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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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낮술 금지
  • 입력 : 2021. 01.04(월) 15:48
  • 이용환 기자


'불멸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유명한 낮술 예찬론자였다. 가난했던 고흐는 당시 저렴하고 도수가 높았던 독주 '압생트'를 시도 때도 없이 마셨고 술에 취해야 붓을 잡았다고 한다. 고흐가 그린 '압생트가 있는 정물'은 술을 다룬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가장 유명하다. 미국 문학의 거봉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점심 식사를 하면서 포도주 5~6병을 마시는 애주가였다. "인생이 풍요롭고 아름다워진다"는 게 헤밍웨이가 낮술을 즐기는 이유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낮술은 흔히 볼 수 있는 문화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김홍도는 자신의 호를 취화사(醉畵師)라 부를 정도로 취중 그림그리기를 즐겼다. 달마도를 그린 김명국도 스스로 취옹(醉翁)이라 부르며 붓을 들 때마다 술을 마셨다. 대여섯 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는 변영로, 동대문에서 종로까지 오가며 매일 50여 사발의 막걸리를 마셨다는 월탄 박종화, 막걸리를 밥이라고 한 시인 천상병도 빠지지 않는 낮술 예찬론자였다.

우리 속담에 '낮술에 취하면 제 부모조차 못 알아본다'는 말이 있다. 낮술이 판단력을 떨어뜨리고 반사신경을 무디게 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다. 신진대사가 활발한 낮에 마시는 술은 밤보다 알코올 흡수가 빨라 뇌의 반응이 더 예민해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탈무드도 '사흘에 한 번 마시는 술은 금(金), 밤술은 은(銀), 낮술은 독(毒)'이라고 경계한다. 반대로 긴장과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직장 생활에 활력소가 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과하지만 않다면 짧은 여유를 즐기고 작은 행복감을 만끽하기에도 제격이다.

순천시가 4일부터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내린 '낮술 금지'를 두고 논란이다. 일부에서는 '코로나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인 반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도 많다. '공산당도 이런 공산당이 없다'는 불만도 나온다. 어떻게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강력한 방역수칙을 내는 것은 순천시 입장에서 고육지책이다. 그렇다고 낮술만이 꼭 코로나 확산의 주범은 아니다. 낮에 먹는 밥은 괜찮고 술은 위험할 거라는 생각도 동의할 수 없다. 개인이 마시는 반주 한잔을 어떻게 단속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탁상 행정이 만들어 낸 과도하고 오만한 발상이 순천시 전체를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있다. 문화체육부장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