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21-3>"가끔 해야 '과로'죠, 우리에겐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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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21-3>"가끔 해야 '과로'죠, 우리에겐 '일상'입니다"
●우체국 집배원의 하루||“토요일도 업무… 인력 부족한 현실일 뿐”||“이륜차로 배송… 큰 택배 ‘감당불가’ 고충”||“전기차 사용 안 해… 골목길서 무용지물”||“택배 파업은 옳은 선택… 응원의 박수를”
  • 입력 : 2021. 02.07(일) 18:12
  • 김해나 기자

집배원 국중신(53)씨가 이륜차로 택배를 운반하고 있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그들을 응원합니다."

코로나19로 택배는 더욱 우리의 일상생활이 됐다. 정부의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등의 거리두기 방침에 명절을 앞둔 택배 노동자들은 더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편 업무와 택배 업무를 동시에 소화하고 있는 우체국 집배원은 그야말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택배 노조 파업에 대해 '파업으로 우리들의 업무가 늘어도 적극 찬성한다'는 응원의 뜻을 내비쳤다.

지난 6일 오전 광주 남구 양림동 일대.

명절 택배 대란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주말임에도 많은 집배원이 분주히 배송에 나서고 있었다.

이들은 오토바이 뒤에 설치된 보관 상자에 큼직한 상자들을 차곡차곡 쌓고 고무끈으로 고정했다. 오토바이 높이보다 높게 '택배탑'이 쌓였다. 간혹 있는 무거운 짐에 낑낑대며 택배 상자를 옮기기도 했다.

집배원 국중신(53)씨가 택배 중간 보관소에서 택배를 분류하고 있다.

한 구역 배송을 마친 국중신 집배노동조합 광주우체국지부장은 '택배 중간 보관소'에 들러 다시 오토바이에 택배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택배 물량이 많아 한 번에 배송할 수 없기 때문에 중간 보관소는 필수적이다. 우체국이 있는 동네는 우체국이 중간 보관소 역할을 하지만, 양림동의 경우 우체국이 없어 임대 건물을 활용해 명절 때만 임시로 사용하고 있다.

국 지부장은 경험상 시간을 최대한 절약할 수 있는 경로를 생각해 주소를 읽으며 구역별로 택배를 분류한 후 오토바이에 실었다.

급경사인 길도, 덜컹거리는 길도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그는 "전기차가 있지만, 골목길 배달을 하면 차량이 들어갈 수 없어 이륜차를 이용한다"며 "전기차가 오토바이보다 안전은 보장되지만, 타고 내리는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집배원이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택배를 배송할 때 넘어지고 다치는 일은 다반사다. 사진은 국중신(53)씨의 다리.

바쁜 일상에 헬멧 미착용 등 안전에도 무감각해졌다고 말한다.

국 지부장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면 넘어지고 다치는 건 다반사다. 집배원 70~80%가 근골 질환을 앓고 있다"며 "사고가 나거나 수술을 하게 되면 공무상 병가를 사용하는데 어차피 그 업무를 동료들이 분담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병가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집배원의 공식 근무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지만, 공식 근무 시간만 일을 하는 집배원은 없다. 국 지부장은 "택배를 구역 별로 정리하고 배달을 시작하려면 오전 7시에는 나와야 한다. 택배 업무가 마친다고 바로 퇴근하는 것이 아니고 또다시 다음날이나 다음 주에 배송할 우편, 택배를 분류해야 하므로 오후 7~8시 퇴근은 기본이다"고 말했다.

집배원들이 연장 근무를 하게 되면 '시간 외 수당 사후신청'을 해야 한다. 업무가 길어진 사유 등을 적어야 해 이를 신청하는 사람은 몇 없다. 이와 관련 국 지부장은 "'업무 시간 안에 일을 다 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 찍히게 될 바에는 울며 겨자 먹기 식 '무료 노동'을 하는 셈이다. 안타까운 현실이다"고 말했다.

현재 OECD 노동자들의 1년 총 근무 시간은 1800여 시간이지만, 집배원의 근무 시간은 1년 총 2700여 시간이다.

더욱이 현재 우정사업본부는 업무 시간을 초 단위로 세분화하는 '집배업무고강도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우편 2.1초, 등기 28초, 택배 36초 등 각 택배물에 시간 기준을 정해 배달 물량으로 집배원의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기준에 맞춰 8시간을 채우면 일을 한 것이고, 못 채우면 일을 안 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 지부장은 "인간이 하는 일인데 초 단위로 세분화해서 기계적으로 하는 것을 보고 집배원을 사람으로 생각하기는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관리자가 '집배원은 쥐어 짜야 말을 듣는다니까'고 말하는 것까지 들으니 집배원에게는 인권도 없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고 털어놨다.

택배 파업에 대해서는 집배원의 업무가 늘어도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 지부장은 "집배원 정규직과 위탁 택배원이 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위탁 택배원의 파업 참여로 그들의 업무가 고스란히 집배원의 업무가 됐다"며 "그래도 파업을 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소리소문없이 과로사나 극단적 선택 등으로 생을 마감한 택배 노동자가 너무 많다.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집배 업무를 하시는 분 중에 정년퇴직을 한 사람은 드물다. 몸이 만신창이가 되기 때문이다"며 "나도 정년이 7년도 채 남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는 기간 동안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바꿔서 후배들이 집배원으로서 더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말했다.

집배원 국중신(53)씨가 택배를 배송 중이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