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 할머니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양금덕 할머니
  • 입력 : 2021. 01.20(수) 14:41
  • 홍성장 기자

할머니를 처음 만났던 게 2009년이었다. 당시 81세였다. 양금덕 할머니다. 할머니가 살고 계시던 양동의 어느 허름한 집이었다.

할머니의 삶은 기구했다.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중학교도 갈 수 있다"는 말이 기구한 삶의 시작이었다. 13살의 어린 나이에 할머니는 그 말에 속아 일본으로 떠났다. 할머니의 '조선근로정신대'의 시작이었다.

할머니가 도착한 곳은 나고야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사였다. 돈도 벌 수 있다던 그곳,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중노동과 배고픔이었다. 감금상태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하루 18~10시간 중노동을 했다.

죽을 고비도 많았다. 많은 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도난카이 지진이다. 건물이 무너졌고 할머니도 건물더미에 깔렸다. 옆에 있던 동료 두 명이 죽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때 입은 상처는 지금도 선명하다.

우여곡절 끝에 꿈에 그리던 해방이 찾아왔다. 한 푼의 월급도 못 받았지만,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어서 그때는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양 할머니에겐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의 시선이다. 일본을 다녀왔다는 이유 하나로 할머니는 여성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어야 했다. "돌아가 있으면 월급을 보내주겠다"던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회의 냉담한 시선과 무관심만이 할머니를 힘들게 했다.

2009년 당시 할머니를 만났을 때가 광주에서 처음 할머니와 같은 '조선근로정신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때였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다.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할머니의 연세도 90을 넘기셨다.

받지 못한 '월급'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했다. 우리 사회의 관심이다. 얼마 전 여자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일제 강제노역 피해 할머니들의 삶이 담긴 자서전이 나왔다. '죽기 전에 듣고 싶은 한마디'와 '마르지 않는 눈물'이다. '죽기 전에 듣고 싶은 한마디'는 양금덕 할머니의 이야기다. 양 할머니의 바람 그대로다.

2009년 양금덕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떠오른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우리 살아 있을 때 한이라도 풀어달라는 것이에요. 징한 세월 보냈는데…." 새해가 밝은지도 어느덧 한달. 올해는 할머니의 바람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홍성장 기자 seongjang.h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