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세화(歲畫) 문배도(門排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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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세화(歲畫) 문배도(門排圖)
  • 입력 : 2021. 02.25(목) 13:29
  • 편집에디터

2021 한국문화재단 프로그램, 주호민 작가와 함께 하는 2021 수문장 세화나눔

올해 설날 광화문에 문배도(門排圖)가 걸려 화제가 되었다. 문짝에 붙이는 그림이라 해서 문배도라고 한다. 궁중에서부터 민간까지 널리 행해지던 세시풍속이었지만 어느 시기 단절되었던 세화(歲畫)의 하나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경복궁관리소에서 주관한 이 행사는 정부를 비롯하여, 여러 일간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보도한 바 있다. 문화재청 보도자료에 의하면, 2015년 국외소재문화재단이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한 개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1893년 공사관 1층 태극기 위쪽에 걸린 광화문 사진이었다. 원본사진을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찾아냈다. 놀랍게도 금갑(金甲)장군이 그려진 문배도였다. 금갑장군은 황금빛 갑옷을 입은 장군으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막아내는 벽사(辟邪)적 뜻을 가지고 있다. 1881년에서 1882년 사이에 촬영된 것이라 했다. 문배에 관한 기록이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육전조례' 등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실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최초로 확인한 문배도 사진이지 않은가싶다. 이를 기념이라도 하듯이 한국문화재단도 수문장 교대의식 특별행사로 2021 수문장 세화나눔이라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비대면 온라인 행사라 제약이 있었지만 모바일로 세화를 받아본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광주전통문화관에서도 '세화 이야기와 나눔, 세화받소'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21호 탱화장 송광무씨(현담 스님)를 모셔 이야기를 나누고 온라인 신청자들에게 세화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세화의 의미와 유래, 대보름 풍속은 물론 탱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사실은 광화문 문배도 보도와 상관없이 해마다 기획해오던 전통문화관 프로그램이었다. 오랫동안 탱화를 비롯한 세화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뜻이다. 토크 진행을 내가 했는데 탱화 관련해서는 따로 지면을 할애하여 소개하겠다.

세화(歲畫)란 무엇인가

세화는 민화의 한 범주로 풀이한다. 민화는 민속, 민요, 민중, 민예 등 민(民)이라는 용어가 갖는 범주적 제약 때문에 논란이 많았지만 궁중그림이나 종교그림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민(民)이 궁(宮)이나 관(官) 혹은 종교를 포섭해버렸다고나 할까. 수년 전 이 지면을 통해 민화(民畵)의 의미와 맥락을 설명해두었기에 반복하지는 않겠다. 민화학의 대가로 불리는 정병모 교수가 '한국 민화의 시작, 처용문배'(강좌미술사, 2010)라는 논문에서 자세한 설명을 해두었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넒은 의미의 민화적 표현 혹은 시작은 청동기시대의 암각화다. 의미를 좁혀 말하면 처용문배가 민화의 시작이다. 문배도가 민화의 뿌리고, 세화는 줄기이며 민화는 그 위에 핀 꽃이다. 신라 때 정월 초하룻날 문에 붙였던 처용도가 조선후기 민화에서 만개되기까지 여러 변화들이 있었다. 오늘날 민화가 널리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이러한 세시풍속 덕분이다. 민화는 문배도에서 세화로 세화에서 민화로 전개되어 온 것이다." 세화는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는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대궐 안에서 만들어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주던 그림으로 풀이해두었다. 도화서(圖畫署)라는 관아에서 제작하여 12월 20일경 진상을 하면 이를 선별하여 각 전(殿)과 종실, 재상과 근신들에게 하사했다. 중종 때는 신하 한 사람당 20장식을 하사했을 정도로 많은 양의 그림이 그려졌다. 궁중뿐만 아니라 지방 관아에서도 소속 화원들이 세화를 제작하였고 일반인들은 지물포 등에서 매입하였다고 하니 매우 광범위한 정초의 풍속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해마다 세화를 제작해서 붙이기 때문에 오래된 그림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지역도 아마 나주목 소속 화원들이 있었을 것이고 이들이 그린 세화들이 남도지역 곳곳에 붙여졌을 것이다.

2021. 광화문 문배도, 한덕택 촬영

문에 붙이는 그림 문배도(門排圖)

사전에서는 '새해에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해 문에 붙이는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유네스코에 등재되기도 한 처용을 즐겨 그렸다. 처용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역신이 처용의 아내를 사모하며 관계를 맺게 되었다. 하지만 처용은 이렇게 노래한다.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 늦게까지 놀다/ 집에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아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고/ 본래 내 것이었는데/ 빼앗아 간 것을 어찌 하리요' 처용의 넓은 도량이라고나 할까. 이에 감복한 역신이 말하기를, 처용의 형용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에서 말하는 문신(門神)과 같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독 처용을 많이 그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신은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서는 거의 비슷하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문배의 소재가 많아진다. '용재총화'에 의하면 처용, 각귀(角鬼), 종규, 복도관인, 개주장군, 경지보부인, 닭, 호랑이 등이 그려졌다. 각귀는 뿔 달린 도깨비라고 할 수 있겠다. 종규(鍾馗)는 도교의 신격이다. 입춘첩으로도 사용되었다. 한쪽 문에는 호랑이 그림을 붙이고 상대 쪽 문에는 용을 붙이는 용호문배도 또한 많이 활용되었다. 19세기의 용호문배도에는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그리는 호작도(虎鵲圖)가 그려졌다. 흔히 민화 하면 떠올리는 까치호랑이 그림이다. 이외에도 해태 모양의 사자나 개를 그리기도 하고 삼재가 든 해에는 매그림을 대문에 붙이기도 했다.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수성(壽星)과 선녀, 길상적 성격의 인물이나 화훼, 누각 등도 그렸다. 모두 나쁜 것을 물리치거나 막아내는 벽사적 성격이다. 문배도와 세화를 왜 민화의 시작으로 보는 것인지 알 수 있는 자료들이다.

남도인문학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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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도의 법고창신

이번에 화제가 된 광화문 문배도는 금갑장군도이다. 당나라 장군 진숙보와 위지공에서 유래된 금과 갑 두 장군상을 그린 세화다. 대궐문 외 중문과 곁대문 등에도 붉은 도포에 검은 사모(紗帽, 벼슬아치들의 모자)를 쓴 위정공과 종규가 귀신 잡는 형상을 그려 붙이기도 했다. 왜 진숙보와 위지공이 문신(門神)으로 그려지게 되었을까? 이들은 당나라 태종시기의 대장군이었다. 당태종이 불면증이 있었던가 보더라. 잠만 청하면 헛것들이 보이고 귀신 우는 소리, 벽돌이나 기왓장 던지는 소리가 났다. 마침 진숙보와 위지공이 각양의 무기로 무장하고 문밖에서 보초를 선 후부터는 당태종이 숙면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아닌가. 이를 기념하여 태종은 보석으로 장식된 전투용 도끼, 채찍과 사슬, 활과 화살 등을 든 장군도를 그리게 하였다. 진숙보의 얼굴은 하얗게, 위지공의 얼굴은 검게 하였다. 이 일화를 계기로 궁중에서는 두 장군 그림을 성문 양쪽 문에 붙이게 되었고 수호신으로 삼게 되었다는 얘기다. 우리도 이같은 장군도를 포함하여 처용을 그리거나 벽사적 성격의 수많은 세화들을 그렸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의미도 바뀌고 형식도 재구성되었을 것이나 벽사로서의 문지기 신격이라는 의미는 남아있는 것 같다. 광화문 문배도 복원을 보며 전통의 계승에 대해 생각해본다. 세시풍속의 하나로 세화의 복원을 꾀하고 방방곡곡 집집마다 문배도를 걸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문제는 그림의 결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처용을 포함하여 고유한 상징이나 법고창신의 캐릭터를 찾아내는 작업을 해보자. 코로나 물러간 내년 설에 광화문은 물론 가가호호 대문에 붙여질 문배도를 기대하며.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광화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 기원의 의미가 담긴 문배도가 걸려 있다 . 뉴시스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복궁 광화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 기원의 의미가 담긴 문배도가 걸려 있다 . 뉴시스

2021년 광주전통문화관 프로그램 세화받소

미국의회도서관 소장 사진 광화문 세부(문화재청 보도자료)

미국의회도서관 소장 사진 광화문 전경(문화재청 보도자료)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