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문화원, 日교토大도서관서 '정렬사비 탁본첩' 발견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나주시
나주문화원, 日교토大도서관서 '정렬사비 탁본첩' 발견
의병장 김천일 기리는 비문 담은 금석집첩에 기록||1626년 정렬사비 제작…마모·훼손 전 글자 선명||나주 금석문 탁본조사, 국역 해설집 발간하며 확인||발견된 탁본, 남도의병 역사공원 중요자료로 활용
  • 입력 : 2021. 01.24(일) 16:56
  • 박간재 기자

김천일 의병장 동상. 나주=박송엽 기자

나주 정렬사 비. 나주=박송엽 기자

교지. 나주=박송엽 기자

김천일 선생 친필. 나주=박송엽 기자

나주 정렬사. 나주=박송엽 기자

비문(탁본문) 1750년경 탁본첩(금석집첩)과 2020년 탁본문 비교

비문(금석집첩) 1750년경 탁본첩(금석집첩)과 2020년 탁본문 비교

비제(금석집첩) 1750년경 탁본첩(금석집첩)과 2020년 탁본문 비교

제액(금석집첩) 1750년경 탁본첩(금석집첩)과 2020년 탁본문 비교

호남의병의 대명사인 김천일 선생을 기리는 정렬사비(旌烈祠碑)의 가장 오래된 탁본첩이 일본에서 발견돼 학계는 물론 지역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626년 세워진 비문의 마모·훼손이 심각했는데 훼손 이전인 1750년께 탁본된 것으로 보이는 탁본첩이 발견됨에 따라 나주의 역사문화를 재조명 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주문화원(원장 최기복)은 호남의병의 대명사인 김천일 선생을 배향한 정렬사비의 탁본첩을 일본에서 발견했다고 24일 밝혔다. 이 탁본첩은 '금석집첩(金石集帖)'이라는 책에 실렸는데 271년전인 1750년 제작된 것으로 일본 교토대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나주 문화원은 매년 향토문화 자원을 조사해 총서 형태로 출간하고 있으며 지난해 사업으로 나주 소재 주요 금석문에 대한 탁본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정리·국역 해설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최근 안동김씨역사연구회에서 금석집첩(金石集帖)에 실린 안동김씨편 28명을 발췌해 2책으로 출판했다. 송광사성보박물관(관장 고경스님)에서 책을 입수해 남도불교문화연구회측과 불교문화편 정리에 대한 협의를 하던 중 교토대도서관에 소개된 전체 목록을 확인해 정렬사비 자료를 입수하게 됐다. 윤여정 남도불교문화연구회장(나주문화원 부원장 겸 향토학연구소장·전 나주시청 과장), 황호균, 정선종, 최인선(전 회장), 김희태 연구간사가 참여 했으며 윤여정, 정선종, 김희태는 나주 금석문 탁본조사를 했다.

정렬사비의 탁본첩은 천자문 순으로 '能'자편(174번째)이며 국사편찬위원회 조사 목록상으로 160첩에 다섯번 째로 실려 있다. 책 표지 제목은 '김건재정렬사비(金健齋旌烈祠碑)'다.

13면으로 첫면은 6줄, 2면부터 7줄로 편차돼 있다. 첫면 제액(題額)인 '旌烈祠碑'(정열사비)를 1행에 편집하고 이어 비제를 3행으로 편집했으며 본문을 싣고 있다. 조선시대 비를 세울 때는 국왕과 관련되는 용어나 임금의 휘 등을 표기 할 때는 한 칸씩을 공란으로 놓거나 줄바꿈을 하는데 이 금석집첩에서도 공란을 두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나주 정렬사는 건재 김천일(1537~1593)을 주벽으로 아들 김상건(1557~1593)과 의병장 양산숙(1561~1593), 임회(1562~1624), 이용제(1565~1597) 등 충절인물 5위를 배향한 호국인물 역사유적이다. 1606년(선조 39)에 나주목 서부면 교촌(월정봉 아래)에 건립됐다가 1607년 성내(나주잠사 터)로 이전된 후 곧바로 사액됐다. 1745년(영조 21)과 1821년(순조 21)에 사제문이 내려졌다.

1844년(헌종 10)에는 나주목사 김유희가 중건했으나 1868년(고종 5)에 훼철됐다. 1953년 문열공사업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1964년 삼영동에 신실을 마련했다가 이후 1966년에 남산공원으로 이건했으며 1984년 현재 위치로 옮겼고 1991년에 보호각을 세웠다.정렬사비는 1981년 10월20일 전남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됐다.

정렬사비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김천일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26년(인조 4년) 나주 유림이 정렬사에 세운 비다. 비제에도 '…義使金公旌烈祠碑銘'이라 하며 김천일 선생을 명기하고 있다.

정렬사비는 임진·정유왜란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인 호남의병의 중심인물에 대한 역사 기록으로 가치가 높다. 세운지 396년이 흐르면서 비문의 훼손이 진행되고 있는데 1750년 탁본첩이 확인돼 매우 중요하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네모난 형태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머릿돌에는 용을 생동감 있게 조각해 놓았다. 비문에는 김천일의 의병활동을 자세히 적고 있다. 비문은 1700여 자를 기록했다. 나주목사를 지낸 당대 석학 신풍군 장유(1587~1638)가 비문을 지었으며 글씨는 이숙, 앞면에 새긴 비의 제액(題額)은 김상용(1561~1637)이 썼다. 당시 관찰사 민성징과 나주목사 유여각, 조홍립이 함께 세웠다.

금석집첩은 우리나라 주요 금석문의 탑본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 근세이전 금석문 탑본의 현전 최대 집성본이자 최선본이다. 현재 219책이 일본 교토대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1877종의 탁본첩이 있으며 등재 인물은 연인원으로 1896명에 이른다. 책의 크기는 40.0×28.0㎝로 탁본을 한 금석문 자료를 책의 체제에 맞춰 편집을 한 것이라 '금석문첩', 또는 '탁본첩'이라 한다. 실제 현장 비석의 글씨 크기와 같은 실물 크기 탁본문인 셈이다.

이 책은 본집이 1760년~1795년께 제작됐으며 속집은 그 이후 편찬됐다. 당시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가 수집했고 조인영 등 후인들이 보완하고 속편을 낸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지만 이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다. 일본으로 건너간 시기와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912년부터 일본 교토대에서 소장하고 있다.

최기복 나주문화원장은 "정렬사비 탁본첩 자료는 나주학의 기초자료일 뿐 아니라 남도의병역사공원과 관련해 활용가치가 높다"며 "향토문화자료 총서를 지속적으로 간행해 천년고도 나주의 역사문화를 재조명하고 나주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비제(탁본문) 1750년경 탁본첩(금석집첩)과 2020년 탁본문 비교

정렬사비 제액(2020년 나주문화원 탁본문) 나주문화원 제공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