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내영사 만허스님>"1000년만에 흥룡사 위치 확인 뿌듯…재조명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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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내영사 만허스님>"1000년만에 흥룡사 위치 확인 뿌듯…재조명 나서야"
나주 내영사 주지 만허 스님
  • 입력 : 2021. 02.24(수) 17:36
  • 나주=박송엽 기자

나주 내영사 주지 만허스님. 나주=박송엽 기자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스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1900년대생인 아버지로부터 산비탈 아래 흥룡사가 있었고 이 골짜기를 미륵골이라 불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나주시 삼영동 내영사 주지 만허스님은 흥룡사는 면허시험장 왼쪽길로 들어가는 긴 골짜기에 대규모로 지어져 운영됐다는 얘기를 부친으로부터 들었다고 밝혔다. 만허스님도 구전으로 떠돌던 흥룡사터가 현재 면허시험장 위쪽 골짜기라는 얘기를 확인해 준 셈이다.

그는 "그동안 골짜기 가운데 미륵불이 있었는데 흥룡사 입구에 세워진 부속물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억불정책 탓에 흥룡사가 없어졌고 혜종사에 있던 혜종의 소상 등을 개성으로 옮겨간 1428년 이후 두 곳 모두 폐사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없어진 절터에 미륵을 모시고 미륵사를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미륵사 역시 1950년 없어졌다. 골짜기에 방치된 채 버려졌던 미륵불을 만허스님이 1980년 중반 논 주인에게 매입한 뒤 내영사로 가져왔고 바위에 부처 형상을 조금 다듬어 새긴 뒤 현재 절내 2층에 모셔져 있다.

내영사는 고려 공민왕 12년 1363년 태고 보우국사가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이번 흥룡사 터 확인을 계기로 나주에 대한 각종 역사를 재조명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흑산도와 영산도 주민들이 홍어를 가져와 팔았고 자연스럽게 이곳에 살게 됐으며 그 마을이름이 '신촌'이었다. 그때 최초로 5일장인 영산포 장 생겼으며 이어 함평장이 탄생했다고 들려줬다.

만허스님은 "흥룡사가 12칸짜리 절이었다는 근거를 토대로 시굴과 발굴, 복원작업에 나서야 하며 나합샘터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허 내영사 주지스님이 석불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주=박송엽 기자

나주 삼영동 내영사에 모셔진 미륵불. 나주=박송엽 기자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논에 방치돼 있던 미륵불. 미륵불 너머 산아래가 흥룡사 터다. 윤여정 나주 문화원 부원장 제공

나주=박송엽 기자 sypark22@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