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수능과 호흡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취재수첩
코로나 수능과 호흡
양가람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0. 11.09(월) 13:44
  • 양가람 기자
사회부 양가람 기자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여주인공 샤오위는 천식을 앓다 세상을 떠난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대만 영화만의 감성 덕에 샤오위는 풋풋한 첫사랑의 이미지로 대중에 기억된다.

하지만 코로나19 현실에서 천식 환자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다. 잦은 기침이라도 내뱉으면 "코로나19 감염자 아니야?"라는 의심부터 받고, 장시간 마스크 착용으로 호흡 곤란을 겪기도 한다.

천식(asthma)은 그리스어의 '날카로운 호흡'에서 유래했다. 기도 폐쇄로 호흡 곤란, 기침 등이 발생하며, 공기가 차고 건조한 겨울에 증상이 더 심해진다. 완치가 어려워 악화되지 않도록 평상시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달 3일 치러지는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천식이 있는 수험생들은 '기타 시험편의 제공 대상자'로 인정된다. 이들은 별도의 시험장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혼자 시험을 치를 수 있다. '코로나 수능'에서 마스크 착용은 의무사항이지만, 천식 등 호흡기 환자는 마스크 착용으로 질환 악화가 염려되는 탓이다.

교육부의 이같은 발표에 일부 누리꾼들은 '불공정한 특혜'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기사에는 '마스크 착용으로 호흡곤란이 있다는 사실만 증빙하면 나도 마스크 없이 따로 시험 볼 수 있느냐'는 조롱섞인 댓글도 달렸다.

취재현장에서 만난 고3 학생은 마스크 착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수학이나 과학탐구 같이 복잡한 계산 문제를 풀 때는 집중을 해야 돼 순간 몸에 열이 올라요. 마스크를 쓰면 호흡도 가빠지고 어지러워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신체 건강한, 최상위권 수험생에게도 마스크를 쓰고 제한 시간 내 문제를 푸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 시대에도 수능은 인생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시험이다. 수능일은 출근시간도 늦추고, 비행기도 날지 못하게 할 만큼 대한민국 전체가 수험생 못지않게 예민해지는 날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내달 3일 또다시 펼쳐지게 된다.

수능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수험생들은 마스크 한 장에도 크게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천식 환자 특혜' 발상은 여기서 나온다. 마스크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불편의 문제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임을 받아들일 여유조차 남아있지 않은 셈이다.

한 수험생의 '날카로운 신경'은 다른 수험생의 '날카로운 호흡'을 아프게 찔렀다. 마스크 착용의 답답함에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 다시 마스크를 벗는 시대를 상상해 본다. 수능철만 되면 뾰족해지는 신경이 그때는 무뎌질 수 있을까.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