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정촌고분 출토 백제시대 '금동신발' 보물된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나주시
나주 정촌고분 출토 백제시대 '금동신발' 보물된다
40대 여성 추정…국내 최초 원형 그대로 발굴 고고학적 의미 커||문화재청, 고창 봉덕리1호분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예고
  • 입력 : 2021. 02.16(화) 16:08
  • 나주=박송엽 기자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얇은 금동판 4장으로 바닥판과 좌우 옆면판, 발목깃판을 만들어 서로 작은 못으로 연결했고 문양을 투각해 세부를 선으로 묘사한 방식 등 고대 금속공예 기법이 잘 반영됐다. 아울러 육각문, 용문, 인면조신 괴수문, 연화문 등 사후영생을 기원한 고대인들의 사후세계관이 반영된 듯한 다양한 문양이 정교하고 세밀하게 표현돼 있어 조형적으로도 매우 우수하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제공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국내 최초 원형 그대로 발굴된 유물인 백제시대 '금동신발'이 문화재청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16일 삼국시대 고분 출토 유물 중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국보나 보물로 지정됐지만 '금동신발'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5~6세기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삼국 시대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고대 금속공예품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의 고분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신발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삼국 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했다. 5~6세기 무렵 영산강유역에는 복암리고분군, 정촌고분, 영동리고분군 등 대형 고분이 축조됐는데, 그 중 정촌고분은 1500여 년 전 백제·마한 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고분이면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아 매장의 원형을 알 수 있어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무덤이다.

정촌고분 1호 석실 제3목관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은 좌우 신발 한 쌍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출토됐다. '발등 부분에 부착된 용머리 장식'은 현존 삼국시대 금동신발 중 유일한 사례로 주목을 받아 왔다. 최근에는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수행한 과학적 분석 결과 신발의 주인공이 40대 여성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이 금동신발은 형태와 제작기법, 문양 등에서 고창 봉덕리 출토 금동신발과 매우 유사하다.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에 비해 조금 늦은 5세기 후반 경에 제작돼 6세기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공예품으로 5~6세기 마한의 사상과 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금동신발은 국내 최초 원형 그대로 발굴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고고학과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같은 시기 중국이나 고구려, 신라의 미술품과 비교해 문양의 기원과 변천, 상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 시대 금동신발과 비교해 마한 공예문화의 독자성을 밝힐 수 있는 원천유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전북 고창 봉덕리 4기의 대형 분구묘(분구를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2009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발굴했다. 4호 석실은 전혀 도굴되지 않은 무덤으로 금동신발 한 쌍이 무덤 주인공의 양쪽 발에 신겨져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 출토됐다. 이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장례 때 의례용으로 사용된 신발로 백제시대 전형적인 형태와 문양을 보여주는 금속공예품이다.

당시 의례용 금동신발로 보기 드물게 원형을 갖춰 출토된 중요한 고대 금속공예품이자 다양하고 뛰어난 공예기법을 이용해 제작돼 5세기 중반 백제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까지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약 19점의 금동신발 중 가장 완벽한 형태며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비교했을 때 어자무늬(물고기 알 문양) 등 삼국 시대 초기 문양이 확인돼 시기적으로 앞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신발과 마찬가지로 바닥판과 좌우측판, 발목깃판으로 구성되고 바닥에 징을 박은 백제 금동신발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백제의 중앙 권력자가 제작해 왕의 힘을 과시하고 지방 수장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지방 유력 지배층에게 내려준 '위세품'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 발목깃을 갖추어 앞쪽은 뾰족하면서 약간 위로 들렸고, 중간 바닥이 편평하며, 뒤쪽은 약간 좁아져 둥근 편이어서 흡사 배 모양을 연상케 한다. 투각(透刻)의 육각형으로 구획된 형태 안에 용, 인면조신(사람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 쌍조문, 괴수 연꽃 등 각종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됐다 신발 바닥에는 1.7㎝ 높이의 뾰족한 못 18개를 규칙적으로 붙였고, 내부에는 비단 재질의 직물을 발라 마감했다. 문화재청 제공

고창 봉덕리 1호분 금동신발 발굴 모습. 문화재청 제공

나주=박송엽 기자 sypark22@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