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무 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는 현재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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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칼럼
'약무 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는 현재 진행형
  • 입력 : 2021. 02.21(일) 16:45
  • 이기수 기자
이기수 사진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충무공 이순신의 어록이다.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7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국가 군량을 호남에 의지했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뜻의 '국가군저개고호남(國家軍儲皆靠湖南)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고 전쟁 정황을 전했다. 곡창 지대 호남이 왜에 점령되지 않아 군량미 조달이 가능했기에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조선수군 총사령관의 판단인 것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7년간 전쟁에서 조선이 왜에 굴복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중 하나가 곡창지대 호남이 무사한 것이 꼽힌다.호남(湖南)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통해서도 식량 공급기지로서 면모를 엿 볼 수 있다.호남의 호는 전북 김제 벽골제를 말한다. 벽골제는 서기 330년 백제 비류왕 27년에 축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농경용 저수지로서 지역의 랜드마크였다. 저수지 둘레가 40km에 달했으니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만경 평야의 젖줄 역할을 했을 것이다.그래서 벽골제 호수의 남쪽이라해서 호남이라는 지명이 생긴것이다. 호남에서 생산된 쌀은 한반도내 국가와 국민의 생존과 오랜동안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다.쌀은 동양권에서 삶을 영위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생명자원이었다. 쌀은 씹어먹든 밥을 지어먹든 우리의 살이 된다. 에너지원이라는 말이다. 한자 기운 기(氣)자와 정할 정(精)에 쌀 미(米)자가 들어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精)은 쌀을 먹어서 얻은 푸른(靑) 기운(힘)이라는 의미다.

 이 처럼 한반도 백성의 삶의 에너지 생산기지였던 호남이 그 전통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광주시와 전남·북 등 호남권 광역지자체가 정치권과 힘을 합쳐 '호남권 광역 에너지경제공동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그것. 이와 관련 오는 24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호남 초광역권 에너지경제공동체(호남 RE300) 용역 착수보고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호남 에너지경제공동체는 새만금 태양광과 신안 해상 풍력 등에서 확보한 에너지를 호남에서 소비하고 남은 부분을 기존 전력망이 아닌 다른 전력망(에너지 파이프 라인)을 통해 다른 지역에 공급하는 것을 컨셉트로 하고 있다.

정부와 해당 지자체는 새만금에 재생에너지 클러스터를 조성해 '그린성장을 실현하는 글로벌 신산업 중심지'로 조성할 계획이다.새만금과 인근에 발전용량 7GW급에 달하는 육상 및 수상 태양광 발전 시설을 건립해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RE100 산업단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발전 용량 1GW는 원전 1기에 해당하는 규모다.국내 원전은 24기가 가동중이다. 신안 해상풍력발전사업은 한전, SK E&S, 한화건설 등 민간 기업과 지역주민이 참여해 8.2GW 규모의 세계 최대 풍력 단지를 조성한다. 8.2 기가 와트의 전기는 한국형 신형 원전 6기의 발전량이고 서울과 인천의 모든 가정이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전국 지자체중 가장 먼저 '2045 탄소중립과 에너지자립도시 실현'이란 목표를 선언한 광주시는 수소연료전지발전에 주력하고 있다. 광주시는 이달 10일 한국중부발전, SK가스, 두산건설, SK증권과 제1호인 '빛고을 수소연료전지발전소' 건립을 위한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민간 자본 815억원이 투입돼 광주시 제1하수처리장 유휴 부지 11필지 1만5843㎡에 2022년 8월 준공 예정인 수소연료전지발전소 발전용량은 12.3㎿ 용량이다.

 이런 야심찬 계획이 성공리에 추진될 경우 대한민국 위상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국내 수백개에 달하는 공공기관중 에너지전문공기업 한국전력이 나주 소재 광주 전남공동혁신도시로 이전된 것도 호남을 위해서나 대한민국을 위해서 참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다. 호남의 잠재력과 한전이 힘을 보탠다면 대한민국이 '기후 악당국'에서 벗어나고 그린뉴딜 실현에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인류가 기후 위기에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채 10년도 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화석 연료 기반 에너지를 친환경 재생 에너지로 전환은 시급한 현안이다. 각 가정과 기업이 RE100를 달성하는 것은 이제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됐다. 호남이 그린 에너지 메카로 반드시 우뚝 서야 하는 이유다. 호남을 넘어 대한민국 ,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제 첫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 해결해야 과제가 많아 보여서다. 현정부 탈원전 정책에서 알 수 있듯이 기후 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은 지방 정부의 재량 영역은 거의 없고 중앙정부 소관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자꾸 지역 주도로 무언가 잘되고 있다는 식으로 한발 빼는 태도는 잘못이다. 태양광이든 해상풍력발전이든 수소연료전지발전이든 사업 부지 확보가 최대 관건이다. 이 난제가 해결된 상황에서 투자 기업만 손짚고 헤엄치기해서 배불리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진짜 그린 뉴딜은 기후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지역 경제와 지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는 만큼 정부가 지자체와 지역민, 기업 등의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기자 kisoo.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