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술(60·글로벌 디아스포라 연구교수) (25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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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람들
김영술(60·글로벌 디아스포라 연구교수) (258/1000)
  • 입력 : 2021. 01.11(월) 13:00
  • 최황지 기자

전남대학교 김영술 교수가 연구실 책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가 쓰고 있는 모자는 청년시절 모스크바 유학 당시 샀다.

"1988년에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을 갔죠. 서독·동독이 통일 되기 전이었어요. 그런데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독일 민족이 환호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봤어요. 독일인들은 '나는 그 당시 거기에 있었노라'라는 말을 해요. 그 역사적 순간, 냉전의 순간이 해제된 순간에 저도 있었죠. 통일된 조국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독일인들의 모습을 봤어요. 그 순간 나는 대한민국이 생각났죠. 자유의 바람이 부는 순간이었어요.

1990년에 베를린에서 사회주의 종주국인 모스크바에 입성했습니다. 당시엔 사회주의 국가라 공부 목적이었어도 들어가기 힘들었어요. 소련이 붕괴되기 전에 들어갔으니까. 그곳에서도 소련 국기가 내려가고 러시아연방 국기가 올라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공산 이데올로기가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소련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죠.

이데올로기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난 남북한 문제에 심취했고 민족문제에 전념했어요. 그러다 교회에서 고려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기회를 얻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빌려 한글학교를 만들었고 고려인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어요.

현재는 글로벌 디아스포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한 민족이 고향을 떠나, 개인이나 공동체를 이루는 걸 말해요. 세계의 디아스포라를 연구하고 고려인 동포에 대해서는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중입니다.

코로나19가 아니면 전 주변인들에게 항상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유롭게 살아라'고 조언해요. 그러나 그 순간에도 민족과 공동체에게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죠. 아, 이 모자는 모스크바에서 산 모자인데 지금까지 쓰고 있어요."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