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23-4> 학교와 폭력, 그리고 사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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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23-4> 학교와 폭력, 그리고 사이버
이원상 조선대학교 법학과 교수
  • 입력 : 2021. 02.21(일) 18:08
  • 양가람 기자
이원상 조선대 법학과 교수
초·중·고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순간처럼 수십 년이 지났다.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그 시절의 기억을 열심히 더듬어 보아도 찰떡같이 붙어 지냈던 동무들 얼굴조차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 시절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동무들과 수많은 희로애락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학창시절'이라는 감정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면 아직도 학창시절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는 것 같다. 형사절차상 '공소시효'를 두고 있어서 시효가 지난 범죄에 대해서는 국가가 처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상처에는 공소시효가 있을 수 없다. 정부기관의 학교폭력과 관련된 조사를 살펴보면 학교폭력의 기세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을 강화시키고, 학폭위(학교폭력위원회)를 활성화시키는 노력과 함께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하고, 폭력에 대해 더욱 강력한 처벌을 하면 사라질 줄 알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학교폭력의 유형이 점점 더 영리해지고, 잔인해지며, 음성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학교'와 '폭력'이 결합된 '학교폭력'은 이제 확고한 고유명사가 됐다. 그런데 요즘에는 여기에 '사이버'가 결합하게 됐다.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 사이버 셔틀, 사이버 왕따, 사이버 갈취 등 기성세대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사이버 학교폭력 유형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아날로그 공간에서의 학교폭력이 스마트폰을 타고 사이버 공간과 융합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더 이상 피난처를 찾을 수 없게 됐다. 과거에는 학교를 벗어나면 학교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학교폭력은 사이버 공간을 통해 학교 담벼락을 넘어서 피해자들의 이불 속까지 파고들어온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첫째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학교폭력('사이버 학교폭력' 포함)을 강력히 통제하고 처벌하면 해결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강력한 일회적, 정기적, 단편적인 대응이 아니라 학교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지역과 상황에 맞는 갈등처리 프로세스를 연구하고 현장에 적용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학교폭력 교육도 단기적 강의가 아니라 장기적 프로그램으로 수행되어 학생들이 학교폭력 방지를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해결과정이 단지 학교폭력 결과에 대한 책임부과와 빠른 봉합에만 중점을 두면 안 된다. 피해자에게는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일정한 보상, 사후 재발방지가 중요할 것이다. 가해자에게는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반성하는 행동개선이 요구된다. 그리고 학교와 그 구성원들에게는 질서회복과 명예회복, 화합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폭력 처리절차를 형벌 부과식의 형사절차와 같이 구축해서는 안 된다. 학교와 그 구성원, 지역사회, 교육기관 등이 함께 참여해 '원상회복' 또는 '레질리언스(Resilience)'가 가능하도록 설계돼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 시민들도 학교폭력에 대해 그저 정부기관, 당사자, 해당 학교 등에 대한 비난과 비판만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학교폭력 사안이 제대로 조사되고 있는지, 정당한 절차와 책임이 지워지고 있는지, 다시금 질서가 회복되는지 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혹자는 최근 학교폭력의 잔혹성을 보며 학생들도 성인처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위주의 대응이 어려운 까닭은 학생들은 자라나면서 올바른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을 버리는 순간 한국 사회에는 오로지 '죄와 벌'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학교폭력의 책임자가 정부와 지자체, 학교, 당사자들만은 아니다. 이 시대를 살면서 미래세대를 짊어진 바로 '우리 자신'이 책임자이다.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학교폭력'에서 '학교'와 '폭력'을 분리해 줄 수 있으며, 사이버 공간을 정화시킬 수 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