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죽음과 권력형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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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이름 없는 죽음과 권력형 애도  
  • 입력 : 2020. 12.03(목) 14:17
  • 도선인 기자
도선인 사회부 기자.
올해의 기업인에 부자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기사도 여전히 그를 가리킨다. 별세 한 달 후, 그가 세상에 남긴 말, 별세 49재 한 사찰서 조용히…. 따위의 것들이다.

그가 저지른 과오는 어느새 없어지고 세상은 그의 어록을 새기라고 했다.

시간을 조금 더 되돌려 보자. 전 서울시장의 소식에 진보 정치인이 애도를 표했다. 자신에게 엄격한 오랜 친구가 애석하다느니, 그만한 남자사람 친구를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느니…. 따위의 것들이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도로 확장)에 착수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전 서울시장도 사업을 중단하려 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그는 죽음 이후에도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알아서 기억해주는 죽음도 있지만, 세상에 무언가 알리려고 하는 죽음도 있다. 올해는 전태일 50주년이라고 한다. 그가 죽음으로써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전태일이 죽고 50년 동안 얼마나 달라졌을까. 올해 택배노동자 15명이 과로사로 죽었다. 일하다가 죽었다는 말이다. 전태일의 죽음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고 김재순씨는 홀로 목재 파쇄기 청소 작업을 하다 파쇄기에 끼어 숨졌다. 고 김재순씨는 매일 칼날 앞에서 일했다. 현장에는 파쇄기 투입구 덮개, 비상정지 리모컨 등 안전장치가 단 한 개도 없었다.

같은 현장에서 비슷한 사망사건은 앞서 2014년에도 있었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없다. 당연하다는 듯 따라오는 애도와 추모없는 '이름 없는 죽음'이 언제 또 일어날 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나만이라도 권력형 애도 뒤로 숨어버린 이름 없는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해야 할 듯 하다. 1991년 부산에서 한 노동자는 팔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고 죽었다.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노동자는 이름도 없이 대체되는 기계가 아니며, 나 역시 노동자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