식기류 그리고 인스턴트식품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뿐이었지만, 나름 집 형태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박씨는 "지금 당장은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은 생겼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재민에게 제공된 임시주택은 기본 1년을 거주할 수 있고 이후에도 상황이 어려우면 2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2년짜리 무료 계약 집인 셈이다.

"추후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라는 질문에 박씨는 "뭘 어떻게 해요. 그냥 이곳에 머무르며 살면서 생각해 봐야지요"라고 한숨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이곳에서 만난 류명희(62·여)씨는 "보금자리를 잃은 뒤 두 달 가까이 마을 사람들의 집과 이재민 보호소를 전전하다가 겨우 자리를 잡은 것"이라며 '입주 소감'을 묻자 눈물부터 흘렸다.

월세살이를 하던 류씨도 모든 것을 잃었지만, 세입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했다. 또 집주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임시주택마저 받지 못할뻔 했지만, 군청과 면사무소를 찾아가 사정사정한 끝에 겨우 임시주택을 하나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는 "비록 임시주택이지만 추석에 아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다행이다. 집이라고 생각하기엔 부족함이 끝이 없지만, 불평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주거시설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은 마련돼 있어 이곳 생활에 적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주택 제공이 계속 미뤄져 추석마저 길에서 보낼 판이었지만, 드디어 머무를 곳이 생겨 마음 한켠의 답답함이 조금 풀렸다"며 "지금은 집이라고 생각하기엔 볼품없는 상황이지만, 새로 시작한다 생각하고 하나하나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례 공설 운동장 이재민 임시주택 외관. 내부는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공간과 부엌, 화장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양정마을에도 임시주택 20동이 설치됐다.

아직 시설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지만 집집마다 이삿날인 것처럼 짐들이 쌓여있다.

최석권(75) 씨는 "어제 처음 집에 들어가 생활해 봤다. 다른건 모르겠고 우선 당장 살 곳이라도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마을도 조금씩 수해 전 모습으로 회복하고 있었다. 찢겨져 방치되던 비닐하우스도 휘어지거나 부러진 곳은 대부분 수리가 완료됐다. 일부 비닐하우스에는 어느새 상추가 자라나 있었다.

양정마을의 생계수단인 축사도 보수공사가 마무리 중이었다. 살아남은 몇몇 소들은 아직 부상당한 부분을 치료받고 있었지만, 우렁차게 울기도 했고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백남례(61·여) 씨는 "주민들이 힘을 모아 하나하나 복구하다 보니 조금씩 예전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며 "수해 이후 전체적으로 모든 것들이 부족하지만, 주민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 주민들은 "하루하루를 생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끝나지 않은 고통을 호소했다.

최씨는 "이번 수해의 뚜렷한 원인 규명과 보상 대책이 마련되지 않아 주민들의 고통과 불신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용주 마을이장은 "수해를 복구하고 일상을 되찾으려 주민들은 노력 중이지만, 보상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며 "수천만원의 복구비를 감당 못한 주민들은 더이상 희망조차 없다. 정부는 댐 방류로 인한 인재(人災)를 인정하고 책임있는 대책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고 호소했다.

함평군도 집중호우로 주택 전파와 침수 등의 피해를 본 이재민 2개 가구에 7000만원을 들여 전국 최초로 임시주택 2개 동을 지난 6일 설치·지원했다. 이재민들은 완공 직후부터 임시주택에 입주해 지내고 있다.

함평군에서 제공한 이재민 임시주택은 부엌 겸 거실과 방으로 구성된 8평 남짓의 크기이며 냉·난방 시설을 갖추고 있어 당장 지내기에는 불편함이 없지만, 세탁기 등 가전제품은 구비돼 있지 않았다.

윤명규(53) 씨는 "폭우로 뒷산 토사가 흘러내리더니 태양광 패널과 집을 덮쳐버렸다. 집이 무너질 때 부모님만 모시고 아무것도 챙기지 못한 채 몸만 빠져나왔다. 내가 자고 있을 때 집이 무너졌다면 큰일 날 뻔했다"며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윤씨는 "무너진 집은 200평 정도였다. 어머니가 직접 담근 장이 담긴 독들도 다 깨져버렸다. 100년이 넘은 선조들의 역사가 담긴 집인데 너무 허탈하다"고 말했다.

이재민들은 부서진 집을 복구하지도 못한 채 임시주택에서 지내고 있는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지낼 곳이 생겼다는 생각에 조금은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윤씨는 "집이 사라져 살기 막막했는데 함평군에서 임시주택을 마련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부모님과 내가 임시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다. 부산에 있는 딸이 '할머니 이제 차가운 바닥에 앉아 밥 안 드셔도 되겠다'며 안심했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어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 세탁기를 사비로 직접 구매했다"면서 "임시주택이지만 냉·난방이 잘 된다. 부엌 싱크대에서도 따뜻한 물이 나와서 지내는데 불편한 점은 없다. 함평군이 가장 먼저 이재민 임시주택을 만들어 제공했다고 들었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김해나 기자 haena.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