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21-2>"산더미처럼 쌓인 택배에 입이 다물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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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21-2>"산더미처럼 쌓인 택배에 입이 다물어지지 못했다"
●택배 물류터미널 가보니||지난 4일 분류인력 6000명 투입||현장에는 기사 4명 당 1명 배치돼||오전 7시 출근… 여전히 분류작업||“말과 다른 개선점 없는 근무환경”
  • 입력 : 2021. 02.07(일) 18:12
  • 최원우 기자

지난4일 CJ대한통운 등 택배 3사가 분류인력 6000명을 투입했지만, 택배기사들은 여전히 분류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지난 4일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를 위해 택배업계가 분류인력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에 설 멸정을 맞아 찾아가 본 분류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분류인력 1명이 최대 5명의 택배기사 물량을 분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인력인만큼 택배기사들이 투입 되지 않고서는 분류작업이 끝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이에 대해 한 택배기사는 "분류인력 투입은 보여주기식일 뿐, 근무환경은 달라진 게 없다"고 자조할 뿐이었다.

지난 6일 오전 8시, 광주 광산구 CJ대한통운 한 물류터미널.

주말 이른 아침 시간이지만, 택배기사의 하루 일과는 이미 시작됐다. 취재차 물류터미널에 도착하니 수많은 택배기사들이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분류작업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19 방역조치로 배달을 권장하는 분위기인데다 설 연휴 고향 방문 등이 자제되면서 안그래도 많은 택배 물량이 3배 이상 늘어난 상태다. 이로 인해 오전 7시 이전에 출근, 분류작업을 진행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현장에 도착한 택배기사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빠르게 지나가는 수많은 택배 상자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찾는 분류작업을 먼저 해야 했다.

분류작업에는 분류인력이 투입돼 택배기사와 2인 1조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엄밀히 말하면 2인 1조는 아니었다. 분류작업에 투입된 인력은 평균적으로 택배기사 4명의 택배 물량을 동시에 분류하고 있었다.

택배기사 김모 씨는 "다수의 택배기사 물건을 혼자서는 분류할 수 없다. 시간 안에 분류작업을 끝내려면 택배기사들도 도울 수밖에 없다"라며 "분류인력이 택배기사 2명 당 최소 1명이 붙어야 그나마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기사 전모 씨는 "최근 분류인력이 투입됐지만, 실상은 몇 명 안된다. 투입된 인원들도 대부분 부업을 하려는 주부분들이라 무거운 짐 등은 내가 옮기는 편"이라며 "힘든 업무이다 보니 분류작업에 투입된 인원들도 며칠이 지나면 안 보인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류작업에 투입된 사람들은 허리 한번 펼 시간도 없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물량을 들고 옮기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또 분류된 일정 물량이 쌓이면 택배기사는 자신의 1톤 트럭에 상차(물건을 싣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분류인력은 상차 중인 택배기사 몫의 택배 전부를 분류해야 한다.

당초 분류에 투입된 인원이기에 당연히 해당 분류작업을 하는 게 맞지만, 택배기사가 빠지는 이 시기는 여러 명의 택배 물량을 혼자서 분류해야 돼 더 힘들 수밖에 없다.

한 분류인원에게 "얼마를 받고 일하시느냐?"라고 묻자 "하루 5시간 최저시급을 받고 일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업무량과 받는 수당을 계산해 보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 분류작업을 누가 하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택배업계가 약속한 인력지원 실효성에 의문이 들었다.

현장에선 분류인력 1명이 여러 택배기사의 택배물건을 분류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택배기사는 어차피 '공짜노동'이라고 불리는 분류작업을 계속 해야 하며, 이곳에 투입된 분류인력마저 정상적인 업무를 하고있다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분류작업 도중 9시부터 15분간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는 휴식시간이 있지만, 이들은 이 시간마저 여유롭게 휴식을 가질 순 없다. 분류작업과 동시에 배송작업이 시작되는 택배기사들에게는 휴식시간은 물론 식사할 시간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들은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흡연·스트레칭을 하기도 했으며,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택배 기사들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오전 10시30분까지 쉴 틈 없이 분류작업과 상차를 진행했다.

오전 7시부터 시작돼 끝이 안 보이던 분류작업이 끝난 건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끝은 아니다. 전씨가 배송해야 할 택배 물량은 계속 쌓이고 있다.

전씨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물량을 받고 있다가는 새벽까지 배송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가족들을 볼 시간도, 잠을 잘 시간도 없다"며 "그나마 투쟁을 통해 오전 10시 30분에는 분류작업을 멈추고 배송업무를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럭에 택배 상자를 싣고 배송하는 것은 우리 일이지만, 분류작업까지 해야 하니 업무시간은 늘어나고 과로사가 발생하는 것이다"라며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우리 일이 아니니까 분류작업 거부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원우 기자 wonwoo.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