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 용어 소환한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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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집합' 용어 소환한 코로나
  • 입력 : 2021. 01.21(목) 17:03
  • 이기수 기자
이기수 사진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자영업자들을 가장 성나게 만든 말은 아마도 '집합 금지·제한'이지 아닐까 싶다. K방역의 상징어인 사회적 거리두기의 강력한 조치인 이 말은 실상은 영업금지·제한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이기 때문이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 방역당국이 다중 이용 시설에 대해 운영을 막거나 제한하고 있어서 생계를 위협 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미증유의 코로나19 감염병이 창궐하면서 '집합'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이 말을 들으면서 1990년대 이전에 군대를 갔다온 남성들의 경우 잘 지워지지 않은 병영생활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성인 남성들 셋 정도가 모이는 술자리에서 감초처럼 등장하는 화젯거리 중 하나가 군생활 무용담이다. 여기서 선임병들의 집합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후임병의 군기를 잡는다면서 취침 전 집합을 시켰다. 집합 장소는 연병장이거나 창고 뒷편같은 후미진 곳이다. 집합 명령을 내린 선임병 아래 기수는 모두 집합 대상이 된다. 집합이 이뤄지면 '얼차려'라는 이름으로 후임병에게 온갖 방법의 폭력이 가해진다. 종종 가혹한 구타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병사가 나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과거 병영 내에서 집합이라는 말은 선임병이 응당 폭력을 가해도 된다는 의미로 통용됐었다. 당연히 당하는 입장에서는 집합은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버텨야 하는 일어서 공포 그 자체였다.

최근에는 병역 의무자에 대한 인권 보호 조치로 병영 내 구타가 많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군 부대 행정문서상에는 '구타 금지'라는 용어가 사용됐을 것이다. 실제 병사들끼리는 집합 금지라는 말이 훨씬 더 쉽게 소통됐을테지만. 이런 잔혹사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쉽게 잊혀지지 않은 군대 은어인 '집합'이란 말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집합 금지'라는 행정명령으로 소환된 셈이다. 행정명령은 지키지 않으면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단속돼 처벌받는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들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인 집합금지 행정명령으로 오랜 동안 장사를 하지 못해 피해가 쌓여가자 불복종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부가 집합금지 업종에 300만 원, 제한 업종에 200만 원씩 지원해주지만 이것은 한 달 임대료 내면 그만이라며 합당한 손실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한 정부가 재정 지원을 제도화하는 방안 검토에 들어갔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코로나19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집합 금지라는 명령어가 많이 사용된다는 것은 우리 삶을 옥죄는 억압 사회임을 방증해주는 만큼 사회 구성원이 노력해 없애야 할 말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기자 kisoo.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