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가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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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단 한 가지 '변화'
곽지혜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0. 12.01(화) 16:41
  • 곽지혜 기자
지난해 3월 11일, '수습기자'라는 명찰을 붙이고 공식적으로 32년만에 광주를 찾았다는 전두환 씨를 광주지방법원에서 처음 마주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지 10개월 만에 전씨가 참여한 첫 재판이었다.

전씨가 차에서 내리던 순간 담장을 넘어 달려들던 한 남성에게 왜 그랬냐고 묻자 대답 대신 토하는 울분에 함께 울었다. 창문을 열고 법원을 향해 "전두환은 사죄하라"고 외치던 초등학생들의 모습에 같이 웃었고, 주저앉는 어머니들에 함께 분노했다.

인간벽을 세운 경찰, 수많은 취재진과 시민들, 5·18 민주화운동 관계자들의 모습은 초임기자에겐 넘치게 벅찬 순간이었다.

그렇게 절대 잊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그날의 긴장감은 시간 속에 무뎌졌다.

그 시간 속에서 전씨는 골프장 나들이를 떠났다.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호화 오찬을 즐기기도 했다. 지난 4월, 다시 한번 광주 법정에 섰지만, 침묵은 변함이 없었다. 법정안이 편안하였는지 여전히 잠도 잘 잤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무뎠던 시간은 잘도 흘러 이제는 수습 명찰 없이 법원 안에서 전씨를 마주했다.

차에서 내려 차분히 중절모를 고쳐 쓰고, 경호원의 거친 밀침에도 끝까지 "사과하지 않을거냐" 질문을 던진 취재진의 물음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이날 단 한 가지 변한 것은 그에게 '유죄'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정황과 증거, 검증으로 사실로 판명됐다. 하지만 헬기사격 사실에 대한 사법부의 인정은 충분히 큰 의미를 가진다.

지난달 진행된 전씨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1년6월을 구형하며 "판결로서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전씨에 징역 8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재판장은 선고 직전 "지금이라도 5·18의 가장 큰 책임 있는 피고인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받길 바란다"는 한 마디로 이에 답했다.

이날의 변화는 마무리가 아닌 다시 시작함을 알리고 있다. 아직 가려진 것은 셀 수 없고 국가의 공권력에 스러진 수많은 시민들은 여전히 사과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

5·18은 광주 지역에 국한된 아픔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짊어져야 할 과제 중 하나다. 그리고 그 변화의 마지막 장에는 완벽한 진실 규명과 사죄가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이다.

5·18 40주년을 맞은 2020년은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날의 선고로 미완의 진실 규명이 더욱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의 실체를, 곧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