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 피해 100일, 선각후망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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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집중호우 피해 100일, 선각후망 경계해야
  • 입력 : 2020. 11.03(화) 17:04
  • 오선우 기자
오선우 정치부 기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중대하든 하지 않든 간에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바랜다.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이나 심리·상담을 공부한 적이 있다면 한 번쯤 헤르만 에빙하우스(Hermann Ebbinghaus, 1850~1909)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억·학습 연구의 선구자로서, '망각(忘却)'이라는 단어가 학문적·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만든 학자이다.

대표적인 연구 업적으로는 '망각곡선'을 들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의 망각 정도를 그래프화한 것으로, 사람은 학습 후 20분이 지났을 때 전체의 42%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하루 뒤에는 3분의 1, 한 달 후에는 5분의 1만 남는다.

하물며 100여 일이 지난 후에는 과연 어느 정도나 기억할 수 있을까. 지난 7~8월 전국에서 수많은 인명·재산 손실을 일으켰던 사상 초유의 집중호우 수해 역시 망각곡선의 기울기처럼 국민의 뇌리에서 희미해지고 있다. 뜨겁게 달궈진 쇠가 금방 식듯, 사람들은 금세 코로나19와 정치 이슈 등에 치여 지난 여름의 악몽을 망각하고 있다. 여지껏 복구 작업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는 곳도 수두룩한데 말이다.

망각은 닥쳐올 고난을 예방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 자연재해를 사전에 국민에게 알려 피해를 예방하는 민방위경보시스템의 부실 역시 닥쳐올 제2의 수해와 무관하지 않다. 2019년 말 기준 전국의 경보가청률(일정 면적 당 경보를 들을 수 있는 사람 수를 수치화한 것)은 83.8%로, 숫자로만 보면 낮은 수치는 아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허수가 존재한다.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경보시스템도 잘 갖춰진 서울·경기 등 광역시·도, 대도시 인구밀집지역의 가청률은 90%를 상회한다. 지방의 낮은 가청률을 가려 '열악함'을 '그럴듯함'으로 둔갑시키는 장본인이다.

전남의 평균 가청률은 67.3%로, 시·군 단위로 보면 더욱 암담하다. 광양 99%, 순천·목포 96%, 여수 83% 등 일부 도시를 제외하면 절반이 채 안되는 곳이 허다하다. 최대 수해지인 구례·곡성도 30%대, 함평·신안은 10%대에 그쳤다.

국민의 망각과 무관심에서 기인한 안전불감증은 부실한 시스템보다 극악한 독으로 작용한다. 보통 사람에게 민방위경보사이렌은 귀찮고 시끄러운 소리일 뿐이다. 전남에서는 "별 일도 없는데 민방위 훈련일이나 기념일이라고 쓸데없이 틀어댄다"며 소음 민원을 넣는 이들도 적잖다.

강원도는 전혀 다르다. 지리적 특성으로 사계절 내내 산불과 폭설 등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는 곳이라 심심치 않게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주민들은 오히려 겨울이 되면 "왜 폭설이 내리기 전에 더 빨리 경보를 울리지 않느냐"며 항의하기도 한다.

에빙하우스는 망각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반복 학습'을 들었다. 올여름 비싼 값을 치르고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경험한 광주·전남은 예방 안전 시스템 확립에 심혈을 기울이고, 망각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지난 수해를 곱씹어야 한다. 100년 만의 홍수라고 했던가, 앞으로 100년 후까지 아무 일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참혹한 대형사고가 발생해도 예방 없이 복구만 하다가는 '선각후망(先覺後忘, 앞에선 깨우치고 돌아서면 잊는다)'의 반복일 뿐이다. 국민이 나서서 사회에 뿌리깊은 안전불감증을 타파하고 대비 태세를 습관화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가 올 때마다 물이 새는 초가지붕에 짚만 더할 것이 아니라, 비가 오기 전에 지붕을 들어내고 기와를 덮는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선우 기자 sunwoo.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